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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아무도 기억하지 않던 여성들 이야기…영화 '빈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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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빈폴'
[T&L 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전쟁은 여성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그 상처를 지닌 채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빈폴'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두 여인이 상처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 레닌그라드. 키가 아주 커서 키다리라는 별명을 지닌 여성 이야(빅토리아 미로시니첸코 분)는 전쟁에 의전병으로 참전했다가 뇌진탕을 얻어 제대한 후 군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다. 뇌진탕 후유증으로 갑자기 온몸이 굳어서 꼼짝할 수 없는 증상을 겪고 있다. 소련이 승전국이지만,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한 상황에서 어린 아들 파슈카를 애지중지 키우며 살아가던 이야에게 이 증상 때문에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던 중 이야와 함께 전쟁에 참전한 마샤(바실리사 페렐리지나)가 돌아온다. 마샤는 이 끔찍한 사건이 이야의 탓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자신 대신 이야가 아이를 낳도록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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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폴'
[T&L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는 천천히 그리고 매우 정적인 방식으로 전쟁의 상흔을 묘사한다. 두 주인공에게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전쟁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완벽히 파괴했는지를 보여준다. 갑자기 굳어버리는 이야와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며 집착적으로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마샤의 모습은 전쟁의 비극을 강조한다. 또 후반부에 마샤의 대사로 전선으로 차출된 여성들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영화는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상처를 다루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보여주지 않는다. 모두 다 상처를 드러내지만, 희망에 대한 희미한 암시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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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폴'
[T&L 엔터테인먼트 제공]



선명한 색상과 조명이 효과적으로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붉은색과 녹색의 보색 대비를 통해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이들의 심리를 상징적으로 전달한다. 마샤는 새로 생긴 남자친구인 사샤와 함께 희망을 뜻하는 녹색으로 벽을 칠하려 하지만 이내 다 칠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녹색과 상처를 뜻하는 붉은색이 공존하는 배경과 등장인물의 의상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조명 역시 두 사람의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는 어두웠다가 희망을 암시할 때는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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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폴'
[T&L 엔터테인먼트 제공]



연출과 각본을 맡은 칸테미르 발라고프는 1991년생으로 20대 젊은 감독이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영감을 받아 이 영화를 연출했다고 한다.

제72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과 감독상을 받았으며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예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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