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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매일 전화만 수백통"...구렁이도 찾아주는 지하철 유실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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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22일 오후 기자가 찾은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유실물센터는 퇴근 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윤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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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어디쯤에서 잊어버리셨나요?”

지난 16일 오후 서울 2호선 시청역 대합실. 바삐 움직이는 행인들은 개찰구 옆 유리문을 무심히 지나쳤다. 그 위로 내걸린 작은 하얀색 간판에는 ‘지하철 유실물센터’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문 너머 대여섯평 공간에 앉아있는 직원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이들 앞에 놓인 전화는 수화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또다시 울렸다. 이렇게 하루에 걸려오는 전화만 수백 통이다.

전화가 울리는 책상 뒤편엔 또 하나의 문이 있었다. 열평 남짓한 크기의 유실물 창고로 들어가는 입구다. 벽 안쪽과 통로를 따라 벽돌 쌓듯 차곡차곡 들어찬 각종 박스와 책, 쇼핑백 등만 5000여개. 지하철에서 주인 잃은 물건들이 하나둘 모여 쌓여있었다.



유실물 센터 1~8호선에 4곳..."유실물 전화 하루에 수백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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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기자가 찾은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유실물센터 창고에 주인 잃은 물건들이 쌓여있다. 윤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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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 2호선 유실물센터에서 근무하는 장새민(32)씨는 갓 2년 차를 넘은 막내 사원에게 지하철 유실물 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두 명의 선배와 함께 각종 유실물 접수ㆍ보관 및 유실물의 경찰서 이관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지하철 유실물센터는 지하철 1~8호선에 걸쳐 총 네 군데 있다. 시청역ㆍ충무로역ㆍ왕십리역ㆍ태릉입구역이다. 센터마다 3명의 직원이 소수정예로 근무한다. 운영시간은 모두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시간 외엔 24시간 콜센터로 전화가 연결된다.

지하철 분실물이 발생하면 역무원이 물건을 회수하고 경찰청 유실물 포탈에 등록한다. 이후 일주일 안에 관할 유실물 센터로 옮겨진다. 이 후 일주일 동안 주인이 찾아오지 않으면 경찰서나 유실물센터 창고에 6개월을 더 보관한다. 주인이 끝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국가 소유로 귀속되거나 소외된 이웃에게 기부된다.



물건 되찾는 '골든타임' 20분...탑승시간·칸 번호 알면 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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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유실물센터 처리실적.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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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잃어버린 물건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지하철 유실물센터 4곳의 처리실적은 2016년 총 12만9422건에서 지난해 13만9615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다시 주인을 찾아가는 분실물 비율은 같은 기간 79%에서 70%로 낮아졌다. 분실물 10개 중 3개는 끝내 주인을 찾지 못하는 셈이다. 장씨는 “매일 유실물센터로 수백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며 “물건을 찾아달란 전화뿐 아니라 분실물을 발견했다는 신고 전화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분실물을 되찾을 가능성이 가장 큰 ‘골든타임(황금시간대)’이 있을까. 장씨는 “물건을 잃어버린 뒤 20분 이내”라고 설명했다. 유실물센터로 연락해 물건을 회수할 때까지 가장 빠른 시간이 20분이라는 것이다.

열차 탑승 시간이나 승차했던 지하철 객차 칸 번호를 알면 분실물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승객이 탄 객차를 추정할 결정적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탑승한 객차 출입문에 적힌 칸 번호를 기억하면 역무원이 열차 전체를 찾을 필요가 없어 물건을 더 신속하게 되찾을 수 있다. 탑승 시각을 모르면 교통카드를 조회해 알아낼 수도 있다.

장씨는 “최근 지하철 분실물을 노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신고 시간이 늦어질 수록 잃어버린 물건을 도둑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가장 많이 잃어버리는 ‘지갑’...분실물이 시대상 반영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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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기자가 찾은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유실물센터 창고에 쌓인 주인 잃은 물건에 유실물표가 붙어있다. 윤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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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지하철 이용객이 가장 많이 분실한 물품은 지갑(22.2%)ㆍ휴대폰 및 귀중품(19.7%)ㆍ가방(19.5%) 순이었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가방을 선반에 놓고 내리는 경우가 많다. 탑승객이 많아 물건을 들고 있기 힘들거나 바닥에 내려놓을 공간이 없어서다.

분실물이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10년 전만 해도 유실물센터에 넘쳐나던 ‘MP3 플레이어’는 자취를 감췄다.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대체한 영향이다. 대신 최신 유행 아이템인 무선이어폰이 단골 손님의 자리를 꿰찼다.

장씨는 “최근엔 승객들이 ‘에어팟(미국 애플사의 무선 이어폰)’을 많이 분실해 별도의 보관함을 만들 정도”라며 “예전에는 많았던 책이나 MP3플레이어도 스마트폰이 해당 기능을 대체하며 유실물센터로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상천외한 분실물도 있다. 충무로역 유실물센터 직원들은 몇 년 전 배달된 정체 모를 상자 때문에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상자 안을 열어보니 성인 남성 팔뚝만 한 구렁이가 기어나왔기 때문이다. 윤정애 충무로 유실물센터장은 “구렁이를 잃어버렸던 중학생은 센터를 찾아와 너무 고마워 해 직원들 모두 웃음이 터졌다”며 “앞으로 더 특이한 분실물을 보긴 어려울 것”이라며 웃었다.

유실물센터 직원의 당부...“소중하지 않은 물건은 없어요”

사소하게 보이는 물건에도 누군가의 사연이 담긴 만큼 이를 찾아주는 것은 보람된 일이다. 지난해 가을 왕십리 유실물센터로 한 할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평생 소중히 간직했던 반지와 목걸이를 넣은 가방을 깜빡 졸다 지하철에 두고 내린 것이다. 10명이 넘는 직원이 3~4시간에 걸쳐 비슷한 시간대에 운행한 열차를 모두 수색해 찾아냈다.

고경숙 왕십리역 유실물센터 사원은 "당시 할머니께서 몇번이고 고맙다는 전화를 하셨고, 직접 유실물센터로 찾아와 인사해주셔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전했다.

장씨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에 당부의 말을 남겼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고객이 ‘이런 물건은 유실물로 취급 안하지 않냐'고 문의하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별 볼 일 없는 물건이라고 해도 저희에게는 모두 같은 유실물입니다. 세상엔 소중하지 않은 물건은 없으니까요.”

윤상언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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