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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돌아온 탕자 ‘굴비’…옛 명성 되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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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연잎굴비세트·현대백 진공포장 굴비

비린내·손질 불편함 잡은 상품 잇따라 출시

설판매량 최대 12%↑…한우 매출도 넘어서

헤럴드경제

한 때 명절 선물의 황제로 군림했던 굴비는 최근 2~3년전부터 시대 흐름에 밀려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런 굴비가 귀환하고 있다. 굴비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두릅’을 버리고 진공포장이라는 새로운 포장술을 받아들이면서다. 사진은 설 선물세트 판매기간 현대백화점에서 모델들이 10만원 이하 ‘실속형 굴비 세트’를 선보이는 모습 [현대백화점 제공]


#1990년 구정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김미연(15·가명)씨는 어머니의 흐뭇한 미소를 보았다. 아버지 거래처에서 설 선물로 굴비세트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며칠은 반찬 걱정 안해도 되겠다”며 짚으로 엮인 굴비를 정성스레 하나씩 빼내 내장을 제거한 후 비닐에 싸 냉동실에 넣었다.

#2020년 맞벌이 주부가 된 김미연(45)씨는 설 선물로 온 택배상자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거래처 사장님이 굴비세트를 보내준 것이다. 나름 신경을 써 고가의 선물을 보낸 것이겠지만, 냉장고 정리할 시간이 없어 냉동실이 꽉 찬 김씨로선 반갑지 않았다. 특히나 냉장고 넣기 전에 손질도 필요해 김씨는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굴비는 귀한 원재료와 비싼 가격 덕분에 고급 명절 선물의 대표주자로 꼽혔다. 굴비를 명절 선물로 받는 것이 자랑꺼리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표주자 자리를 한우에게 넘겨주는가 하면, 심지어 젊은 고객들에게는 ‘기피 선물’이 되는 등 굴욕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도 굴비의 자리가 위태롭다. 올해 A마트의 설 선물세트 본판매에서 굴비세트 매출액은 지난해에 비해 약 20% 줄었다. A마트는 굴비 세트 판매를 촉진하고자 올해 5~10만원대의 가성비 세트를 각각 한 개씩 추가했지만, 굴비세트의 역신장을 막진 못했다. B마트 역시 굴비 매장을 단장하고 설 선물세트 중앙에 굴비를 배치했지만, 매출은 두자릿 수 감소율을 보였다.

이처럼 굴비가 소외받는 것은 최근 소비 트렌드와 다소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1~2인의 소형 가구가 많아진 상황에서 한 두릅(20마리) 단위로 파는 굴비 세트는 사실 양이 너무 많다. 이와 함께 냉장고에 넣기 전에 손질이 필요하거나 구울 때 냄새가 나는 등의 점은 ‘편리미엄’을 추구하는 젊은 고객들의 취향에도 맞지 않다.

하지만 최근 일부 유통매장을 중심으로 굴비가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일부 유통회사가 굴비세트의 단점인 비린내와 손질의 불편함 등을 잡은 상품을 내놓자 소비자들이 차츰 호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상품이 이마트의 연잎으로 굴비의 비린내를 잡은 ‘연잎 굴비세트’와 현대백화점의 쌀과 천일염 등으로 자연 발표시켜 덜 짜고 덜 비린 ‘진공 포장 굴비’ 등이다. 이와 함께 소형 가족을 위한 5미, 10미의 소형 포장세트, 별 다른 조리 과정 없이 먹을 수 있는 ‘고추장 굴비’, 에어프라이어로 데우기만 하면 되는 ‘찐 부세 굴비세트’ 등도 있다.

덕분에 이 두 업체의 굴비 판매 신장률이 플러스로 전환됐다. 이마트는 올해 설 선물세트 본판매 기간 동안 굴비세트 판매량이 8% 늘었다. 전체 수산세트에서 굴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70%대까지 회복했다. 현대백화점도 올해 굴비세트 매출 신장률은 12.7%로, 수년 만에 한우(10.5%)를 넘어섰다.

윤상경 현대백화점 신선식품팀장은 “굴비는 최근 소비트렌드와 다소 맞지 않는 명절 선물세트 중 하나였다”며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 것이 고객들이 굴비를 다시 찾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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