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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팀장 칼럼] 분노와 공포의 악순환, 이제는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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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시위대를 죽이지 말라"

일주일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격화된 이란의 반(反)정부 참여자들을 죽이지 말라고 트위터에 썼다. 최근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격추해 176명을 숨지게 한 이란 정권과 군부에 반기를 든 대학생 시위자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이다.

미국과 이란의 뿌리 깊은 갈등을 감안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독재 정권에 반기를 드는 이란 국민들을 두둔해줬다는 점에서 전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역시 시위대를 지지하고 유럽 강대국들에게 이란 정권에 대한 압력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고질적인 경제난에 미국의 경제 제재, 최근 유가 인상까지 겹치며 이란 정권은 수개월 내 ‘붕괴’ 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도 반정부 시위가 일며 이란에서는 경찰의 ‘무차별 총격’으로 수천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정부에서는 정확한 사망자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해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 반정부 시위는 8개월째 홍콩 시내를 뒤덮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가 송환법 도입 등을 통해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체제) 원칙을 무너뜨리고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 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홍콩 시민들이 송환법 철회를 외치며 거리로 나서자 홍콩 정부는 그들을 ‘폭도’, ‘적’으로 규정하고 시위 참여자들을 탄압했다.

경찰은 최루탄과 실탄, 빈백 건(알갱이가 든 주머니탄) 등을 쏘며 7000명에 육박하는 시위 참여자를 체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22세의 대학생 한명이 사망했고 수천명이 다쳤다.

이란과 홍콩 시위의 공통점은 모두 현 정권에 반기를 든 10~20대들이 집결해 용감하게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다.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집회를 결성하고 전 세계에 도움을 요청하며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대만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 현 총통이 최근 연임에 성공한 것도 이러한 젊은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홍콩 시위로 인한 반중 여론이 거세지며 대만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드러난 것이다. 차이 총통의 민진당은 "홍콩의 현재가 대만의 미래"라며 홍콩 사태를 부각시켰고 젊은 유권자들은 차이 총통에 '역대 최다표' 선물을 안겼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행동에 나선 젊은이들이 신변을 위협받고 목숨까지 앗아가는 사태는 역사적으로도 반복돼 왔다. 젊은이들의 나라 걱정이 절박해질수록 이를 억누르는 폭력 진압도 도를 더해가고 있다.

최근 영국의 한 컨설팅 업체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Verisk Maplecroft)’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195개 국가 중 약 40%에 해당하는 75개국에서 시민들의 불안과 시위 사태가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해 47개국에서 60%나 증가한 수치다. 특히 시위 위험도가 ‘매우 위험’으로 측정된 나라는 홍콩과 칠레, 인도 등을 포함해 올해 20개국으로, 지난해(12개국)보다 훨씬 많아졌다

거센 시위 물결을 저지하기 위해 또 다른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폭력 진압이 또 다른 폭력을 낳고 공포심을 조장해 사태를 악화시키는 건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이자 오늘날 시위 현장의 모습이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시위에 나서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더 폭력적인 수단이 동원되는 소모적인 악순환의 고리가 이제는 끊어져야 한다.

정치 지도자들은 평화적인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지도자가 누구인지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의 실정(失政)과 경제난에 대한 한탄으로 촉발된 시위가 더 이상 ‘공포’로 변질되지 않도록 ‘대중 여론’의 막강한 영향력도 명심해야 할 때다.

우고운 기자(wo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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