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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자기야, 한인마트 가자. 두들겨 맞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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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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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주의 한 코스트코 매장/ 사진=이상배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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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마트가 널린 미국 뉴저지주에 살지만 그동안 한인마트를 자주 가진 않았다. 가장 가까운 곳도 15분 이상 운전해야 할 정도로 떨어져 있다 보니 평소 웬만한 건 동네 마트에서 해결해왔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가 대뜸 앞으론 무조건 한인마트를 가야겠다고 한다. 아직 이곳 한인들 사이에 코로나19(COVID-19)가 돌고 있다는 얘기는 없던 때라 그 때문인가 했다.

"왜? 한인 중엔 그나마 확진자가 적어서?" "아니. 다른 데 갔다가 두들겨 맞기 싫어서." 아내의 대답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하필 이런 판국에 미국에서 살게 했다는 미안함에 한마디도 못했다.

실제로 최근 뉴욕 지하철역에서 마스크를 쓴 아시안 여성이 한 남성에게, 맨해튼 한인타운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은 동양계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폭행 직전 가해 여성은 피해자에게 "네 마스크 어디 있냐"고 했다고 한다. 마스크를 쓰면 썼다고 맞고, 안 쓰면 안 썼다고 맞는 지경이다.

얼마 전엔 뉴욕 지하철에서 한 남성이 아시아계 남성을 향해 "저리 꺼져"라며 항균 스프레이를 뿌리기도 했다. 단지 자신 앞에 서 있다는 이유였다. 최근 미국내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범죄가 급증하자 A3PCON(아시아태평양 정책기획위원회)이란 단체가 아시아인 혐오·차별 사례를 고발하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지난 19일 개설 이후 닷새만에 150건이 넘는 사례가 접수됐다.

'아시아인=코로나19 보균자'라는 인식이 인종차별적 증오범죄로 이어졌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입은 이들의 중국인에 대한 원망도 한몫한다.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지 않는 한 서양인들의 눈엔 그냥 모두 '중국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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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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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차별을 막아야 할 국가지도자가 오히려 편견과 증오를 부추겼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WHO(세계보건기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자신의 책임을 덮으려 화살을 중국으로 돌린 것일게다. 미군이 우한에 바이러스를 가져왔을 수 있다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트윗도 빌미가 됐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도 대선을 앞두고 아시안계 표심은 걱정이 됐는지 23일엔 갑자기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트윗을 날렸다.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다.

만약 질병 이름에 반드시 발원지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약 100년 전 세계적으로 2500만~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은 사실 '미국 독감'이라고 불러야 한다.

스페인 독감은 1918년 3월 미국 시카고 부근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게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계기로 유럽으로 퍼졌다고 한다.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린 건 전쟁 당시 중립국이던 스페인의 언론들이 미군 병영내 발병 사실을 집중 보도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발병 사실을 숨기고, 앞장서 한국에 빗장을 건 중국에 서운함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반(反)중국 정서가 강해질 때 가장 큰 위험에 처하는 건 외국인들 눈에 중국인과 구분이 안 되는 재외 한국인들이다. 상대적으로 교민 사회가 발달한 중국인이나 재외국민 보호에서 앞선 일본인들은 그나마 상황이 낫다.

최근 캘리포니아주에선 1992년 LA(로스앤젤레스) 폭동을 경험한 일부 한인들이 총기와 탄약 사재기에 나섰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실업자가 쏟아지고 생필품이 부족해질 경우 약탈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이런 판국에 코로나19가 아시아에서 왔다고 계속 떠들어내면 누가 범죄의 타깃이 될까. 이래저래 교민들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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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상배 특파원 ppark14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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