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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직설]뮤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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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구를 보겠어요?” 자신이 관찰해온 초상화 모델의 사소한 습관을 나열하는 화가에게 모델은 말한다. 우리는 정확히 같은 자리에 있다고. 당신이 캔버스 앞에서 나를 그리고 있는 동안, 나 역시 의자에 앉아 당신을 보고 있었다고.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 엘로이즈와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야 하는 화가 마리안느의 사랑을 담은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예술가에게 귀속되었던 응시의 자격을 뮤즈에게 부여한다. 그리고 예술에서 주체와 대상이 맺어온 관계를 묻는다. 그런데 예술가와 뮤즈가 시선의 평등을 이루는 일은 정말 가능할까?

경향신문

엘로이즈와 마리안느, 두 연인의 입장은 동등하지 않다. 죽은 연인 에우리디케를 저승에서 데려오는 길에 뒤돌아보면 안된다는 금기를 어기고 다시 연인을 잃은 오르페우스의 신화를 함께 읽는 장면에서, 그 차이가 드러난다. 먼저 하녀 소피는 사랑을 참지 못하고 연인을 다시 죽게 만든 오르페우스를 비판한다. 한편 마리안느는 오르페우스가 연인이 아니라 에우리디케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하는 시인이 되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에 엘로이즈는 에우리디케가 스스로 오르페우스에게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고 해석한다. 마리안느가 오르페우스를 미성숙한 연인이 아니라 열정적인 시인으로 뒤집어본다면, 엘로이즈는 기억하려는 시인의 욕망을 기억되려는 뮤즈의 요구로 한 번 더 전복하는 것이다. 뒤돌아보라고 말하는 에우리디케의 마지막 모습은 결혼을 앞두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엘로이즈 자신의 것이 되어 저택을 떠나는 마리안느의 눈에 영원히 담긴다.

몇 년 후, 마리안느는 연주회장에서 엘로이즈를 멀리서 바라본다. 과거에 마리안느가 하프시코드로 연주해 주었던 비발디의 사계를 관현악으로 들으며 감정에 북받친 듯 울고 있는 엘로이즈의 얼굴은, 여름 3악장이 흐르는 내내 롱테이크로 카메라에 담긴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가 자신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엘로이즈는 울고 있는 자신의 옆얼굴이 마리안느에게 응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엘로이즈는 예술가의 시선을 그대로 되돌려주거나 멈춰선 채로 기억되려는 뮤즈가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며 살아 움직이는 초상화를 스스로 완성하는 예술가가 되는 셈이다. 아니, 애초에 엘로이즈는 관념적으로 그려진 자신의 초상화를 비판했으며, 정혼자에게 보낼 초상화를 직접 결정했다. 시선은 전복되어 평등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녀 자신의 것이었다.

영화는 그동안 남성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대상이자 아름답지만 침묵하는 존재로 숭배되어온 뮤즈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시선의 평등은 단지 남성의 시선(male gaze)을 여성의 시선(female gaze)으로 단순히 전복하는 작업이 아니라 시선 자체에 깃든 위계와 권력을 질문하고 그 형질을 바꿔보려는 과정에서 획득된다. 이는 예술가의 뮤즈, 아내, 애인, 누이로 명명된 수많은 이름들과 창조적인 협업을 삭제해온 예술의 역사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마리안느가 엘로이즈, 소피와 함께 임신중절을 화폭에 담아내는 공동작업과 자신의 회화를 아버지 이름으로 출품하는 모습은 남성과 예술가 중심으로 주조된 예술사의 앞뒷면을 보여준다.

이 시선의 평등은 여성 예술가들과 더불어 역사에서 누락되어온 여성 퀴어의 사랑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사랑은 유혹이나 동정, 위계에 의해 한순간 빠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관찰하는 섬세한 시선과 조금씩 알아가는 대화 속에서 천천히 깊어진다.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에게 묻는다. “모든 연인들이 사랑을 창조하고 있다고 느낄까?” 마리안느는 대답 대신 키스를 하지만 영화는 이미 우리에게 말했다. 모든 연인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매번 사랑을 창조할 수 있다고. 그리고 그 창조는 서로를 동등한 위치에서 마주 보는 시선과 대화로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말이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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