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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마스크 거꾸로 쓴 우한 시장···중국 분노 부른 지도부 엉뚱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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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민심 달래려고 급하게 열었다가 ‘재난’ 소리 들어

성장은 쓰지 않은 마스크를 시장은 거꾸로 착용하고

후베이성 마스크 생산 108억개? 108만개? 오락가락

회견 끝난 뒤 박수까지 치자 중국 네티즌 분노 폭발

신종 폐렴이 중국 당국의 초기 대응 실패로 확산일로인 가운데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가 28일 다소 이례적인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용감하게 기자회견에 나선 후베이(湖北)성 관리들에 대해 비평은 하되 제발 매도는 하지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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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베이성 주요 인사들이 지난 26일 연 기자회견이 민심을 달래기는 커녕 오히려 '재난'이란 비난을 받고 있다. 가운데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왕샤오둥 성장, 맨오른쪽이 마스크를 거꾸로 쓴 저유셴왕 우한 시장, 맨왼쪽이 콧구멍이 드러난 채 마스크를 쓴 비에비슝 후베이성 성정부 비서장. [중국 환구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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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장황하게 쓴 사설에는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슈퍼맨은 더욱 없다”며 “비평과 함께 개선에 나설 여지를 주자”고 호소했다. 신종 폐렴의 진앙인 후베이성 관리들에 대한 비판이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사전 차단에 나선 모양새다.

도대체 환구시보가 언급한 ‘후베이성 관리의 기자회견’이 어땠길래 이런 사설까지 등장하게 됐을까. 바로 지난 26일 저녁에 열렸던 후베이성의 신종 폐렴과 관련한 기자회견이 그러잖아도 울분에 차 있던 중국인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이날 기자회견은 시시각각 흉흉해지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다소 급하게 마련됐다. 후베이성 성장인 왕샤오둥(王曉東)과 우한(武漢)시 시장인 저우셴왕(周先旺), 후베이성 성정부 비서장인 비에비슝(別必雄) 등 세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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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셴왕 우한시 시장이 27일 중국 국영 CCTV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저우 시장은 이번 폐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리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 CC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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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네티즌은 한마디로 이날 기자회견이 신종 폐렴에 이은 또 하나의 ‘재난’이라고 평했다. ‘목불인견의 기자회견’이란 말도 나왔다. 우선 참석한 세 사람의 마스크 착용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왕샤오둥 성장은 아예 마스크를 끼지 않았고 저우셴왕 우한 시장은 마스크를 착용하긴 했는데 거꾸로 끼고 있었고, 비에비슝 비서장은 마스크를 썼지만, 콧구멍이 드러나 이게 쓴 건지 아닌지 모를 정도였다는 것이다.역병과의 전투에 나선 장수들의 모습을 보니 우선 내부적으로 사상 통일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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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 중국 총리가 27일 우한 현지 시찰에 나서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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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영도(리더)의 위신이 서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는 지적이다. 성장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는데 부하인 시장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건 상사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이란 비판이 나왔다. 세 번째는 팀 스피릿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시장이 마스크를 거꾸로 써도 아무도 고쳐주는 이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더 가관인 건 허둥대면서 말하는 숫자마다 다 틀린다는 비난이었다. 왕샤오둥 성장이 모두가 관심을 갖는 마스크 문제에 대해 말하겠다면서 셴타오(仙桃)시의 방호복과 의료용 마스크 생산은 차질이 없다고 언급한 것까지는 좋았다.

한데 마스크의 연 생산 능력이 108억개에 달한다고 잘못 말했다. 밑에서 바로 쪽지가 올라왔다. 그러자 왕 성장은 아까 말한 마스크 생산 능력 규모에 착오가 있었다면서 108억 개가 아닌 18억 개로 수정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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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폐렴과 사투를 벌이는 우한을 지원하기 위해 떠나는 엄마를 보는 아들이 모습이 애틋하다. [중국 환구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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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또다시 쪽지가 전달됐다. 왕 성장은 2차 정정에 나섰다. 후베이성의 마스크 생산 능력이 108만 개로 조금 전 ‘만’을 ‘억’으로 잘못 말했다고 밝혔다. 기자 회견이 끝난 뒤 이들은 손뼉까지 쳤다.

보통 회의가 끝난 뒤 손뼉을 치긴 하나 재난 상황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박수가 웬 말이냐는 욕설이 쏟아진 건 당연지사다. 중국 인터넷엔 “어떻게 이런 성장을 우리가 만났나” “후베이성엔 도대체 몇 개의 마스크가 있는 것이냐” 등의 비난이 이어졌다.

“이들 셋은 자신의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1000만 우한 시민을 이끌고 신종 폐렴과의 싸움을 지휘하겠다는 것이냐. 미치겠다!”는 글도 올라왔다. 저우셴왕 우한 시장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자신의 회견 점수로 80점을 부여하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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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폐렴 확산을 막기 위해 베이징 공공버스에 대한 소독이 실시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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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중국 여론이 들끓으며 후베이성 집권층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자칫 중국 공산당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까 염려되자 환구시보가 발 빠르게 사설을 게재해 진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환구시보는 지금은 보이지 않는 질병과의 싸움에 온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니 비판은 하되 매도까지는 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만큼 중국 공산당의 불안도 크다는 방증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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