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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사설] 디지털 성범죄 수사, 피해자 보호ㆍ심리 치유 반드시 병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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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디지털 성범죄의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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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통칭되는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서 무엇보다 신경 써야 하는 것이 피해자들의 인권ᆞ신상 보호와 심리 치유다. 현재까지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는 89명이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그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많다. 더구나 성범죄의 특성상 피해자들은 2차 가해나 신원이 드러날까 두려워 신고를 꺼리는 게 보통이다. 게다가 온라인에서는 “피해자도 잘못”이라며 되레 피해자를 비난하는 몰지각한 주장도 나오는 판이다.

가해자들은 성 착취물을 강요하면서 피해 여성들의 신상 정보를 무기로 살해 협박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피해자도 있었다고 한다. 차마 글로 옮기기 어려운 성 착취 피해에 생명의 위협까지 감당해야 했으니 이들이 겪었을 심리적 고통을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수사 과정에서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안전 보장과 심리 치유 조치가 동반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피해자들 중에는 아동을 포함한 미성년자도 수십 명에 달한다. 그간 검찰과 경찰, 법원이 성범죄 수사나 판결을 두고 비판을 받아온 것은 무엇보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대원칙을 무시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성범죄는 피해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피해자에겐 치욕 이상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따른다. 그런데도 경찰과 검찰 수사 단계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가린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묘사를 요구하거나 소모적으로 진술을 반복하게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피해자 심리 치유는 언감생심이었다. 법원 역시 가해자가 초범이거나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피해자 입장에선 여러 부담을 무릅쓰고 수사에 응하고 법적 대응을 한다 해도 가해자는 결국 풀려난다는 허탈함을 느꼈을 것이다.

다행히 법무부가 26일 디지털 성범죄 엄정 대응과 피해자 보호ㆍ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하기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 여기에는 수사나 제도 개선뿐 아니라 피해자 보호ㆍ지원 조치도 포함돼 있다. 경찰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이 극악무도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마무리는 피해자가 상처를 치유하고 세상에 발걸음을 다시 내딛는 것까지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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