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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김영상의 오지랖] 이낙연 vs 황교안, ‘코로나 극복 리더십’ 경쟁도 불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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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선거 李 미래일꾼 vs 黃 정권심판 구도로 출발

코로나19 퍼지자 해결사 자임…승부포인트로 돌변

이 전 총리 ‘코로나 리더십’ 중무장…전방위로 뛰어

여당의 최근 ‘코로나 설화’에 경고성 메시지 내기도

황 대표, 대구서문시장 찾아 코로나 민심현장 살펴

코로나 사태와 맞물린 文정부 책임론으로 불 지펴

헤럴드경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이 지난 27일 서울 종로의 약국을 방문해 마스크 수급상황 등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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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18일 새벽. 아마 오전 6시 쯤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 종로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15대 대통령선거 날이었다. 이 대선은 이회창 후보(한나라당)와 김대중 후보(새정치국민회의)의 양강 구도였다. 투표 개시 30분쯤 전에 투표소로 갔다. 1등으로 투표를 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온 이가 있었다. 여든 정도의 할머니였다. 아예 잠도 주무시지 않고 나오셨나,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 일찍 움직이셨단다. 궁금해서 몇마디 물어봤는데, 그 할머니 말씀은 다음과 같았다. 종로에 수십년간 살아왔는데, 투표가 있는 날이면 매번 1등으로 투표를 했단다. 그 이유는 본인도 잘 모르겠지만 종로에 사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어왔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자고 했단다. 그런데 몇년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투표를 할 수 밖에 없지만, 계속해서 그래야할 것 같았단다. 아마 할아버지를 따라 늘 일찍 투표를 했기에 그게 평생의 습관이 된 것이리라. 그 할아버지는 종로에서 투표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셨단다. 종로를 거치는 유명 정치인들을 자신의 손으로 뽑는 것에 대해 할아버지는 생전 최대의 자부심으로 삼으셨다고 했다. 정치1번지에 사는 사람은 뭔가 다르구나, 이때 처음으로 느꼈다.

사실 나 역시 종로에서 투표해보고 싶어했던 사람이었다. 현대그룹 구 사옥 골목 길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신혼살림을 종로에 꾸민 것은 전세를 마침 그곳에 구할 수 있었기에 그랬지만, 종로에 대한 로망도 한 이유였던 것 같다. 난 촌놈 출신이고, “서울 하면 종로이고, 종로 하면 정치1번지”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온 터였다. 그러다보니 서울에 사는 김에 이왕이면 종로에서 투표용지에 도장 한번 찍고 싶었다. ‘정치1번지’, ‘정치1번지’라고 말하는 종로에서 민초(民草)로서 진정으로 좋아하는 후보를 내 손으로 뽑아보고 싶었다.

암튼 종로에서는 1년정도 살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기에 종로에서의 투표는 15대대선을 끝으로 더이상 하지 못했지만, 종로에서 투표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있었던 것 같다. 15대 대선 날, 아침일찍 투표소를 찾은 할머니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와 함께 투표용지를 가장 먼저 받아들었다는 그 할아버지 역시 그런 마음으로 선거에 임했을 것이다. 나와 그 할머니, 할아버지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종로에 사는 사람 대부분은 이처럼 정치1번지라는 말에 대한 책임감과 자긍심을 갖고 있었을 것이고, 지금 역시 그럴 것이다. 종로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원주민 대신 수많은 외부인이 종로지역을 대체했지만 정치1번지에 산다는 그 뿌듯함은 종로주민이라면 아직도 여전할 것이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이런 종로에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지고,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뒤늦게라도 ‘종로 전쟁’에 가세하면서 기자는 ‘종로인의 자긍심을 누가 더 채워줄 수 있는가’하는 점을 둘간의 승부 포인트 중 하나로 여겨왔다. 그런 예측 기사도 몇번 쓴 적 있다. 즉, ‘선거판의 대표 얼굴’인 종로의 위상을 인정하고, 100% 종로인의 입장에서 종로의 발전상을 제시하는 이가 유리할 것으로 본 것이다. 종로 선거운동이 불붙으면서 이 전 총리가 종로 주민들과의 릴레이 면담에 나서고, 황 대표가 초등학교 유치 등 종로 교육 공약 등을 발표한 것은 이런 점과 관련이 클 것이다. 둘다 포인트는 “종로의 영광을 이어받고, 재현하자”는 것이었다. 종로의 영광을 이을 일꾼이 본인임을 내세운 것이다.

이 전 총리와 황 대표가 각자 종로와의 각별한 인연을 앞세우며 초반 선거운동에 매달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종로주민들이 아무나 뽑아주지 않고 종로만의 자긍심을 채워줄 인물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종로와의 추억’을 맨먼저 꺼내든 것이다. 이 전 총리는 서울대 법대가 종로구 연건캠퍼스에 있을 당시 대학을 다녔고, 초보 신문기자 시절엔 종로구 효자동에서 하숙했다. “청년시절 제일 많이 산 곳이 종로여서 추억이 많습니다. 시골뜨기로 종로에 산다는 것은 꿈같은 것이었습니다. 효자동, 부암동, 평창동, 창신동, 신문로와 삼청동의 독서실 등등에 제 청춘의 흔적이 있습니다.” 이 전 총리가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회상한 것은 종로의 어제와 오늘, 미래를 가장 잘 아는 이가 자신이라는 점을 은근히 부각시킨 것이다.

