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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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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대선주자 빅매치? 여기선 갑툭튀일뿐”… 복잡해진 종로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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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으면 이낙연도 힘들어” “황교안, 행동만 컸지 실속이 없으니”

‘동쪽 진보ㆍ서쪽 보수’ 공식 흔들… 대권 ‘잠시 들르는 코스’ 피로감도
한국일보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1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주민들과 인사하고 있다.(왼쪽 사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1일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 입당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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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창신동은 더불어민주당의 오랜 텃밭이다. 민주당 소속 정세균 국무총리가 승리한 19대 총선에서 그가 창신2동에서 가져간 표(3,225표)가 홍사덕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후보(1,572표)의 2배가 넘었다. 박진 전 한나라당 의원이 손학규 통합민주당 후보를 꺾은 18대 총선에서도 창신동은 손 후보에 표를 몰아줬다. 창신동에서 40년째 옷 가게를 하는 고수창(71)씨는 “여기는 다가구주택에 서민이 많이 살고, 호남 인구 비중이 70~80%는 된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발길이 뚝 끊긴 11일 창신골목시장에서 만난 통닭집 사장 황모(59)씨는 “요즘 같으면 이낙연 전 총리가 될 것 같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단골손님들이 ‘나도 호남 사람이지만 이건 아니지 않냐’고 하더라”면서 황씨는 지난달 이 전 총리가 시장을 찾았던 때의 일화를 들었다.

“이 전 총리가 우리 가게 앞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박수근 가옥 같은 문화재를 잘 발굴하겠다고 했어요. 상인들이 ‘지금 손님이 없어 산 사람도 죽어가는데, 무슨 얘길 하는 거냐’고 화를 내니까 머쓱해 하더라고요. 지역민 눈높이에 맞춰야지, 이벤트를 하러 오면 되겠습니까. 정 총리가 약속한 지역 개발도 소식이 없고…”

냉랭해진 표심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향하는 것도 아니었다. 같은 시장에서 8년째 전을 파는 추모(74)씨의 말. “본인이 약속한 보수 통합도 지지부진하고, 여하튼 종로 선택은 너무 늦었어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때문에 화가 나 한국당을 밀어주고 싶어도 야당 대표가 행동만 컸지 실속이 없으니 찍어줄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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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설 연휴인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창신골목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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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서보? 복잡해진 종로 방정식

종로는 창덕궁을 기준으로 ‘동쪽은 진보, 서쪽은 보수’로 갈린다. 동쪽의 창신동과 혜화동, 이화동 등은 서민층 거주 비율이 높고 성균관대 등 대학가를 품고 있어 민주당에 유리한 지역으로 꼽힌다. 서쪽에 속해 있는 전통적 부촌인 평창동, 사직동은 보수 성향이 짙다. 정 총리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이긴 20대 총선 때도 오 전 시장의 득표율이 더 높았다. 민주당 소속 종로구의원은 “유권자 수는 동쪽이 많지만, 투표율은 서쪽이 더 높아 매번 막상막하 승부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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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총선 이후 종로의 정치 지형이 바뀌었다. 19, 20대 총선에서 정 총리가 내리 승리했고,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박원순 시장이 종로의 모든 지역에서 김문수 한국당 후보를 압도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연이은 선거 패배로 지역 조직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라고 했다. 종로는 지금도 한국당의 ‘사고지구’(당협위원장이 없는 지역구)로 분류돼 있다.

이 전 총리와 황 대표가 맞붙어 이번 총선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이후 종로 민심은 더없이 복잡해 진 듯하다. 민심은 두 사람 사이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혜화동에서 공인중개업을 하는 강신우(75)씨는 “의원, 구청장 다 민주당으로 바꿔줬더니 결국 똑같더라. 이번에는 황 대표를 밀어 줘 정부ㆍ여당의 폭주를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성균관대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장모(30)씨는 “정권 심판론은 지겹다. 민주당은 지지하지 않지만 정책 선거를 주장하는 이 전 총리에게 더 믿음이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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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1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의 이승만 전 대통령 사저인 이화장을 방문해 조각당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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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툭튀’ 거부감 극복이 관건

이번 종로 선거는 대선 전초전과 다름없다. 대선주자 2명의 정치적 운명이 이 지역 표심에 달려 있다. 그러나 종로 유권자들은 제 손으로 대선주자를 키워낸다는 자부심보다는 종로가 대권으로 향하는 길에 ‘잠깐 들르는 코스’로 여겨지는 데 대한 피로감이 더 큰 듯했다. 평창동에서 25년 거주한 황모(61)씨는 “종로가 정치 거물들을 많이 배출했다지만, 교통이나 주거환경이 전혀 나아진 게 없다”고 했다. 정 총리가 공약한 ‘지하철 개통’이 진척되지 않는 데 대한 주민들의 실망이 큰 듯했다. 황씨는 “대선주자들을 위해서 종로 유권자가 있는 건지, 그들이 우리를 위해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통인시장에서 30여년간 음식점을 운영한 정모(54)씨도 “이 전 총리나 황 대표나 지역에서는 검증 안 된 신인”이라며 “두 사람 모두 총리 시절에는 종로에 별 관심도 없다가 이제 와서 인연을 강조하는 것을 보니 믿음이 안 간다”고 했다.

전북에서 4선을 한 뒤 종로로 지역구를 바꿔 재선에 성공한 정 총리는 ‘골목길 스킨십’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샀다. “주민 3명이 모이면 정세균이 나타난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전 총리가 정 총리의 지역적 기반을 물려 받아 유리하긴 하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황 대표가 종로를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하면 판세가 바뀔 것”이라며 “아무도 쉽게 승리할 수 없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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