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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AI·폴더블·모빌리티·동영상…CES 2020으로 본 5가지 미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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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했다. 지나가던 이의 발길을 돌려세울 만한 아이템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보고 있으면서도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혁신적인 제품도 없었다. 둘만 모여도 서로 그거 봤냐며 떠들어대는 화젯거리도 못 만나봤다. BBC는 이를 두고 “다소 조용했던 CES 2020(a rather subdued CES 2020)”이라고 묘사했다.

지난 1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은 어느 때보다 관심이 컸다. 미래 비전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새로운 10년을 향한 2020년이 도래했으니, 전 세계 혁신기술의 격전장인 CES 2020에서 미래 비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정작 CTA가 내놓은 CES 공식 자료집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CES에서 세상에 처음 공개된 혁신 제품은 ▲2001년 마이크로소프트 X박스와 플라스마 TV ▲2003년 블루레이 DVD ▲2008년 OLED TV ▲2013년 울트라 HD TV ▲2018년 5G(5세대 이동통신) 기술 등이다. 리스트에는 2018년이 끝이었다. 2019년과 2020년은 빈칸이다. 정말 2018년 이후 혁신이 멈춘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한 방법은 하나뿐. CES 전시장, 기조연설, 미디어 콘퍼런스 등을 샅샅이 돌아다니면서 힌트를 수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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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0’에서 SK텔레콤이 한 화면을 여러 장면으로 쪼개 동시에 시청할 수 있는 5G 멀티뷰 서비스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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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혁신산업, 車에서 항공으로 주도권 이동

▶델타 ‘디지털 트래블 컨시어지’ 변신

CES에서 자동차가 전자, IT 기기를 대체할 새로운 핫아이템으로 떠오른 것이 2010년대 초반이다. 2014년에는 당시 아우디 CEO가 CES 개막 기조연설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혁신 자동차 시대를 열었고, 그 후 10년간 CES는 ‘라스베이거스 모터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자동차 업계의 참여가 늘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항공이 혁신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2020년 CES 개막 기조연설자로 델타항공 CEO가 나온 것이 의미가 크다. 1월 8일 개막 무대에 오른 에드 바스티안 델타항공 최고경영자(CEO)는 95년 역사의 항공사가 어떻게 디지털 전환에 성공했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스토리를 펼쳤다. 바스티안 CEO는 “지난 5년간 디지털 혁신을 위해 수조달러를 투자했다”며 “델타항공은 항공사가 아니라 ‘디지털 트래블 컨시어지’로 변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행기 여행은 탑승 자체보다도 그 전후가 귀찮고 힘든 것이 사실이다. 수하물 처리는 어떻게 하고, 공항까지 뭘 어떻게 타고 갈지, 애완견을 동반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 걱정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델타항공은 이런 고객들의 짜증 나는 경험을 일일이 조사해 모았다. 그리고 앱을 통해 하나씩 개선점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가령 차량공유 서비스 리프트와 협업해 앱으로 예약이 가능하게 했다. 마일리지로 공항까지 리프트를 타고 올 수 있게 만든 것. 앱으로 날씨·교통 상황에 따라 집에서 출발해야 할 시간을 미리 알려주고, 반려동물이나 어린이 혼자 탑승 시에도 앱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수하물을 집에서 호텔까지 바로 보내주는 서비스도 나온다. 이제 항공사 앱으로 단순히 항공권 검색이나 체크인 정도를 하는 것이 아니다. 델타항공은 스타트업과 협업을 통해 앱 하나로 플랫폼 기업이 돼가고 있다.

바스티안 CEO는 특히 “비행기 여행이 문제가 아니라 공항이 사람들을 짜증 나게 한다는 점에 착안, 공항에 다양한 기술을 도입 중”이라며 “고객의 불편을 기술로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여정”이라고 밝혔다. 델타항공은 거점 공항으로 삼고 있는 미국 애틀랜타공항에 안면인식 기술로 보안검색을 쉽게 통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올해부터는 디트로이트메트로공항에 평행현실 표지판(Parallel Reality TV)도 설치한다. 탑승자 안면을 인식해 탑승자에 따라 공항 표지판이 바뀌는 식이다. 공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잡한 이착륙 디스플레이가 사라지고 스크린에 내 비행기 정보만 나온다는 얘기다.

