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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기고] 누구의 편도 아닌 `호르무즈 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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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호르무즈 파병이 독자 파병 형태로 결정됐다. 아덴만에서 활동 중인 청해부대의 작전 반경을 한시적으로 넓히는 방식으로 호르무즈해협에서 항행의 자유 보장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한국이 동참하는 것이다. 결정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요인은 처음 이 문제가 "미국 요구에 응하느냐, 아니냐"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와는 관계없는데 미국 요구 때문에 억지로 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됐고 그래서 파병은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외교적으로 이란과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문제는 앞으로도 우리는 이러한 결정의 순간을 많이 맞이할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국제사회에서 항상 발생하고 있는 여러 가지 갈등의 순간에 우리가 선택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의 배경을 살펴보면 처음 우리가 가졌던 인식의 틀이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2019년 4월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의 봉쇄를 위협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2019년 5월에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던 4척의 외국 국적 선박이 공격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2019년 7월에는 영국 국적 선박이 나포되었고, 같은 해 9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유전시설이 공격당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9년 9월에 미국이 주도한 국제해상안보구상이 구축되었고 여기에는 중동 지역 국가들과 함께 영국과 호주가 참여했다. 이란 문제에 미국과 다른 인식을 하고 있는 프랑스는 별개의 해상 연합을 구성했고 여기에는 덴마크, 네덜란드 등이 동참하고 있다. 인도와 일본 역시 미국, 유럽 국가들과 별도로 독자적인 활동을 할 예정이다. 이러한 국제적인 노력의 배경에는 항행의 자유 보장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국제적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과 함께 에너지 수급에 대한 자국의 이익 보호에 있다. 우리나라 역시 연 170척의 선박이 900회 정도 호르무즈해협을 지나고 있다. 원유 수급의 70%가 이 경로를 통하고 있다. 우리나라 선박에 직접적 위협이 가해진 상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이익 보호와 함께 항행의 자유 보장이라는 명분에 동참해야 한다는 상황 인식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긴장의 배경에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있는 만큼 우리 정부가 쉽게 결정하기는 어려웠고, 항행의 자유 보장이라는 명분이 합당하더라도 현실에서 참여 방식에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한미 동맹 문제와 이란과의 관계가 고민을 더한다.

앞으로도 이러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쪽의 이익이 다른 쪽의 손해로 인식되는 제로섬 상황이 강화되면 우리의 선택은 더욱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떠한 기준에 따라 선택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며, 그러한 선택의 기준은 이해가 엇갈리는 두 국가 사이에서 설득력을 가져야만 한다. 사안마다 미국의 편을 드는 것이냐, 아니면 다른 편을 드는 것이냐로 인식된다면 우리의 선택은 한쪽에는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명확한 선택 기준을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 즉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그리고 이번의 경우 국제적 규범으로 제시되고 있는 항행의 자유가 우리의 선택 기준이다. 누구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주권국가로서 지키고자 하는 가치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 우리 선택의 명분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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