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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글로벌피플] 빌 게이츠 '코로나19' 예언 적중…"전염병은 핵 전쟁보다 더 재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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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코로나19' 1220억원 기부

중국 시진핑, 게이츠에 감사 서한 보내

"바이러스로 10억명까지 죽을 수 있어"

"전시상황처럼 전염병 확산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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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2015년부터 전염병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우리는 다음 번 전염병(epidemic)'에 준비가 안돼 있다"고 지적했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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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확산은 전시상황(war time)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건 미사일이 아니라 미생물(microbes)이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64)가 5년 전 미국 테드(TED) 토크에서 전염병 대유행을 경고한 발언이 현실이 되면서 그의 ‘예언’이 재조명 받고 있다.

빌 게이츠는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종식하기 위해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인 자선가다. 그가 아내 멜린다와 함께 운영하는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중국 등에 1억 달러(약 1220억원)의 기부를 약속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게이츠 부부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중국 인민일보가 23일 보도했다.

빌 게이츠는 지난 14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전미과학진흥협회(AAAS) 연례행사에서도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운을 뗐다. 그는 “코로나19는 세계 보건에 심각한 위협”이라며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가 전염병 확산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만약 글로벌 팬더믹(pandemic·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으로 치닫더라도 우리 재단은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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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오른쪽)와 그의 아내 멜린다가 2011년 인도를 방문한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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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병리학자도, 그렇다고 경제학자도 아닌 빌 게이츠는 2015년 왜 전염병을 주제로 ‘18분 스피치’에 나서고, 전염병에 대한 경고를 몇번이고 반복하는 걸까. 그는 인류의 가장 큰 위협으로 ‘전염병’을 꼽는다. 빌 게이츠는 “어렸을 때 가장 두려웠던 재난은 핵전쟁이었다”며 “우리 가족은 통조림과 생수통으로 가득 채워진 ‘생존 저장품(survival supplies)’ 상자를 지하실에 두고, 핵폭탄이 터질 경우 지하실에 숨어있을 계획을 세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오늘날 인류에게 가장 두려운 재난은 핵무기도 기후변화도 아닌, 전염성이 강한 인플루엔자(influenza) 바이러스”라고 강조했다. 핵전쟁이 발발할 확률은 국가 간 정치·외교적 이해관계 때문에 희박하지만, 독감처럼 퍼지는 신종 바이러스는 언제든지 수천만 명을 사망케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20세기 인류의 목숨을 앗아간 가장 치명적이었던 사건은 전쟁이 아니라 전염병이었다. 스페인 국립도서관에 따르면, 1918년 스페인 독감 창궐로 전 세계적으로 5000만명에서 1억명이 사망했다. 스페인에서만 30만명이 죽었다. 반면 1차 세계 대전(1914~1918)과 2차 세계 대전(1939~1945)으로 사망한 수는 각각 2500만명과 6000만명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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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는 "앞으로 수십년간 수천만명의 사람을 사망케 하는 사건은 전쟁이 아니라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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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는 심지어 테러 조직이 바이러스를 활용해 대량 살상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정보 당국은 핵무기가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테러리스트가 바이러스를 활용하면 수억 명도 죽일 수 있다”며 “10억명에 달하는 인구를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무기는 핵미사일이 아니라 미생물”이라고 지적했다.

빌 게이츠에 따르면, 인공 전염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은 과거 국가 차원에서 다뤄졌으나 지금은 일반 생물학자도 할 수 있을 만큼 대중화됐다. 이 때문에 그는 “전염병 확산 가능성은 매년 커지는 중”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각국 보건 당국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게이츠는 지적했다. 그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예로 들자면, 당시 우리의 문제는 ‘시스템의 작동 여부’가 아니라 ‘시스템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며 “전염병 환자를 돌볼 전담 의료진, 치료제를 개발할 연구진, 데이터의 집계와 발표 등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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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는 1994년부터 매년 그의 아내와 설립한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350억달러(약 43조원) 이상을 기부해 왔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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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영화 ‘컨테이젼’(2011,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처럼 잘생긴 전문가가 혜성처럼 등장해 신약을 개발하고 인류를 구하는 시나리오는 그저 할리우드에나 있다”며 안일한 현실을 꼬집었다.

빌 게이츠는 전염병 창궐을 전시상태로 여기고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의료·군사·학계를 진두지휘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전쟁을 대비해 항상 훈련받고 대기 중인 군인이 있듯, 전염병을 상대로도 동일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며 “전쟁이 발발할 경우 몇 시간 내로 신속하게 투입되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군(軍) 같은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핵전쟁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사용하는 핵 억제 비용을 고려하면,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서 쓰는 돈은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염병 대응 조직이 해야 할 일로는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신흥국에 강력한 공중보건 체계를 구축해 산모가 위생적인 환경에서 출산하고, 아이들이 모두 백신을 맞게 지원해야 한다. 둘째, 전염병이 확산할 때 활약할 담당 의료팀을 지정한다. 셋째, 의료팀은 군대와 협력체계를 구축한다. 넷째, 워 게임(war game·전쟁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상응하는 '미생물 게임'을 준비한다. 다섯째, 연구·개발(R&D) 투자로 치료제를 개발해야 한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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