항공사가 이렇게 앞서가는 마당에 자동차 업체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자동차 회사들도 더 이상 차만 만드는 ‘카메이커’가 아니다. 개인용 비행체(PAV)로 미래 대도시 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현대차는 올해 CES에 자동차 대신 개인용 비행체를 들고나와 이를 기반으로 한 도심항공 모빌리티(UAM)와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모빌리티 환승 거점을 미래 도시의 교통 솔루션으로 제시했다. 올라 칼레니우스 다임러AG·메르세데스-벤츠AG 이사회 의장은 CES 2020 기조연설에서 자동차 생산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줄이고 친환경적인 소재를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면서 영화 ‘아바타’에서 영감을 얻은 자율주행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2. 제품 혁신 아닌 비즈니스 모델 바꿔라

▶10분짜리 고품질 동영상 스타트업 ‘퀴비’ 돋보여

CES는 수년간 IT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혁신에 집착해왔다. CTA가 주는 혁신상은 시제품이라도 일단 실물 제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올해부터 CES는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제품이 비슷해도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CES 자체도 혁신의 대상이 된 셈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월 9일(현지 시간) 기조연설에서 소개된 동영상 스타트업 ‘퀴비(Quibi)’였다. 퀴비 CEO는 1990년대 말 이베이, 휴렛팩커드(HP) 등 IT 공룡들의 CEO를 거치면서 IT 업계 최고경영자의 전설이 된 멕 휘트먼이다. 이날 기조연설에 나선 휘트먼 CEO는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장점만 따서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냈다는 점을 설명했다. 동영상이라는 제품은 같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 판을 뒤집은 것이다.

동영상 업계 강자 넷플릭스는 수준급 영상을 보여주지만 길이가 길다. 영상 한 편 보는 데 최소 한 시간 이상 걸린다. 또 다른 강자 유튜브는 상대적으로 짤막한 영상이 많지만 질을 담보하기 어렵다. 영상이 워낙 많이 올라오니 고르다가 시간이 다 간다.

이 두 회사의 단점은 버리고 강점만 뽑아서 만든 회사가 퀴비다. 퀴비에서는 고품질 영상을 10분 내로 짧게 만들어 올린다. 영화뿐 아니라 뉴스, 다큐멘터리 등 영상은 길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깬 것이 핵심이다. 거장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도 1편에 7분짜리 영화를 만들어 퀴비에 공급하기로 계약을 마쳤다. 휘트먼 CEO는 “젊은 층은 점점 짧은 영상만 찾는데, 이에 걸맞은 질 좋은 제품이 없었다”며 “퀴비가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하면서 이미 1년 치 광고 물량이 매진됐다”고 밝혔다.

퀴비는 ‘퀵 바이트(Quick Bites)’를 젊은 층이 줄여서 부르는 말로, 한국어로 풀어 설명하면 ‘한입 거리’ 정도다. 금방 먹어치울 수 있는 한입 정도 되는 양이라는 의미다. 짧은 동영상을 뜻하는 비속어 ‘짤방’과 비슷한 의미라고 보면 된다.

퀴비 이용요금은 월 5달러, 광고 없이 동영상만 즐기려면 월 8달러를 내면 된다. 구글 클라우드를 통해 서비스될 예정이며 미국 대형 통신사인 ‘T-모바일’ 가입 시 부가 서비스로 제공된다. 오는 4월 서비스가 시작되는데 이미 내년 4월 치까지 광고가 다 팔렸고, 광고주도 펩시·P&G 등 초대형 회사들이다. 그뿐 아니라 퀴비가 현재까지 투자받은 자금은 누적 10억달러(약 1조원)가 넘는다. 동영상 업계의 판을 뒤집는 거물 ‘퀴비’가 론칭을 앞두고 CES에서 프로모션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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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선보인 개인용 비행체 콘셉트 모델 ‘S-A1’ 모형. LG전자 모델들이 ‘LG 씽큐 홈’ 존에서 사물인터넷(IoT) 공간 솔루션을 통해 집 안팎을 연결하는 ‘스마트도어’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LG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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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혁신제품인지 물어보고 싶을 땐 “접힙니까?”

▶폴더블에 ‘접는 노트북’까지 하드웨어의 혁신

하드웨어의 혁신은 역시 ‘폴더블’이 최대 관심사였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노트북, TV까지 반으로 접히거나 돌돌 말려야만 혁신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삼성전자와 화웨이는 지난해 출시된 갤럭시폴드와 메이트X를 전시했다. 세상에 나온 지 수개월이 지난 제품이지만, 적지 않은 관람객이 폴더블폰 실물을 보기 위해 줄지어 설 정도였다. “이 제품 접힙니까?(Is this foldable?)”라는 질문은 “이 제품은 혁신 제품인가요?”라는 질문과 같은 의미가 됐다.

모토로라도 지난해 공개한 폴더블폰 레이저를 출품했다. 원래 지난 연말 출시 예정이었지만 연기된 상태다. 삼성전자는 CES 현장에서 2월 11일 갤럭시S 차기작과 함께 공개할 클램셸(조개껍데기) 디자인의 폴더블폰을 국내 통신사를 비롯한 거래선에 먼저 공개해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PC 업체들은 ‘접는 노트북’을 들고나왔다. 중국 업체 레노버는 LG디스플레이의 13인치 폴더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노트북 ‘싱크패드X1 폴드’를 공개했다. 양쪽 화면을 독립적인 화면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기존 노트북처럼 접어 한 화면은 디스플레이로, 한 화면은 키보드로 이용할 수 있다. 올해 여름 판매를 시작한다.

