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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기자칼럼]또 “왜 지금? 왜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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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가 ‘사인 훔치기 스캔들’로 뜨겁다. 야구에서 사인을 내는 이유는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거꾸로 상대가 이를 알아챈다는 것은 보안에 실패한, 들킨 쪽의 책임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야구에서 사인 훔치기는 ‘죄’가 되지 않지만 이번은 다르다. ‘전자기기’를 이용한 것은 ‘선을 넘는 일’이었다.

경향신문

201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비디오 판독 신청용 카메라를 활용했다. 이를 통해 상대 포수 사인을 살펴본 뒤 사인의 규칙을 풀었다. 선수들에게 전달했고, 2루에 나간 주자가 포수 사인을 보고 알아채면 타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주자가 2루에 없어도 사인을 전달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 끝에 기발한 방법을 찾았다. 화면에 포수 사인이 비치면 이를 보고 ‘소리’를 냈다. 고함도 치고, 호루라기도 불어봤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은 철제 쓰레기통을 방망이로 때리는 것이었다. 쓰레기통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변화구’였다.

2017년 벌어진 휴스턴의 ‘사인 훔치기’가 2년이 지난 2019년 말 폭로될 수 있었던 것은 실명을 밝힌 ‘공익제보자’ 마이크 피어스 덕분이었다. 오클랜드에서 뛰고 있는 투수 피어스는 2017년 휴스턴에서 뛸 당시 사인 훔치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미국 스포츠매체 디 어슬레틱은 피어스의 실명 포함 증언과 함께 이를 기사화했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공식 조사에 들어갔다.

메이저리그 조사 결과 사인 훔치기에 연루된 휴스턴 단장과 감독이 해고됐다. 당시 휴스턴 수석코치였던 보스턴 감독과 선수였던 뉴욕 메츠 감독도 연이어 자리를 내놔야 했다. 사실상 야구계 복귀가 어렵다는 점에서 영구 퇴출이나 다름없다.

피어스는 분명 리그의 공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많은 공익제보자들이 겪는 일을 따라서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배신자’라는 낙인이다.

ESPN에서 메이저리그 최초의 여성 해설위원인 제시카 멘도사는 최근 피어스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멘도사는 피어스의 폭로에 대해 “대중에게 이를 공개하고, 결국 여러 명이 해고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모든 게 폭로에서 시작됐다. 이는 가만히 두고 보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팀 내부적으로 해결했어야 하는 일을 공개함으로써 문제를 일으켰다는 뜻이다.

명예의전당에 오른 명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도 이를 거들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만약 휴스턴에 있을 때 바로 폭로를 했다면 배짱 있는 선수로 평가하겠지만 팀을 떠나 다른 팀(오클랜드)에 있으면서 옛날 일을 끄집어내어 폭로했다”면서 “아주 나쁜 동료”라고 피어스의 행동을 폄훼했다.

모든 공익제보자들이 같은 일을 겪는다. “진작에 하지 못하게 막지 왜 하필 지금 터뜨리느냐”고 따지고, “다른 사람들은 다 가만히 있는데 왜 너 혼자 그러느냐”고 비난한다. 2020년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지금이 늦었지만 가장 빠른 시기이고, 모두가 침묵할 때 나서는 용기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드는 일이다. 그것을 지켜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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