황 대표 역시 종로와의 인연이 각별하다. 경기고와 성균관대를 나왔으니, 젊은시절을 종로에서 보냈다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종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청년의 꿈을 키워온 희망의 땅입니다. 가로수 하나하나와 골목 곳곳에 제 어린 시절, 제 젊은 시절 추억이 배어 있습니다”. 그 역시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는데, 이 전 총리 못잖은 ‘종로에 대한 남다른 추억’을 강조한 셈이다.

종로 판세는 현재로선 이 전 총리가 앞선 것으로 보인다. JT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7~18일 종로구민 51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3%포인트)에 따르면, 이 전 총리의 지지율은 54.7%였고 황 대표의 지지율은 37.2%였다. 여론조사(자세한 개요 및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상 둘간의 차이는 17.5%포인트였다. 차이가 작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열흘전의 여론조사인만큼 현재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 전 총리의 우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이 전 총리 측은 낙승을 자신하고 있고, 황 대표 측은 “선거판의 공은 둘글다”며 역전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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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27일 임시 휴장중인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아 살펴보고 있다.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크게 늘어나며 대구 최대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은 다음달 1일까지 임시 휴장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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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종로판 선거운동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19 신규 환자가 연일 무섭게 급증하며 누적 확진자수가 1700여명을 돌파한 상황에서 기존 방식의 선거운동은 할 수 없게 됐다. 종로지역을 찾아 주민들과 스킨십을 활발히 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이같은 선거운동을 스스로 금지한 것이다. 악수도 하지 말아야 할 판에 주민들과의 대면접촉 선거는 사실상 불가능해진 탓이다. 이 전 총리와 황 대표 측으로선 선거운동 전략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해진 셈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이번 총선(4월15일)의 대표 격전지인 종로에서의 선거전 포인트 중 하나로 ‘코로나’를 꼽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어차피 종로에서도 이 전 총리나 황 대표가 기존방식의 군중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게된 이상 선거전략을 긴급 수정하는 듯 하다”며 “진보, 보수 진영의 총선 진두지휘 책임을 맡고 있는 두 사람이 코로나 극복 리더십을 부각시키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게 대표적”이라고 했다. 점점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 위기감과 그것을 극복하는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전체적인 선거판세에 유효타를 날리고, 종로선거에서도 득점타를 추구하는 방식의 선거로 급선회했다는 것이다.

양 측은 이 점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이 전 총리 측은 “유연함과 때론 굳은 신념을 보이는 이 전 총리의 코로나 극복 리더십을 각인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황 대표 측은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서민들의 등을 다독이는 코로나 해결사로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이를 문재인정부의 심판론으로 연결하고자 한다”고 했다.

실제 두 사람은 며칠새 ‘코로나 리더십’을 스스로 띄우는 행보를 펼치고 있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전 총리는 지난 27일 종로 약국 몇곳을 들렀다. 마스크 유통상태를 직접 살핀 것이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종로의 약국 몇 곳에 들러 마스크유통 실태를 파악했다. 현장의 말씀을 반영해 시책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종로 선거운동 대신 조용하게 코로나 극복 대책에 리더십을 갖고 일조하는 모습을 강조한 것이다. 이 전 총리가 코로나19와 관련된 여권 인사들의 설화에 대해 “당이건 누구건 말조심해야 한다”고 선을 그은 것도 코로나 리더십과 관련성이 커 보인다. 당정청회의 후 나온 ‘대구 봉쇄’ 발언과 해명의 해프닝,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국민에 대한 책임전가’ 논란 등 계속해서 일고 있는 잡음에 대해 단속에 나선 것이다. 이는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총선 악재 소지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여권 일부 인사들을 향한 경고성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황 대표는 여권의 ‘대구 봉쇄’ 발언으로 민심이 흉흉해진 대구를 찾았다. 그는 27일 대구 동산병원 상황실을 방문했고, 코로나19 대응 상황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들었다. 이후 대구의 대표적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을 방문, 힘들어하는 상인들을 위로했다. 그는 서문시장을 둘러본뒤 기자들을 만나 “11년 전에 대구에서 근무했는데 그때도 대구 경제가 어렵다고 이야기했었지만 그래도 활기차고 자부심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오늘 와서 보니 거리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그런 도시로 바뀌어 버렸다”며 “누가 이렇게 했는가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코로나19로 힘든 대구, 그 원인을 문재인정부 책임으로 거론하고 심판론을 재차 꺼내든 셈이다.

이 전 총리나 황 대표, 일찌감치 둘중 하나를 점지한 종로주민은 그렇다고 해도, 종로의 스윙보터(swing voter·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이들)는 과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이들은 코로나19로 일대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에서 누가 더 뛰어난 ‘코로나 해결사’ 능력을 보이는지에 따라 표심을 얹어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전 총리도, 황 대표도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둘다 한동안 ‘코로나 비교우위 행보’ 전략에 몰두할 것이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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