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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목멱칼럼]코로나보다 끔찍한 ‘n번방’…범죄 재발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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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규 변호사·전 서울변호사회장

‘n번방’ 존재를 세상에 공개하고 경찰에 신고까지 한 것은 ‘추적단 불꽃’이라는 단체다. 이들이 역대 최다인원이 동의한 청와대 국민청원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 중 유튜브를 통해 지적한 아래 내용을 접하고 마치 누군가로부터 심하게 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이데일리

“성기에 애벌레를 집어넣은 영상은 텔레그램 대화방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제가 문제의 영상을 목격한 방은 150만 원을 주고 들어가는 방이 아니었습니다. ‘n번방’이나 ‘박사방’ 또한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클릭 몇 번이면 들어갈 수 있는 입장이 쉬운 방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나라가 흉흉한 시점에 n번방이라 불린 디지털 성범죄가 터졌다. ‘박사방’ 운영자인 조주빈이 유인·협박해 음란 영상을 촬영한 피해 여성 74명 중 미성년자가 16명이나 포함되었고, 공유방 60여 곳의 이용자가 26만 명에 달한다는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례적으로 대통령까지 나서서 경찰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을 뿐만 아니라,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을 공개해달라는 청원에도 무려 180만 명 이상이 동의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온 국민이 공분한 상황이다.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문제가 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불거진 그 순간이 지나면 곧 잊혀 졌고 이후에도 유사 범죄가 반복되다가 n번방에 이른 것이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직접적인 대책이라 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이 제일 크다.

디지털 성범죄와 같이 관련 범죄자들이 많은 경우 가장 실효성 있는 대책은 처벌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제작에 관여한 자·피해 여성들을 협박한 자 뿐만 아니라, 유료회원들도 공범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 혐의자가 수만 명에 달하므로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발본색원(拔本塞源)하여 이런 범죄에 관여되면 ‘반드시’ 처벌된다는 단호한 메시지야 말로 범죄예방에 가장 효과적이다.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제작한 경우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사람을 살해한 자가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인 점을 고려하면 결코 가벼운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재판현실은 어떤가.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영상물을 제작해서 실형을 선고 받은 피고인의 평균 형량은 징역 3년 2개월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법원은 4월에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제작에 대한 양형기준을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입법자가 살인죄에 버금가게 형벌을 규정한 취지는 음란물 제작이 인간의 존엄성, 더 나아가 영혼을 말살하는 죄라는 것을 사법부가 인식하기를 바란다.

신상공개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경찰이 조주빈을 검찰에 송치하며 포토라인에 세운다고 했을 때 검찰은 “형사 사건 공개금지 규정(법무부 훈령)에 따라 촬영이나 중계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가기관 간 상호 모순된 대처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법무부는 성폭력특별법에 따른 신상공개의 경우 촬영이 허용되었던 훈령을 폐지한 과오를 인정하고 개정에 나서야 한다.

끝으로 국회를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월 n번방 사건에 대한 수사와 관련자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국회 1호 청원’에 대해 법사위는 대안 반영 폐기 처리했다. 당시 해당 청원에는 경찰의 국제공조수사, 수사기관 내 디지털 성범죄전담부서 신설, 딥페이크(특정인의 신체 등을 합성한 편집물)와 불법 촬영 등에 대해 처벌 기준을 높여달라는 요구가 담겼지만, 국회는 딥페이크 관련 처벌 규정을 별도로 만드는 것에 그쳤다. 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지위에 있다. 안타깝게도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았던 국회의원들이 또 다시 국민의 대표가 되겠다고 4월 총선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이, 그리고 여성들이 협박을 당하는 모습을 100만 원 이상 지불하고 지켜 본 사람이 우리 주변에 수십 만 명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소름끼친다. 코로나19만큼이나 우리 사회에 해로운 것이 n번방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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