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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휴먼n스토리] 국내유일 교통사고조사 '마스터'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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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경찰서 김호열 경감…23년간 교통사고조사 '한 우물'

사고 피해자들과 산행 봉사도…"비인기 업무지만 비전 있어"

(성남=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지난 2012년 안산의 한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선 덤프트럭의 운전석에 김호열(51) 경감이 앉았다.

이 트럭의 운전기사는 며칠 전 이곳에서 초등학교 5학년 A 양을 치고 달아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는 "사람을 친 줄 몰라서 그냥 간 것이지 뺑소니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김호열 경감
[김호열 경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 경감은 직접 트럭을 운전하며 사고 당시 상황을 재현했다. 그 결과 운전석의 위치가 높아 운전기사가 A 양을 보지 못한 채 출발했으며 A 양의 체구가 작은 만큼 운전석에 별다른 충격이 전해지지 않아 사고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김 경감이 내린 결론은 여러 증거를 통해 입증됐고 법정에서도 그대로 인정됐다.

그로부터 7년 뒤인 지난해 말 김 경감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교통사고조사 분야의 '전문수사관 마스터'가 됐다.

경찰은 2005년부터 특정 수사 분야에서 일정 기준 이상 경력과 능력을 갖춘 경찰관을 전문수사관으로 인증해 보직인사 등에서 우대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경력에 따라 '전문수사관'과 이보다 한단계 높은 '전문수사관 마스터'로 인증 등급이 나뉘는데 교통사고조사 분야에서 전문수사관 마스터 등급을 받은 경찰관은 김 경감이 처음이자 유일하다.

교통사고조사 경력 10년 이상, 이의조사(민원에 의한 재조사) 경력 7년 이상, 이의조사 사건 처리 실적 200건 이상, 교통사고조사 관련 논문 집필 및 세미나 참석, 강의 경험 등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찰관이 김 경감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경감은 1995년 순경으로 임관해 2년간의 파출소 근무를 마친 1997년 3월부터 줄곧 경기남부지방경찰청과 분당경찰서에서 교통사고조사 업무를 해왔다.

그에 따르면 당시 도로교통법의 몇몇 조항은 해석의 여지가 많았고 조항들 사이 우선순위 적용에 대한 해석도 제각각이었는데 김 경감은 파출소 근무 시절 이러한 문제를 체험했고 이를 바로잡고자 교통사고조사 업무에 뛰어들었다.

김 경감은 "그렇게 시작한 교통사고조사 업무만 올해로 23년째인데 현장에서 일하며 본청으로 많은 의견을 전달해 지금은 교통사고조사 지침이나 기준, 매뉴얼이 마련된 상황"이라며 "지금은 사고기록장치(EDR·Event Data Recorder)에서 데이터를 추출해 사고원인을 분석하는 교통공학 분석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교통사고로 처참하게 부서진 차량
지난 2018년 6월 26일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마정리 부근 38번 국도를 달리던 K5 승용차가 인근 건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 차량 탑승자 4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사진은 사고가 난 차량. [경기소방재난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수만건의 교통사고를 조사한 김 경감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고가 있다.

그는 "2018년 안성에서 고등학생이 렌터카를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 차에 타 있던 10대 4명이 사망했는데 당시 사고원인 등은 어렵지 않게 밝혀져 특별할 게 없지만, 렌터카 업주가 학생들이 무면허인 걸 알면서도 차를 빌려준 사실이 밝혀져 업주를 구속했었다"며 "사고 이면에 있던 문제를 찾은 사례여서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김 경감은 교통사고조사 뿐 아니라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은 이들을 돕는 일에도 나서 10년 넘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업무 도중 인연을 맺은 한국절단장애인협회 회원들과 2008년부터 매년 국내 1차례, 해외 1차례씩 산행을 한다.

김 경감은 "안산 횡단보도에서 사고를 당해 다리가 절단된 A 양도 협회로부터 케어를 받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됐다"며 "회원들에게 장애 때문에 못 할 일이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힘을 북돋아 주고자 몇몇 동료와 자비로 매년 케냐 킬리만자로, 중국 황산 등 여러 산에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경감은 현재 아주대 교통ITS대학원 석사 과정도 밟고 있다.

그는 "지능형교통체계(ITS·Intelligent Transport Systems)를 공부하고 있는데 업무와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며 "교통사고조사 업무가 사실 비인기 업무인데 노력하면 얼마든지 승진이 가능하고 마스터도 될 수 있는 비전이 있으니 후배 경찰관들이 많이 지원해 교통과 관련한 국민 불편을 덜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zorb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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