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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文 국빈방문했던 국가도 '한국인 격리 조치'···외교부 당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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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늘면서 한국인의 입국을 막거나 격리 조치하는 국가 중에는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국빈 방문을 한 국가들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에 따르면 24일 오전 기준 브루나이·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 등은 한국인 입국 시 대응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브루나이는 한국을 일본ㆍ말레이시아와 함께 고위험 감염국가로 분류하고 입국 시 14일간 건강 상태를 관찰하도록 했고, 투르크메니스탄은 외교관ㆍ민간인 구분 없이 입국과 동시에 병원으로 이송해 의료 검사를 받도록 했다. 카자흐스탄은 열흘간 의료진이 매일 방문 체크를 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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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3국(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국빈 방문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4월 23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누르술탄 국제공항에서 베이부트 아탐쿨로프 외교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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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각국이 외교적 친소 관계와 방역 문제를 별개로 판단한다는 얘기다. 브루나이ㆍ투르크메니스탄ㆍ카자흐스탄 3국은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ㆍ북방 정책 핵심 국가들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브루나이를 국빈 방문한 데 이어 4월에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자흐스탄을 각각 국빈 방문했다. 브루나이는 신남방,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자흐스탄은 신북방 정책의 파트너로 정부가 꼽은 곳이다. 순방단에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동행했다.

지난해 문 대통령이 공식 방문(9월)하고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11월) 방문했던 태국도 예외가 없었다. 현재 태국 항공사들은 한국 운항을 잇달아 취소하고, 태국 교육부 역시 한국ㆍ중국을 방문한 학생을 14일간 자가 격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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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을 공식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9월 2일 (현지시간) 방콕 만다린오리엔탈 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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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제한 안 돼" VS "각국 고유 권한"



외교부는 당혹스러우면서도 각국 조치가 "국제법 위반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국인의 출입국 사항은 국제인권규약이나 인종 차별 등에 저촉되지 않는 한 각국의 고유한 권리로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각국의 국경 관리, 즉 출입국 사항은 핵심적 주권 사항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라고 한다. 한국 역시 출입국 관리 권한은 법무부에 있고, 외교부는 외교적 파장에 대한 주무 부처로서의 의견을 내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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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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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왜 초기에 국경을 닫지 않았을까.

정부 소식통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정부는 중국인 입국을 전면 제한했을 때 일차적으로 경제적 타격이 너무 크고, 상반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이슈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했다고 한다.

특히 시 주석 방한과 관련, 중국인들의 출입국 제한 이슈를 '방역'이 아닌 '정치' 이슈로 인식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출입국 관리를 총괄하는 법무부의 추미애 장관은 이달 19일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같으면 중국 사람들을 완전히 입국 차단하고 정치적으로 끌고 가지 않느냐”며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합리적이고 실효적으로 차단해 중국 측이 각별히 고마워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중국인들에 대한 출입국 제한을 정치적 문제로 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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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 두 번째)이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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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는 별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질병으로 인한 “각국의 사람ㆍ물자 이동에 대해 각국의 불필요한 제한(unnecessary interference)은 지양(avoid)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2005년 총회에서 의결한 국제보건규정(IHR) 2항 등에 나와 있다. IHR은 질병 통제에 관한 한 유엔 결의안과 같은 역할을 한다. 조약은 아니지만, 회원국들이 준수하는 관행이 있어서다. 그러나 이 역시 출입국에 관해선 각국의 권리가 앞선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실로 닥친 "한국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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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감염병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한 지 하루 뒤인 24일 서울 도렴동 정부청사별관(외교부 청사) 입구에 발열 감지 화상 카메라가 설치됐다. 입구 한 쪽에는 코로나19 의심 증상자들을 위한 문진실도 마련됐다. 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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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정부가 중국 경유 외국인들의 입국 제한 조치를 좀 더 과감하게, 빨리했어야 한다는 비판 여론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한국인들을 향해 국경을 닫는 사례가 늘어나면서다. 특히 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사전 통보 없는 입국 금지 조치에 외교부는 적잖이 당황한 분위기다.

앞서 문 대통령은 20일 시 주석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공감을 표명하는 비유적 표현이었지만, 국내 확진자 수가 700명을 돌파하면서 실제 ‘한국의 어려움’은 점점 현실이 돼 가고 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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