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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해인 수녀의 詩편지](28)무지개 빛깔의 새해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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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정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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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그 눈부신 열정의 빛깔로

새해에는

나의 가족, 친지, 이웃들을

더욱 진심으로 사랑하고

하느님과 자연과 주변의 사물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겠습니다

결점이 많아 마음에 안 드는 나 자신을

올바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렵니다

주황 그 타오르는 환희의 빛깔로

새해에는

내게 오는 시간들을 성실하게 관리하고

내가 맡은 일들에는

인내와 정성과 책임을 다해

알찬 열매를 맺도록 힘쓰겠습니다

노랑 그 부드러운 평화의 빛깔로

새해에는

누구에게나 밝고 따스한 말씨

친절하고 온유한 말씨를 씀으로써

듣는 이를 행복하게 하는

지혜로운 매일을 가꾸어가겠습니다

초록 그 싱그러운 생명의 빛깔로

새해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힘들게 하더라도

절망의 늪으로 빠지지 않고

초록빛 물감을 풀어 희망을 짜는

희망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파랑 그 열려 있는 바닷빛으로

새해에는

더욱 푸른 꿈과 소망을 키우고

이상을 넓혀가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삶의 바다를 힘차게 항해하는

부지런한 순례자가 되겠습니다

남색 그 마르지 않는 잉크빛으로

새해에는

가슴 깊이 묻어둔 사랑의 말을 꺼내

편지를 쓰고, 일기를 쓰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색의 뜰을 풍요롭게 가꾸는

창조적인 기쁨을 누리겠습니다

보라 그 은은한 신비의 빛깔로

새해에는

잃어버렸던 기도의 말을 다시 찾아

고운 설빔으로 차려입고

하루의 일과를 깊이 반성할 줄 알며

감사로 마무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이에게 거듭 강요하기보다는

조용한 실천으로 먼저 깨어 있는

침묵의 사람이 되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무지개 빛깔로

새로운 결심을 꽃피우며

또 한 해의 길을

우리 함께 떠나기로 해요

- 시집 <사계절의 기도>에서

연말연시가 되니 여러 친지들이 부쩍 이 작은 수녀가 쓴 시들을 꾸며서 보내주곤 합니다. 이 시는 많은 누리꾼들이 그림엽서나 영상으로도 만들어 공유한 새해 시입니다.

지난해 어느 여름날 하늘에 뜬 쌍무지개를 보고 수녀원 베란다에서 일제히 감탄하던 즐거운 시간을 자주 떠올려 보곤 합니다. 평소에는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수녀들조차 어찌나 환호하며 좋아하던지 잠깐 지나가는 아름다운 무지개의 위력을 절감하였지요.

올 한 해는 제가 무지개를 바라보고 감탄하였을 때의 그 반가움과 설렘을 기억하며 하루 한순간도 무미건조하지 않게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살아가노라면 이렇게 저렇게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먹구름으로 덮쳐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 희망의 무지개가 뜨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매일 새롭게 올라가야 할 일상의 언덕길에서 끊임없이 창의적인 무지개 빛깔로 사랑의 노력을 계속하다 보면 승리의 고운 무지개 하나 제 마음의 하늘에도 펼쳐지리라 믿습니다.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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