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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재판 개입’도 무죄, ‘사법농단 단죄’ 무산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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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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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판사에게 14일 다시 무죄가 선고됐다. 7개 재판부에서 14명의 전·현직 판사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돼왔는데, 3개 재판부에서 5명째 무죄가 나온 것이다. 이번엔 재판에 대놓고 개입한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 처음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가 ‘헌법 위반이긴 하나 형법상 직권남용죄는 아니다’라고 밝혀, 이런 식의 재판을 통해 과연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행위에 응분의 단죄를 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다시 위기에 빠져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는 이날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 특파원의 명예훼손 사건 등 판결에 개입해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임 부장판사는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시절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의 협조가 필요했던 법원행정처의 임종헌 당시 차장한테서 청와대의 의중을 전달받고 산케이신문 특파원 재판에 개입해 재판부의 선고문 요약본을 고치게 했다.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가 민변 변호사와 프로야구 선수 사건 판결에 개입한 사실도 모두 인정했다. 그러면서 ‘재판에 개입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사법행정권자는 재판에 관해서는 애초 감독 권한이 없어 직권남용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마디로 헌법 위반이지만 형법 위반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헌법 위반으로 국회에서 탄핵할 수는 있되 형사처벌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법리상으론 그럴듯할지 몰라도 국민들의 법감정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결론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건도 이 사건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자칫 사법농단에 대한 단죄 자체가 무산될 수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법농단’은 사법행정권자가 정치권력과 유착해 재판에 개입하고 판사들을 사찰한 전대 미문의 헌법 유린 사건이다. 그런데 법적으론 아무도 단죄하지 못한다면 사법부의 신뢰 회복 기회는 영영 사라질지 모른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잘못된 사건이 형사재판 결과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 자체가 문제”라며 “방관하는 대법원”을 비판한 이탄희 전 판사의 지적을 대법원 수뇌부는 새겨듣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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