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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다산에게 시대를 묻다](48)목민심서 ‘공전’ 편 천택…백성 도움 주는 물관리가 목민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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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후속 조치와 관련해 여러 얘기들이 오간다. 환경단체들은 보 개방과 해체를 주장하는 반면 정치권은 반대하는 모습이다. 올해는 총선이 있기 때문에 4대강 보 해체와 개방에 대한 논란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4대강 사업은 찬반이 워낙 첨예하게 대립해 정확한 사실조차 확인이 쉽지 않다. 4대강 사업 이후 생물학적 산소 요구량(BOD), 질소와 인의 총량 등 일부 수질은 개선됐다는 평가도 있다.

반면 4대강 사업으로 인해 환경 파괴가 더욱 심각해졌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중에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4대강 사업 보 처리 문제에 대해 정부는 조만간 최종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예나 지금이나 물관리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목민심서 ‘공전’ 편 ‘천택’에서 다산은 목민관이 수리(水利)에 힘써 농업 진흥에 이바지하도록 하천이나 저수지를 관리하고 보살펴야 함을 강조한다.

저수지 관리 지침 ‘천택’

논에 물이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

다산은 천택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큰 정사(政事)의 하나인지를 먼저 밝힌다.

“천택은 농리(農利)의 근본이 되는 바이니 천택에 관한 행정은 고대 성왕(聖王·요, 순, 우 등 성군)들도 중요하게 여겼다.”

다산은 저수지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저(貯)는 안에 있는 물을 가둬 밖으로 새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방(防)은 밖의 물을 막아서 안으로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구(溝)는 거(渠)이니, 저와 방은 모두 반드시 구로 물을 흐르게 하는 것이다. 열(列)은 논에서 오목하게 들어간 곳이다.”

내용이 다소 난해하지만 결국 모든 방법을 동원해 논에 물이 제대로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산은 농사와 농업을 제대로 일으킨 우(禹)나 후직(后稷)이 관개(灌漑) 수리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냇물이 고을을 지나가면 ‘거’를 파서 물을 끌어들여 관개를 하며, 더불어 공전(公田)을 일궈 백성의 요역(徭役)을 보충해주는 것이 정사를 잘하는 것이다.”

다산은 성호 이익의 말을 인용하며 “천하에 가장 아까운 것은 유용한 것을 무용한 것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흐르는 물이 제대로 논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제방의 높이나 하천의 밑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천관리에 뛰어난 옛날 목민관들이 어떻게 물관리를 해서 백성에게 도움을 줬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열거했다. 수많은 목민관은 자기가 맡은 지역의 농업 진흥을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주민 삶이 풍족해지도록 노력했다.

“작은 것은 지소(池沼)라 하고 큰 것은 호택(湖澤)이라 하며, 그 둑을 피(陂)라하고 또 제(提)라고도 하는데, 이것으로써 물을 조절하는 것이다. 택상(澤上)에 물이 있는 것을 절(節)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둑을 제대로 막아 물을 조절할 수 있어야만 물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었다.

당시 미흡했던 저수지 관리

저수지만 잘 다뤄도 흉년 없어

다산은 당시 물관리 실태를 정확히 파악했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이름난 호수가 7~8개, 나머지는 모두 좁고 작다. 그러나 그나마 잡초가 우거지고 수축되지 않았다”며 큰 호수 이외의 작고 좁은 저수지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반계 유형원의 말을 인용했다.

“김제의 벽골제, 고부의 눌제, 익산과 전주 사이의 황등제는 못으로서는 큰 것이어서 한 지방에 큰 이득이 됐다. 옛날 온 나라의 힘을 다해 축조한 것인데, 오늘날 모두 황폐하고 무너져 있다. 무너진 곳은 불과 몇 장(丈)에 지나지 않아 그것을 수축할 일을 계산해보면 1000명의 사람에 열흘간 노동이 소요될 뿐이다. 이것은 처음 축조할 때에 비하면 단지 1만분의 1에 지나지 않는데, 이를 건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매우 안타깝고 애석하다. 만약 이 세 못이 1000경을 댈 수 있는 저수지가 된다면 영원히 흉년이 없을 것이다.”

다산은 또 말했다. “우리나라의 큰 못으로는 함창의 공골제, 제천의 의림지, 덕산의 합덕지, 광주의 경양지, 연안의 남대지가 있는데, 오늘날 모두가 앙금이 앉아 막혀버렸으니 이것은 수령의 책임이다.”

준설이나 수리(修理)를 잘해서 본래의 크기나 넓이만큼 수량을 보존할 수 있게 한다면 농업용으로 사용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거’를 파는 경우 반드시 물 흐름을 끊어야 하는데, 그때는 큰 돌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큰 돌의 운반이나 이동에는 기중기 등 여타의 기술적인 문제가 많았다. 다산은 당시 수준에서 여러 장비와 기구를 거론했지만, 지금은 엄청난 장비와 기구가 발달돼 있다. 다만 관개 수로의 중요함을 인정해 그런 일에 집중적으로 행정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은 지금도 생각해볼 부분이다.

한 가지 언급해야 할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 조수(潮水)를 막아 제방을 쌓는 경우 반드시 한대(捍臺)라는 3각형 모양 구조물을 사용해 조수의 물머리를 감쇄시켜야 한다는 놀라운 공법을 다산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요즘으로 보면 테트라포드(TTP·tetrapod)가 파도의 힘을 약화시키는 원리를 다산은 그때 이미 알고 있었던 셈이다. 어떤 연구자가 그 점을 지적하며 다산의 뛰어난 과학적 사고를 칭찬한 내용의 논문이 전해진다. 바닷물이 인간 삶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 그에 대한 방지책도 언급했다.

“바닷가에 조수를 막는 제방을 쌓고 안에 기름진 농지를 만들면, 이것을 해언(海堰)이라 한다.”

언(堰)이란 바로 조수를 막아 농지를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조수의 범람 방지를 위한 일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다산은 “조운(漕運)이 통하는 곳과 상인이 모여드는 곳에 물의 범람을 소통시키고 그 제방을 견고하게 하는 것은 역시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조그마한 포구 등에서 배가 마음대로 정박할 수 있고, 또 그 주변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물건을 사고팔 수 있도록 시설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만들라는 뜻이었다.

하천과 못관리 관련 반드시 마음을 기울여야 할 일이 또 있다. 바로 못이나 늪에서 얻는 물고기·자라·연(蓮)·마름·부들 등속에 대한 착취 문제다. 이런 종류의 생산품은 인근 농민의 이익으로 돌아가게 해야지 목민관이나 아전이 자신들의 사복을 채우는 데 사용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 다산의 주장이었다. 약자를 보호하려는 다산의 마음은 여기서도 정확히 나타난다. 다산은 이런 농민들 착취에 관해 연안부사를 지낸 기건(奇虔)이라는 청백리와 아산현감으로 있던 이지함(李之菡)의 청백한 목민관 생활을 소개했다. 연못에서 나는 붕어 때문에 당하던 백성들의 고통을 두 목민관은 슬기롭게 해결했다. 기건은 연못에서 나오는 붕어를 먹지 않는 것으로 민폐를 방지했고, 이지함은 문제의 그 연못을 메워 착취의 근원을 막아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옛날 청백리들의 백성을 위하는 태도는 오늘날 공무원에게 귀감이 된다. 공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은 백성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면 그 근본을 막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매경이코노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42호 (2020.1.15~2020.1.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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