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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고객의 소리` 들으려면 `직급 파괴`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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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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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인사이트-275]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조언은 기업 경영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너무나 익숙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런데도 최근 기업들은 다시 경영 화두에 '고객'이라는 단어를 올리기 시작했다. 주요 기업들이 새삼스럽게 고객 중심 경영을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해를 맞아 국내 10대 그룹이 내놓은 신년사에서 강조한 핵심 키워드는 단연 '고객'이었다.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10대 그룹(농협 제외·11위 신세계 포함)의 2020년 신년사에서 '고객'은 총 56회 언급돼 가장 많이 등장했다. 성장(42회), 미래(28회), 혁신(23회), 역량·가치·지속(21회), 변화·글로벌·새로움(20회)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고객'이라는 말을 24차례나 사용했다. 구 회장은 "2020년은 고객 가치를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 고객 관점에서 고민하고 바로 실행하는 실천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며 "모든 것을 고객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불편한 부분, 고충)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그룹 외에도 현대차그룹, 롯데그룹, GS그룹, 신세계그룹 등 기업 총수들이 신년사에서 고객을 수차례 언급했다.

이렇게 보면 기업들은 고객 중심 경영을 항상 강조해온 것이 아닌가 싶지만 최근에 유독 언급이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고객'은 지난해 처음으로 신년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 1위에 올랐는데, 최근 10년 동안 10위권에 포함된 해는 2010년과 2015년(각 3위), 2018년(6위)뿐이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고객 중심의 경영과 혁신을 강조하는 원인을 글로벌 경쟁 심화 및 내수 경제 둔화에서 찾는다. 한 기업 컨설팅 전문가는 "주요 기업들의 경우 내수 경제 성장세 둔화와 글로벌 경쟁 심화에 따라 세계 각국 시장의 요구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현장의 고객 요구를 신속하게 수렴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빠른 시장 요구 수렴을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대표적 전략은 '수평적 조직문화 조성'이다. 결국 '고객 중심 경영'을 위해 조직 내부의 혁신을 도모하고 있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던 직급을 간소화하거나 파괴하고 호칭을 통일하는 등의 노력을 기업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SK그룹은 지난해 7월부터 부사장, 전무, 상무 등 임원의 기존 직급을 폐지하고 호칭도 본부장, 실장 등 직책으로만 부르도록 했다. 계열사인 SK텔레콤은 사내 호칭을 직급 대신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방식으로 정했다. 지난해 9월 현대자동차그룹도 뒤를 따랐다. 기존의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5개 직급은 모두 사라지고 '매니저'와 '책임매니저'만 남긴 것이다. 직급과 상관없이 프로젝트 리더를 맡을 수 있도록 한 기업도 다수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고객 요구가 현장에서부터 제품 기획·생산까지 빠르게 전달돼 제품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를 도입해도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기업 관계자들은 전한다. 직급이나 호칭을 표면적으로만 바꾸고 실제로는 상하관계 구분을 엄격히 유지해 나가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보고 단계를 줄였는데 비공식적 과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실제로 일부 국내 기업들은 직급 간소화나 호칭 통일 같은 제도를 도입했다가 몇 년 만에 다시 이전 방식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한 인사관리 전문가는 이러한 실패에 대해 "임원 직급을 그대로 두거나 사내 분위기의 근본적 변화는 부족한 상태에서 제도만 도입했기 때문"이라며 "최근 CEO도 실무자와 직접 소통하고 그룹 총수들이 일반 사원 앞에 나서는 등 스킨십이 늘어나는 현상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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