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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中서 우한폐렴 사태 비판만 하면, 사람들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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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인민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글 올린 쉬장룬 칭화대 교수도

'저항하자' 쓴 시민기자도 실종… 소셜미디어 계정까지 모두 지워져

美인권단체 "250명이 처벌받아"

"글을 다 써 놓고 나니 처벌받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 내 생애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

중국 우한 폐렴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을 비판하며 지난 2일 이 같은 글을 쓴 쉬장룬(許章潤·58) 칭화대 법대 교수가 행방불명됐다. 영국 주간 옵서버는 "쉬 교수의 친구들이 며칠간 그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15일 전했다. 그의 흔적도 삭제되고 있다. 16일 현재 중국 최대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에서 쉬 교수의 이름을 검색하면 2015년 전 자료만 검색된다. 그의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계정은 차단됐고,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은 삭제됐다.

쉬 교수는 지난 2일 '분노한 인민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정부 비판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는 "(정부가) 입을 꾹 다문 채 속이고, 책임을 전가하다 눈 뜨고 (전염병을) 막을 기회를 놓쳤다"고 썼다. 그가 정부 비판 글을 쓴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8년 7월에는 시진핑의 3선 개헌(주석직 연임 제한 철폐)을 비판하는 '오늘날 우리의 공포와 기대'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한 뒤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혔다. 지난해 3월에는 교수직 정직 처분을 받았다.

우한 폐렴 사태에서 정부를 비판한 유명인들이 줄줄이 실종되고 있다. 중국 정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지자 중국이 정보 생산자 응징에 나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달 24일부터 우한 현장을 영상으로 고발해온 변호사 출신 시민기자 천추스(陳秋實·34)는 6일부터 연락이 끊겼다. 그의 친구인 무술인 쉬샤오둥은 천추스의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올려 "중국 당국이 부모에게 구금 사실만 알렸다"고 전했다. 천추스는 45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다. 2014년 '나는 연설가'라는 제목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국민이 아니라 지도층이 법을 무서워하는 나라를 만들자"고 말해 유명해졌다. 시민 기자를 자처하며 지난해 홍콩 시위를 취재해 주목받기도 했다. 우한 폐렴 사태가 확산되자 우한에 머물며 병원·장례식장·격리병동 등을 촬영해 열악한 현지 상황을 알렸다. 그가 카메라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앞에는 바이러스, 뒤에는 공안이 있다"고 말한 영상은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또 다른 시민 기자 팡빈(方斌)도 실종됐다. 뉴욕타임스(NYT)는 14일, 우한 병원 안팎의 실상과 독재 비판 영상을 올렸던 의류 판매업자 출신 기자 팡빈이 실종됐다고 보도했다. 그는 지난달 병원 밖에 주차된 승합차에 시신을 담은 포대 8자루가 실린 모습을 찍은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며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인증용' 영상을 올렸는데, '모든 시민은 저항하자. 인민에게 권력을 돌려주자'라는 문구를 올린 9일 영상이 마지막이다.

웨이보 스타 보만얼(伯曼兒·26)도 지난 2일 산소호흡기를 낀 상태로 '헛소문 확산 사죄 영상'을 올린 뒤 자취를 감췄다. 지난달 24일 우한 폐렴에 걸려 입원한 그는 "정부를 믿었더니 결국 이렇게 죽게 됐다"며 10여건의 푸념글을 올렸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올린 영상에서는 "나는 정부를 믿으며, 거짓 소문을 퍼뜨릴 경우 모든 책임을 질 것이다. 과거 나의 행동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며 사과했다. 현재 보만얼의 소셜미디어 계정은 삭제됐고, 그가 자발적으로 자취를 감췄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중국이 정부 비판 인사의 입을 틀어막는 일은 자주 있었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은폐를 처음 폭로한 장옌융(蔣彦永·88)도 2004년 6월부터 8개월 동안 가택 연금을 당하며 정부의 '관리'를 받았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해부터 장옌융이 또다시 가택 연금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15일 보도했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인권 단체 '중국인권수호자(CHRD)'는 "중국 전역에서 250명이 우한 폐렴 관련 소문을 퍼뜨린 죄로 처벌받았다"고 3일 밝혔다.

[이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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