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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봉준호 “‘기생충’, 영화 자체로 오래 기억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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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환향 제작진·배우 기자회견 / “전세계 관객 큰 호응 가장 기뻐 / 한국영화계 모험 두려워해선 안돼 / 생가 복원은 사후에나 얘기했으면”

세계일보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 주역들이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먹을 불끈 쥔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맨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배우 이선균, 장혜진, 박소담, 제작사 바른손E&A 곽신애 대표, 배우 조여정, 이정은, 박명훈, 이하준 미술감독, 한진원 작가, 봉준호 감독, 배우 송강호, 양진모 편집감독. 이제원 기자


“행복한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아 기쁩니다. 경사다 보니 영화사적 사건처럼 기억될 수밖에 없겠지만 영화 자체가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촬영 기간보다 긴 각종 시상식 일정을 소화하고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을 차지한 채 금의환향한 봉준호 감독은 19일 ‘기생충’으로는 마지막 공식 석상에서 이 같은 바람을 드러내며 “(영화 창작이란) 길을 뚜벅뚜벅 걸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봉 감독을 비롯한 ‘기생충’ 제작진과 배우들은 이날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뜨거운 성원을 보내 준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

봉 감독은 “전 세계 동시대의 많은 관객들이 호응해 준 게 가장 기뻤다”고 돌아보며 “왜 호응을 해줬는지에 대해서는 시간적 거리를 두고 분석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제 업무는 아닌 것 같다”며 평단에 과제를 던졌다. 다만 “(‘기생충’처럼 빈부 격차를 다룬) ‘괴물’이나 ‘설국열차’와 달리 현실에 기반한 톤의 영화라 폭발력을 갖게 된 게 아닌가 싶다”는 분석을 곁들였다.

오는 26일 국내 개봉하는 흑백판에 대해서는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한 관객이 ‘화면에서 더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했다”면서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연기의 디테일과 뉘앙스를 더 많이 느낄 수 있다”고 관심을 당부했다. 올해 101년을 맞는 한국영화 산업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제가 1999년에 데뷔했는데 20여년간 눈부신 발전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젊은 감독들이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에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홍콩영화가 어떻게 쇠퇴해 갔는지에 대한 기억을 우리가 선명히 갖고 있는데, 그런 길을 걷지 않으려면 모험, 영화가 갖고 있는 리스크를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최근 나오는 여러 훌륭한 독립영화들을 보면, 결국은 산업과 좋은 충돌이 일어날 거라고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봉 감독은 또 작품상 수상 소감에서 언급해 화제가 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이날 편지를 보내온 사실을 밝히며 “쉬어 볼까 생각도 했는데 스코세이지 감독이 ‘조금만 쉬고 빨리 일하라’고 하셨다”면서 “다음 작품 시나리오를 써 나가는 게 영화 산업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서 동상이나 기념관 건립, 생가 복원을 추진하는 데 대해서는 “제가 죽은 뒤에 얘기해 달라”고 웃어넘겼다.

봉 감독의 페르소나인 송강호는 오스카 캠페인에 대해 “지난 6개월은 타인들이 얼마나 위대한가 알아 가는 과정이었다”며 “우리 작품을 통해 세계 영화인들과 어떻게 공감하고 소통하고 호흡할 수 있는지, 많은 걸 보고 느꼈다”고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질문에는 “할리우드가 아니라 국내에서라도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13개월째 일이 없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박명훈도 “(영화에서와 달리) 모습이 심하게 변해 있어 미국에서 아무도 못 알아봤다”며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선균은 미국 현지 기자회견 당시 “오스카가 선을 넘었다”고 한 것과 관련해 “우리가 선을 넘은 게 아니라 아카데미가 큰 선을 넘은 것 같더라”면서 ‘기생충’에 4관왕을 안긴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날 자리에서는 시상식 후일담도 쏟아졌다. 한진원 작가는 “충무로는 대학을 졸업한 뒤 아직까지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곳이라 (각본상 수상 소감에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가 “생각해 보니 충무로에 영화 산업이 많지 않은데 충무로 발언은 상징적으로 이해해 달라”고 설명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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