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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메르스 비극의 교훈… 우한 폐렴, 병원 내 슈퍼전파자 차단 급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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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환자 44%가 병원서 감염… 유증상자 철저 격리ㆍ촘촘한 검역 시스템 필요
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우한 폐렴' 국내 1호 확진자인 30대 중국인 여성이 입원 중인 인천의료원의 21일 모습. 이한호 기자 /2020-01-21(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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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정성희(가명ㆍ63)씨는 두통이 심해 가족과 서울의 한 국립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상한 경험을 했다. 응급실 진료를 위해 출입자 명단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병원 직원이 편법을 지시한 것. 직원은 “응급실 출입이 가능한 보호자는 환자당 1명인데 불편하니 일단 아무나 이름을 쓰고 나머지는 출입증을 돌려 쓰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폐렴 집단발병 사태를 일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국내 유행을 막으려면 응급실에서부터 엄격한 환자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현장에선 출입기록이 부실하게 작성되고 있는 셈이다. 만에 하나 우한 폐렴 환자가 입원한 병원에서 이러한 상황이 재연된다면 어떤 결과를 마주하게 될까. 2015년 38명이 사망해 전국을 떨게 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의 비극도 이 같은 부실한 의료기관 관리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환자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국내에서도 자칫하면 메르스 유행 사태가 재발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를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①의료시설 관리 강화를 통해 ‘슈퍼전파자’의 병원내 대량 감염 사태를 예방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불어 ②언제 확진자로 떠오를지 모르는 유증상자를 제대로 관리하고 ③촘촘한 검역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슈퍼전파자 놓치면 메르스 사태 재발

혹시나 면역력이 약해 바이러스 활동 정도가 뛰어난 우한 폐렴 확진 환자(슈퍼전파자)가 관리 부실 병원에 입원할 경우 순식간에 메르스 사태와 버금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실제 메르스 사태 당시 국내 16개 병원에서 186명의 확진환자가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44.1%가 병원을 방문하거나 입원했다가 바이러스에 노출된 환자였다. 나머지는 환자를 간병한 사람(32.8%)이나 의료인(13.4%)이었다. 무엇보다 전체 환자의 83.2%가 5건의 슈퍼전파 사건에 의해 발병했는데 첫 번째 환자(28명)와 14번째 환자(85명)가 감염시킨 환자만 113명에 달했다. 당시 보건당국은 최초 환자가 병실 밖에서 여러 사람과 접촉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메르스의 전염력을 과소평가해 다른 병실에서 추가로 환자가 발생할 가능성을 검토하지 않고 역학조사를 종료했다.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는 메르스 사태를 겪은 후 응급실을 중심으로 한 보고체계가 강화돼 이전처럼 병원에서 환자가 대량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현재는 응급실 입구 앞에 환자를 분류하는 별도의 공간이 설치된 병원이 많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되는 환자가 다른 환자들과 섞일 가능성이 낮다는 이야기다. 음압병실 역시 국가지정입원치료 격리병상만 161개 병실, 198개 병상이 확보돼 있다. 이주현 질본 자원관리과장은 “300병상 이상 병원 역시 음압병상을 갖추도록 의료법이 개정돼 있고 그래도 부족하면 지역거점 병원을 중심으로 병상을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지역사회 유증상자 확보가 관건

춘제 기간 10만명의 중국 관광객이 몰려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우한 폐렴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어 촘촘한 검역망에 대한 요구가 날로 커지고 있다. 비록 우한발 항공편에 대해 ‘게이트 검역’을 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발 항공편 승객들은 입국장 발열 검사만 통과하면 되기 때문에 허술하다는 우려가 높다. 하지만 22일 질본은 당장 입국장의 검역을 더 강화하지 않고, 지역 보건소와의 협력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검역단계에서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잠복기 환자까지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지역사회 의료기관들의 대응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마구잡이식 검역보다 초점을 좁혀 실효를 거두겠다는 계획이지만, 매일 늘어나는 유증상자들에 대한 지역사회 검역이 실패할 경우 사태는 겉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 수 있다.

실제 이날 오후 전북 전주시에서도 20대 대학생이 조사대상 유증상자로 분류돼 전북대병원으로 격리됐다. 이 학생은 오전에 발표된 질본 통계에는 기록되지 않은 환자로 이달 초 우한시를 거쳐 입국한 이후 고열 등 우한 폐렴과 유사한 증상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가 잘 대처하고 있지만 언제나 파국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병원들에도 미리 유사시 감염병 환자가 입원할 수 있다고 알리는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이날 질본에 따르면 발열과 기침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폐렴과 비슷한 증상을 보여 격리된 조사대상 유증상자는 모두 16명으로 전날보다 5명 늘었다. 20일 감염이 확인돼 확진환자로 분류된 35세 중국인 여성 1명을 제외한 15명은 검사 결과에서 음성이 나와 격리가 해제됐다.

박혜경 질본 위기대응생물테러총괄과장은 “시기적으로는 춘제 기간을 1차 위험 기간으로 보고는 있지만 중국 외곽 지역을 제외하고는 중국 내에서도 환자가 계속해서 나올 거라고 보여진다”면서 “춘제 이후에도 계속해 중국에서 환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이들이 한국에 유입될 수 있으니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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