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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쉬려고 공부했죠" 60년 사회생활 후 석사 된 '구순 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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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 사회학과 대학원 졸업 이상숙씨…"공부 어렵지만 알아가는 즐거움"

바로 박사과정 진학…"이념갈등 해법 찾는 연구 이어갈 것"

연합뉴스

성공회대 사회학 석사학위 취득한 이상숙씨
(서울=연합뉴스) 2020년 2월 성공회대 일반대학원 사회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한 이상숙(88)씨. 2020.2.24 [성공회대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사실 좀 쉬려고 공부를 시작한 거예요. 하하."

24일 성공회대 대학원을 졸업하는 이상숙(88)씨에게 '인생의 황혼기'에 학생으로 되돌아온 이유를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1931년생인 이씨는 우리 나이로 올해 90세다. 이달 성공회대 대학원 졸업자 102명 중 가장 나이가 많다. 성공회대 역사상 명예 학위 취득자를 제외하고는 최고령이라고 한다.

이씨는 자녀 셋을 낳은 뒤 시가의 지원으로 숙명여대 가정학과에 입학해 1961년 졸업했다. 잠시 보건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손재주를 살려 1965년 완구 제조업체를 창업했다. 30년간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대통령 표창과 석탑산업훈장도 받았다.

1995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2018년 3월 성공회대 사회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지만, 그사이에도 계속 바쁘게 뛰었다.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부회장을 맡는 등 여러 사회단체를 이끌며 북한 주민과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힘썼다.

이씨는 성공회대 사회학 박사과정에서 학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미 등록도 마쳤다.

도전을 계속하는 열정의 원천을 묻자 이씨는 "60년 가까이 기업에서, 사회단체에서 바삐 일하다가 공부를 하니 오히려 쉬는 것 같다"며 "물론 공부가 어렵긴 하지만, 알아가는 즐거움을 알면 노인이어도 공부를 하고 싶어진다"고 했다.

쉬려고 시작한 공부라지만 이씨는 여느 학생보다 성실했다. 석사과정 2년간 결석이나 휴학 한번 없었다. 졸업시험은 단번에 합격하고, 자신의 삶을 사회학적 방법론으로 분석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그려낸 학위논문도 써내 심사를 통과했다.

서울 광진구 자택에서 등하교하는 시간을 아끼려고 학교 앞에 공부방도 따로 얻었다. 이씨는 "한 치나 되는 두꺼운 전공서를 매주 읽었다"며 "특히 시험 기간에는 아침 7시부터 자정까지 앉아 밥 먹고 공부만 한 것 같다"고 했다.

지도교수인 박경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이 선생은 그야말로 성실한 대학원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을 뿐 아니라 공부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해 오셨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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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 사회학 석사학위 취득한 이상숙씨
(서울=연합뉴스) 2020년 2월 성공회대 일반대학원 사회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한 이상숙(88)씨. 2020.2.24 [성공회대 제공]



평생 공부해본 적 없는 사회학을 택한 이유에 대해 이씨는 "우리 사회가 많이 궁금했다"며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생각에 왜 많은 사람이 우르르 몰려가는지, 사회 갈등은 왜 일어나는지를 학문적으로 탐구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학원 생활 내내 자녀와 손주들은 이씨를 열렬히 응원하는 '학부모'였다. 자주 전화를 걸어와 공부가 잘되는지 묻고 건강은 괜찮은지 걱정했다. 이씨 논문은 둘째 딸이 검토해 줬다고 한다.

졸업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아쉽게도 취소됐지만, 이씨는 박사과정을 마치고 다시 졸업할 날을 기다린다.

이씨는 "학위 같은 게 필요해서 공부를 더 하는 게 아니라, 평생을 간직하고 노력해온 꿈을 학문적으로 풀어내고 싶다"고 했다.

"박사과정에서는 우리 사회 이념 갈등의 해법과 통일의 길을 찾는 연구를 이어가고 싶어요. 반으로 갈라진 나라가 하나가 되는 데 제가 조금이라도 보탬을 줄 수 있다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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