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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미국과 한국의 연말연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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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명절이 되면, 개인은 잠시 노동을 내려놓고 가족·친족과 모여 ‘의례’를 하고, 또 연인·친구·친지와 어울려 논다. 미국과 한국의 연말연시 풍경을 그려본다.

미국에서는 11월 넷째주 목요일 ‘추수감사절’(Thanksgiving)부터 이듬해 ‘새해 첫날’까지를 ‘휴가철’(holiday season)이라 한다. 직장인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휴가를 쓴다. 추수감사절에는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하는 풍습이 있다. 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금요일은 직장이 쉬는 경우가 많아, 나흘간 연휴를 즐긴다. 그들은 금요일과 주말에 가족과 함께 쇼핑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유통업체에서는 이때를 기다렸다가 대규모 할인판매 행사를 한다. 이를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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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추수감사절 연휴가 끝나면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된다. 상점은 각각 크리스마스트리 등 조형물과 화려한 조명으로 거리와 가게 진열장을 장식하고, 몇몇 라디오 음악방송에서는 12월 25일까지 종일 크리스마스 캐롤을 틀어준다. 학교는 크리스마스 주 월요일부터 1월 첫주 월요일까지 약 2주간 겨울방학을 한다. 그 마감 시점도 확실하다. 상점은 보통 ‘새해 첫날’ 저녁 9시에 조명을 끄고, 그다음 날 또는 첫 주말까지 조형물을 완전히 철거한다. 학교는 1월 첫주 화요일 봄학기를 시작한다. 이렇게 개인은 가족에서 사회로 생활의 중심을 옮긴다.

한국인은 새해 첫날부터 설날 연휴에 이르는 최소 20일 이상 동안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새해 첫날은 공식적으로 일 년이 시작되는 날이다. 공식적으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행사를 하나, 개인은 그렇지 않다. 하루만 공휴일이라, 가족이 여러 군데 흩어져 사는 경우 모두가 모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다음 날 1월 2일 관공서·기업 등 조직은 시무식을 하고, 일상에 복귀한다.

설은 새봄맞이 행사다. 봄의 문턱인 입춘(立春)이 이 무렵 있어, 조상 때부터 정월 초하루를 봄의 시작으로 여겨왔다. 1989년 이후 한국인은 3일간 설 연휴를 가지며, 원가족을 찾아 한데 모인다. 이를 민족대이동이라 한다. 설날에는 가족·친족이 모여 차례·성묘·세배 등 가족 행사를 하고, 같이 식사하고, 윷놀이·화투놀이 등을 한다. 그러나 친가와 시가·처가를 모두 방문해야 하는 사람은 의례를 마치자마자 뿔뿔이 흩어지느라 바쁘다. 여성이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명절 이혼’이 사회문제가 되어 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정월대보름까지 마을 단위 축제가 열렸으나, 이제는 거의 다 사라졌다.

1930년대 조선총독부는 한국인의 새봄맞이를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용어를 만들어 비난했다. 설을 두 번 쇤다는 뜻이다. 일제는 조선인 동화 야욕을 숨기고 합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공권력으로도 사회를 지배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제 한국인은 새해맞이와 새봄맞이를 혼동하지 않는다. 이중과세는 정말로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전통을 슬기롭게 재창조한 것이다. 남은 문제는 명절 이혼, 공동체 해체 등 사회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있다. 미국인의 새해맞이와 한국인의 새봄맞이를 비교해보면서, 가족·친족 구성원 간 소통과 이해를 증진하고 놀이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명절 문화를 재창조하는 것이 그 해결의 실마리라는 생각이 든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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