미국 업체 델은 폴더블 노트북 ‘콘셉트 오리’와 ‘콘셉트 듀엣’ 시제품을 공개했다. 콘셉트 오리는 13인치 화면을 접고 펼칠 수 있는 제품이고, 콘셉트 듀엣은 LG전자 V50 씽큐의 듀얼 스크린처럼 디스플레이 두 개를 이어 붙인 제품이다. 인텔은 폴더블 노트북 PC 설계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4. 5G는 단지 보이지만 않을 뿐 모든 곳에

▶TV·커넥티드카·콘텐츠 시장서 존재감 과시

올해 CES 전시장에는 화려한 입간판이나 플래카드로 ‘5G 이동통신’을 홍보하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모빌리티, 스마트 시티 등 CES 전시장 대부분을 차지한 기술과 서비스는 5G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것이어서 이미 5G 세상이 도래했음을 실감케 했다.

현장에서는 SK텔레콤을 비롯해 버라이즌, 스프린트, AT&T 등 미국 통신사, 노키아와 에릭슨 등 통신장비 업체가 참여해 5G 속도와 신뢰성, 효율성을 시연했다. 스프린트는 5G 기반의 ‘IoT 팩토리’를 선보이면서 음식 서비스부터 헬스케어, 농업에 이르기까지 중소기업을 위한 솔루션을 제시했다. 일본 NTT도 미국 자동차 경주대회 ‘인디카’에 들어간 자사 스마트 플랫폼을 소개했다.

5G는 TV와 커넥티드카, 콘텐츠 분야 등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은 세계 최초 ‘5G-8K TV’를 공개했다. 5G-8K TV는 SK텔레콤의 5G 데이터 분산처리 기술인 MEC(모바일 에지 컴퓨팅)를 기반으로 삼성 8K TV에서 8K 초고화질 영상을 무선으로 직수신하는 환경을 구현했다. 추가로 선보인 5G 기반의 ‘디지털 콕핏(Digital Cockpit·차량 내 멀티 디스플레이) 2020’도 관람객 눈길을 끌었다. 소니는 최근 미식축구 경기에서 5G를 이용해 NBC스포츠·버라이즌과 공동으로 진행한 스포츠 라이브 영상 제작 관련 기술 검증 실험 성과를 소개했다.

5. 집(HOME)은 AI의 총성 없는 전쟁터

▶구글·아마존 등 주거공간 혁신 안간힘

10년 전 CES에서 공개됐던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IoT)이 인공지능(AI)으로 발전하면서 ‘집(HOME)’이 전쟁터가 됐다. IT 기업뿐 아니라 플랫폼 기업까지 나서서 주거공간 전반을 AI 격전지로 만든 결과다.

구글과 아마존이 집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은 치열했다. ‘구글 어시스턴트’와 ‘아마존 알렉사’로 대표되는 AI 비서 경쟁은 스마트홈을 넘어 커넥티드카까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이들은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기 위해 가전 기업부터 자동차 업체까지 최대한 많은 기업과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구글은 삼성전자, LG전자, 소니 등 가전 제조사 기기를 진열하고, 구글 어시스턴트의 다양한 적용 사례를 직접 볼 수 있도록 했다. 구글은 개별 부스뿐 아니라 각 가전업체 부스에 구글 어시스턴트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확장성을 과시했다. 구글은 구글 어시스턴트가 탑재된 볼보 차량 2대를 전시하고 차량 안에서 집 안 기기들을 제어하고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는 모습도 시연했다.

아마존은 아예 따로 집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혼자서 워라밸을 추구하는 싱글 남녀, 도시의 바쁜 맞벌이 부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교외의 가족 등 대표적인 모델 가정을 만들어 그들이 집에서 어떻게 AI 비서를 활용할지를 가상공간으로 꾸려놨다. 가령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아이 침대에 알렉사가 내장돼 아이의 수면 패턴을 감지한다든지 도심 가정에서는 알렉사가 단위시간마다 공기질을 측정해 환기를 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미지근한 것은 겉뿐이었다. 속에서는 어느 때보다 뜨겁게 혁신의 용광로가 꿈틀댄 CES 2020이었다. 모든 이의 입에 오르내리는 신조어나 완벽하게 새롭고 놀라운 물건이 없다고 해서 혁신이 없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항공이 혁신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이 소개됐으며, 5G 기술은 기본적으로 내재됐다. CTA는 CES를 더 이상 글로벌 IT 전자제품 쇼라고 칭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소개할 때 ‘혁신을 위한 글로벌 무대(The Global Stage for Innovation)’라 부른다. 조그만 기술 하나라도 바꿔서 전 세계를 놀라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혁신의 완성이다. CES는 올해도 그걸 묵묵히 보여줬다.

[라스베이거스 = 한예경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 yeak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 2043·설합본호 (2020.1.23~2020.2.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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