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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기자메모] 같은 아파트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고요?···"너무 걱정하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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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세균 국무총리와 이재명 경기도 도지사가 휴일인 8일 오전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을 찾아 음압격리 병동을 둘러본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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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부터 저희 가족은 약간은 긴장된 상태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경기 안양시 한 아파트에 거주 중인데,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확진 환자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당혹스러웠습니다. 대구와 경북시민들이 코로나19와 치열하게 맞서고 있지만 설마 우리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올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안양시청 홈페이지에 게재된 안내문을 보고는 당장 아이들이 불안해했습니다. 인근 편의점에 거의 이틀에 한번 꼴로 다녔기 때문입니다. 확진자가 편의점을 이용했을 것이라 판단한 겁니다.

다행히 확진자의 동선에는 해당 편의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불안함은 커져갔습니다. 확진자가 동선을 모두 밝히지 않았을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1339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환자의 동선에 대해서는 시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내용 이상의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마음 속의 불안함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은 잠을 잔듯 만듯 보냈습니다. 다음날 지역 보건소에 곧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확진자의 좀더 구체적인 동선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죠.

보건소 직원은 차분한 목소리로 응대해줬습니다. 아파트 다른 동에 확진자가 나타나 걱정스러워 환자의 동선을 여쭈려 전화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직원은 확진자는 병원으로 이송됐고, 아파트는 소독을 했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답을 주더군요.

저는 다시 질문했습니다. 주변에 편의점이 있고, 농협마트도 있는데, 상식적으로 그곳을 이용했을 것 같다고요. 직원은 그쪽(편의점이나 농협) 동선은 확인이 안됐고, 만약 확인됐다면 방역을 했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걱정이 된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희가 숨길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확진자가 다녀간 뒤 3시간쯤 후에 다른 손님이 가서 마트 물건을 만져도 전염될 확률은 0%에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침이 증발하면 바이러스도 사멸하니까요. 확진자가 거주했던 아파트 엘리베이터도 소독하면 안전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들은 확진자와 대화도 하는 걸요. 걱정이 되신다니 편의점 등에 방역 작업 신청을 요청해 보겠습니다만, 너무 많이 밀려있어서…”

이 정도쯤이면 감사를 전하고 전화를 끊을 법도 한데, 저는 집요하게 또 캐물었습니다. 정말 믿어도 되냐고.

그 직원은 다시 차분하게 어제 상황을 얘기해주었습니다. 보건소 직원들이 저녁까지 확진자의 동선을 폐쇄회로(CC) TV로 살펴봤는데, 편의점은 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확진자가 사용한 카드도 확인하니 내역이 나오면 그에 따라 다시 안내가 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확인한 사실을 가족들에게 카톡으로 알려줬습니다.

불안감이 조금은 사라진 때문인지,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발열이 있거나 목이 아픈 것도 아니고, 확진자와 접촉한 적도 없는데, 그저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것만으로 너무 호들갑을 떤 것이지요.

15년 전 보건복지부를 3년6개월 출입하면서 신종플루나 조류 독감, 사스 등 각종 바이러스와 관련한 질병에 대한 기사를 제법 작성했습니다. 막연한 공포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는 기사도 여러 번 썼던 것 같은데, 막상 주변에서 확진자가 나오니 바이러스 포비아처럼 행동한 제가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보건소 직원과 통화하면서 확진자의 구체적인 동선 외에 몇 가지 얻은 게 있습니다. 무엇보다 보건소나 병원 등 관계기관이 코로나19를 박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CCTV나 카드 내역 조회는 말 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실제 현장에서 모두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확진자의 동선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요하지 않아 공개하지 않을 뿐이지, 숨기는 것은 아니더라는 것이죠.

유사 이래 처음 있는 팬데믹 수준의 바이러스 창궐에 정부나 지자체, 관련 기관이 조금은 당황하고, 실수도 하지만 국민의 안위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으니 지금은 질책보다는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줘야지 않을까요.

국민들이 코로나19를 너무 공포스럽게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코로나19가 전파력은 강하지만 기저 질환 등이 없을 경우 주요 증세가 다른 바이러스보다 약하다는 연구도 질병관리본부 발표 등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인들이나 호흡기 질환이 있는 분들은 최대한 예방을 잘하셔야겠지만, 너무 극심한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감염돼도 증세도 없이 완치되거나 폐렴의 정도도 약하다는 연구도 있으니까요. ‘살다 보면 감기에 걸리기도 하잖아…’라고 생각할 수는 없어도 마음을 좀 편히 갖는 게 나아보입니다.

무엇보다 코로나19와 전쟁을 치르는 대구·경북시민께 무한한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전국의 코로나19 확진자 분들이 하루 빨리 완치되길 기원합니다. 대한민국은 반드시 코로나19를 패퇴시킬 것이고, 대구·경북시민 여러분의 성숙한 시민정신과 한국의 감염병 극복 시스템이 전세계 방역 당국의 가이드 라인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김준 선임기자 j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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