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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슈퍼 전파’ 공포…지역 방역망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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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환자 53명… / 대구·경북에서만 20명 추가 발생 / 14명은 31번 환자 다닌 교회 신자 / 성동구 70대 남성 또 깜깜이 감염 / 日 크루즈 7명 귀국… 의심증상 없어

세계일보

대구시 중구 경북대학교 병원에 긴급 이송된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경북 일대에서 20명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는 등 19일 하루 만에 새 확진자가 22명이 늘었다. 이로써 누적 확진자는 50명을 돌파했다. 특히 대구의 한 교회 신도 15명이 한꺼번에 감염되는 ‘슈퍼전파 사건’이 발생해 당국이 긴박하게 대응하고 있다. 감염원을 알 수 없는 네번째 환자도 발생했다. 지역사회 감염이 현실화됐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 현재 코로나19 확진자 22명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로써 국내 코로나19 환자는 총 53명으로 늘었다.

신규 환자 중 20명은 대구·경북에서 발생했다. 14명(34∼36번, 39번, 41∼45번, 47∼51번 환자)이 31번 환자(61·여)와 같은 교회를 다녔고, 1명(33번 환자)은 병원 접촉자로 확인됐다. 국내에서 10명 이상의 집단감염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7번(47·남), 38번(57·여), 46번(28·남) 환자는 31번과의 연관성을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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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번 환자와 접촉자는 지금까지 166명이 확인됐으며, 접촉자들은 병원격리 및 자가격리된 상태다. 정은경 중대본 본부장은 “현재까지 31번 환자를 포함해 10여명이 그 교회와 관련된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에 슈퍼전파 사건은 있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31번 환자가 나머지 10여명을 감염시켰는지는 속단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들 중 누가 먼저 감염원에 노출됐는지 등을 현재로선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와 중대본은 특별대책반을 대구로 보내 지역 지자체와 함께 역학조사와 방역조치를 진행 중이다. 한시적 민간 역학조사관 14명을 포함해 총 133명의 역학조사관, 방역, 행정 인력 등이 투입됐다.

32번 환자는 11세 초등학생으로, 20번 환자(41·여)의 딸이자 15번 환자(43·남)의 조카다. 지난 2일부터 자택에서 자가격리 중이었다. 이 기간 객담 등 증상이 지속돼 지난 18일 받은 코로나19 검사 결과 양성이 나왔다. 32번 환자의 학교는 지난달 3일부터 방학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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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성동구에서 해외여행력 없는 이모씨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19일 오전 이모씨가 다녀간 서울 한양대병원 응급실이 폐쇄되고 있다. 연합뉴스


40번 환자는 서울 성동구에 사는 77세 한국인 남성이다.

지난 18일 성동구 한양대병원에서 시행한 CT 검사 결과 폐렴이 확인돼 코로나19 검사를 시행, 확진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이후 현재까지 외국을 방문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 해운대 백병원에 내원했다가 바이러스성 폐렴 증세를 보여 격리된 40대 여성은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사회 전파로 인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면서 감염병 위기경보 격상 요구가 나오지만, 정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홍인 중앙사고수습본부 총괄책임관은 “위기경보 격상은 환자 발생의 양태, 발생자수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며 “대구 환자는 방역체계 안에서 파악된 것이기에 숫자만 가지고 위기경보 격상을 논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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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크루즈에 탑승중이던 귀국자 7인이 19일 오전 김포공항에 내린뒤 국립인천공항검역소 중앙검역의료센터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6·10·16·18번 환자 4명은 퇴원했다. 53명 중 지금까지 16명이 완치됐다.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 탑승했던 한국인 6명과 일본인 배우자 1명 총 7명은 이날 귀국해 14일간의 격리 생활에 들어갔다. 이들은 모두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공군 3호기를 타고 하네다공항을 출발, 이날 오전 6시27분 김포공항을 통해 들어온 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인근 국립인천공항검역소 중앙검역의료지원센터에 격리됐다.

◆지역사회 감염 대책 전문가 제언

“이제 지역사회로의 감염이 현실화하고 있다. 보건당국이 확진자 치료에만 매달리는 건 의미가 없다.”

그간 비교적 확진자 통제가 잘 됐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감염 경로가 불분명한 ‘깜깜이’ 확진자가 등장한 데 이어 ‘슈퍼 감염자’ 31번 환자로 인한 대규모 감염 사태가 발생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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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바이러스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자현미경 사진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19일 국제학술지 대한의학회지(JKMS) 최신호에 박완범·오명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 연구팀은 코로나19로 확진된 1번 환자(35세, 중국 국적 여성)로부터 바이러스를 분리, 배양하고 전자현미경 촬영에도 성공했다. 사진은 코로나19에 감염된 세포의 전자현미경 사진이다. ①세포 내에 가득 모여 있는 바이러스 입자 ②세포 밖으로 이동 중인 바이러스 입자 ③세포 밖으로 터져 나온 바이러스 입자.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제공


