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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미국이 중국 관영 매체 건드린 날…中,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3명 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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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19일 미국 언론사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베이징 주재 기자 3명의 기자증을 취소했다. 중국에서 내쫓는 추방 조치다.

중국 정부는 WSJ가 이달 3일 게재한 ‘중국이 아시아의 진짜 병자’라는 제목의 칼럼이 인종차별적이란 이유를 댔다. WSJ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으나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미국 정부가 18일(미국 시각) 중국 관영 언론 매체 5곳에 대한 규제 수위를 높이자 중국이 WSJ 기자 추방으로 맞대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 중 "바드 칼리지(미국 뉴욕의 사립대)의 월터 러셀 미드 교수가 WSJ에 기고한 ‘중국이 아시아의 진짜 병자(China Is the Real Sick Man of Asia)’라는 제목의 칼럼이 중국 정부와 중국 인민의 전염병 항전 노력을 깎아내렸으며, 편집자가 인종차별 색채를 띤 제목을 달아 중국 인민의 분노와 국제사회의 비난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칼럼을 쓴 미드 교수는 WSJ의 국제 분야 칼럼니스트로 글을 써 왔다. 중국 정부가 문제 삼은 해당 글에서 미드 교수는 중국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처 방식을 비판했다. ‘중국 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실제 규모를 여전히 감추려 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중국 당국의 전염병 억제 성과는 중국 국내외에서 중국 공산당에 대한 신뢰를 뒤흔들었다’ ‘길게 보면 중국 금융 시장이 중국 야생동물 시장보다 더 위험할 것이다’ 등의 내용을 담았다.

조선일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19일 웹사이트에 중국 정부가 자사 소속 베이징 특파원 3명의 기자증을 취소해 추방하기로 한 결정을 보도한 기사. /월스트리트저널


겅 대변인은 "WSJ에 정식으로 공개 사과하고 관련 책임자를 조사해 처리할 것을 요구했으나, WSJ는 지금까지 책임을 회피하고 얼버무리며 공식 사과도 책임자 조사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중국 인민은 인종차별 표현을 쓰며 악의적으로 중국을 모독하고 공격하는 언론을 환영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중국은 이날부터 WSJ의 베이징 주재 기자 3명의 기자증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WSJ는 자사 기자 세 명을 추방한다는 중국 정부 결정을 보도하며 "중국 정부가 국제 언론사 한 곳의 여러 기자를 동시에 쫓아내는 것은 마오(마오쩌둥) 이후 시대에 처음"이라고 했다. WSJ는 (중국 지국의) 조쉬 친 부지국장과 차오 덩 기자, 필립 원 기자에게 5일 안에 중국을 떠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전했다. 친 부지국장과 덩 기자는 미국 국적자, 원 기자는 호주 국적자다.

이들 기자 세 명은 중국 외교부가 지목한 칼럼의 작성이나 게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WSJ는 "기자 셋은 WSJ의 뉴스 부문에서 일하며, WSJ는 뉴스와 오피니언을 엄격히 분리해 운영한다"고 했다. 중국 정부가 필자의 개인 의견을 담는 오피니언(칼럼) 글을 문제 삼아 뉴스를 다루는 기자들을 추방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조치란 의미로 해석된다.

중국에 주재하는 외국 국적 기자는 중국 외교부에서 보통 1년 단위로 기자증을 발급 받고 체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기자증이 없으면 중국에 체류할 수 없다.

조선일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일 베이징 디탄병원에서 우한의 의료진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중국 신화사


외국 기자가 중국에서 추방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에도 WSJ 소속 춘한 웡 기자가 중국 정부로부터 기자증 연장이 거부돼 추방됐다. 앞서 웡 기자는 동료 기자와 함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촌이 호주에서 돈세탁 연루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의 WSJ 특파원 추방 조치는 미국 정부가 18일 중국 관영 언론 매체 5곳을 중국 정부 소속 기관으로 지정한 지 하루도 안 돼 나온 것이다. 미 국무부는 이날 중국 관영 매체 신화사, CGTN, 중국국제라디오, 중국일보, 인민일보를 외국 사절단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매체들을 언론사가 아닌 외국 정부 기관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이 5개 매체는 외국 정부 대표기관인 대사관과 영사관에 적용되는 미국 정부 규정을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사무공간을 매입하거나 임차할 때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신규 채용이나 직원 퇴사 등 인력 변동이 있을 때도 미 국무부에 보고해야 한다.

미 국무부 관리는 "이들 매체는 중국 프로파간다(선전·선동) 기관의 일부"라면서 "100% 중국 정부와 중국 공산당을 위해 일한다"고 말했다고 미 언론이 전했다.

[베이징=김남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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