전문가들은 이미 국내에서도 지역사회 감염이 본격화했다고 상황을 진단하고 “가동할 수 있는 방역 체계를 최대한 동원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아울러 방역대책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지금까지는 공항 등을 통한 해외유입 차단과 확진자의 자가격리 등을 통한 접촉자 관리에 방역대책이 모였다면 지금부터는 취약층 환자를 조기 발견하고 진료함으로써 확산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문이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19일 “지역사회 감염은 현실이 됐고 이제 전폭적으로 전파가 될 것으로 본다”면서 “29~31번 확진자 모두 60세 이상의 고령이라서 활동량이 많지 않았을 텐데 병원에 가서 우연히 감염이 발견됐다. 고령자가 이 정도면 젊은 층에서도 경미하게 많이 퍼져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특히 종로나 동대문 등 중국인 여행객이 많은 곳이 위험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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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미 이대목동병원 교수


천 교수는 확진자 중심에서 일반인 전체로 방역 대상을 확대할 것을 당국에 주문했다. 그는 “이제 확진자에만 매달려 치료하고 검사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다. 환자가 급속도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격리병상을 빨리 확충해야 한다. 보건소에 인력지원 확충이 시급하고 일반인들이 원하면 검사받을 수 있도록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일반병원에 대한 지원도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이나 동남아 등 위험지역에서 입국하는 것을 한두 달만이라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김우주 구로고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보다 전염력이 더 심각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 교수는 “메르스도 경기 평택에서 시작해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제주도 등으로 이동경로를 따라 생기지 않았는가. 메르스는 그나마 병원에 국한해 퍼졌지만, 코로나19는 병원에다가 지역사회까지 더해져 전염력이 더 세졌고 심각하다고 본다. 게다가 코로나19가 확진될 때 설 명절이 끼어있다 보니 전국적 인구이동이 있었을 것이고 인구이동이나 밀접도가 높은 대도시에서는 훨씬 더 확진 속도가 빨랐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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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주 구로고대병원 교수


김 교수는 방역 당국의 대응이 제한적이었던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중국 후베이성만 볼 게 아니라 광둥성이나 다른 중국 지역에서의 입국도 제한했어야 한다. 일각에선 우한뿐만 아니라 태국이나 싱가포르, 일본 등으로 지역 범위를 넓게 확장해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는 의견을 냈음에도 정부는 후제적 대응을 하면서 괜찮다고만 했다. 결국 이렇게 대규모 확진자가 나타났다. 방역이 쉽지 않기는 하지만, 뒤따라가는 식의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바이러스는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아 통제가 어렵다. 건강한 사람이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노약자 등 면역력 약한 사람에게 퍼질 위험이 있음을 읽어야 하는데, 나타난 현상만 보고 ‘위협이 안 된다’고 진단한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이미 정부 당국이 중국인들의 입국제한을 거론할 시기를 놓쳤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됐는데 중국 유학생들의 2주 격리는 늦은 대응”이라면서 “중증 환자, 고령자, 만성병 환자, 임신부 등 취약계층을 최우선으로 치료해서 사망자를 줄이는 전략으로 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갈수록 역학적 연결고리가 없는 환자가 추가 발생하면서 구멍이 뚫리면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질 수 있는 만큼, 이른바 ‘완화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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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모란 국립암센터 대학원 교수


기모란 국립암센터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신종 감염병 초기에는 환자 발생을 줄이고 차단하는 방법을 쓰지만, 지역사회 여기저기서 역학적 고리가 없는 환자가 발생하면 더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 만큼 지역사회 전파가 시작되면 가능한 한 빨리 환자를 찾아내 빨리 치료해서 사망률을 낮추는 완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015년 메르스 때에 비해 대응이 분명 나아지긴 했다. 봉쇄정책을 전략적으로 적용하는 부분은 이번 사태에 잘해왔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외국에서 유입 차단하고 환자 철저하게 역학 조사해서 접촉자 관리하는 방식은 이제 어렵게 된 만큼 다음 단계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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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교수


이어 “봉쇄정책 이후엔 피해를 줄여가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 그러한 정책을 어느 시점에 어떤 것부터 적용해나갈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일단 경증환자들과 중증으로 진행되고 있거나 진행될 위험이 있는 환자들을 구분해야 한다. 모든 경증환자를 다 진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간의료기관이 1차 대응하기는 어려운 만큼 공공의료기관에서 그 역할을 한동안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방역 체계의 근본부터 다시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도 역설했다.

엄중식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평소에 이런 대규모 전염병에 대한 방역체계 등에 투자를 했어야 한다. 분명 사스나 메르스 등의 계기가 있었는데, 이번에 또 뚫린 것 아닌가. 갑자기 뭘 하려면 잘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전염병 예방을 위한 평소 계획 수립과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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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식 길병원 교수


엄 교수는 31번째 확진자가 검사를 거부한 것과 관련해 “코로나19 사태뿐만 아니라 모든 검사에서 대상자에게 강제할 근거가 없다. 현재로선 환자가 거부하면 검사가 불가능하다”면서 “경증 환자에 대해서도 검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의사 재량을 많이 넓혀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이번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다중시설 이용을 제한하고 최대한 사람이 많이 모이는 모임에 나가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밀폐공간인 버스나 지하철 등의 대중교통 이용할 때 마스크는 꼭 쓰고, 손 잘 씻는 등의 기본적인 예방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과도한 공포 확산을 경계하고 가짜뉴스를 비롯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믿어선 안 된다”며 “무엇보다 코로나19 관리 조직인 질병관리본부를 신뢰하는 것도 시민이 지켜야 할 원칙”이라고 힘줘 말했다.

남혜정·추영준·남정훈·권구성·곽은산 기자, 도쿄=김청중 특파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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