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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서 사라진 ‘청년’ ‘불평등’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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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정당에 날밤 새는 한국 정치에 고함

조국사태 이후 끓어올랐던 사회경제적 의제 코로나와 정략에 묻혀

한국정치의 최전선 이슈 실종되며 포퓰리즘 출현 우려
한겨레

사회적 상속: 세습사회를 뛰어넘는 더 공정한 계획

김병권 지음/이음·1만4000원

이것도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의제실종사건.

선거 때마다 이슈의 부재, 묻지마 공약의 남발을 염려하는 목소리는 도돌이표를 찍지만, 이번 총선처럼 정책과 의제가 최소한의 주목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표의 비례성을 살리자는 선거제도개혁 차원에서 정당 간 극한 대치를 무릅쓰고 도입한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자매정당’ ‘위성정당’ 같은 희한한 유령정당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코로나19에 묻히고, 위성정당 논란에 파묻혀 올해 4·15총선은 최악의 의제실종 선거로 치러질 듯하다.

올초만 해도 분위기가 달랐다. 지난해 가을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 과정에서 한국 엘리트 대물림의 민낯이 드러나자 갖가지 물음표가 물결을 쳤다.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이란 무엇인가, 능력주의는 정의로운가, 우리는 왜 불평등한가, 한국사회는 이대로 쭉 가도 되는 걸까. 논쟁이 첨예해질수록, 한국 정치의 주전선도 세대와 불평등 이슈를 중심으로 전개될 듯했다. 총선 역시 증세, 공교육, 일자리 등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수단을 둘러싼 정책대결이 불가피해 보였다. 그러나 투표일을 스무날도 안 남긴 시점에 우리의 귀에 들려오는 것은 의미를 갖지 못한 정쟁의 소란과 잡음뿐이다.

혼란과 우려의 틈바구니에서, 불평등 의제를 재점화시키려 고군분투한 책이 나왔다. 정의당 싱크탱크인 정의정책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김병권 소장이 쓴 <사회적 상속: 세습사회를 뛰어넘는 더 공정한 계획>(이음)이다. 책은 진단과 대안으로 나뉜다. 저자는 공정-경쟁-능력주의-불평등-세대-세습이라는 핵심 열쇳말을 통해 공정한 경쟁은 더 이상 불가능하며, 빠르게 심화된 불평등이 세대를 건너 세습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최근 쏟아진 불평등 관련 저작들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조국 사태’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2018년 8월 단행본으로 묶여 나온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의 <불평등의 세대>(문학과지성사)는 주로 계급의 단층선으로 다뤘던 불평등 담론에 세대론을 장착하여 논쟁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각기 다른 정체성과 응집성을 가진 세대 집단, 즉 ‘세대 네트워크’가 세계화와 정보화에 대응하는 태도와 전략이 다를 것이라고 전제하고, 특정 세대가 자신들의 응집력 높은 네트워크와 기회(운)를 과잉점유하면서 불평등을 증대시켰다고 주장했다. 이 책의 부제인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라는 날선 물음은 586세대로 쏠린다. ‘민주화세대’를 자칭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부모뻘인 산업화 세대로부터 동아시아적 위계구조를 물려받았으며, 끈끈한 ‘세대의 정치’를 통해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거머쥐었다는 것이다. 이 네트워크 위계에서 소외된 1990년대생 청년과 여성은 세대 간 불평등의 최대 희생자다.

세대 간 불평등을 학문적 데이터로 입증한 <불평등의 세대>에 이어 주목을 받은 국내 저서는 지난 1월 발간된 <세습 중산층 사회>(조귀동 지음, 생각의힘)였다. <불평등의 세대>가 586세대와 90년대생의 격차에 주목한 것과 달리, 이 책은 청년 세대 ‘내부’의 격차를 추적한다. 저자는 조국 일가의 행태가 불공정하다며 촛불을 든 스카이(SKY) 대학생들로 대표되는 글로벌(G)세대와 분노조차도 표출하지 못한 엔(N)포세대가 공존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노동시장 진입 과정, 교육 기회, 서울과 지방의 격차, 결혼과 주택 구입 등 생애주기에서 나타나는 불평등 양상을 짚는다.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한 김영미 연세대 교수의 논문 등 최근의 각종 연구 성과를 집약했을 뿐더러, 현직 기자다운 관찰력과 쉽고 명쾌한 묘사가 장점이다.

김 소장의 <사회적 상속>은 <세습 중산층 사회>가 포착한 세습의 문제의식을 이어나간다. 그는 공정과 정의 담론이 한국사회를 4개의 층위로 나눈다고 분석한다. 정치의 정의와 관련한 절차적 민주주의 공간, 입시와 취업 등을 놓고 다투는 경쟁공간, 금수저-흙수저, 정규직-비정규직을 가르는 불평등공간, 그리고 그 심연에 있는 시계열화된 세습공간. 과거 ‘운동권’의 경험이 있는 상위 20% 586세대는 조국 사태에서 검찰개혁을 촉구하며 절차적 민주주의 공간에 집중했고, 상위 20% 청년세대는 공정을 주장하며 경쟁공간을 공략했다. 광화문, 서초동, 이른바 명문대 캠퍼스에서 점화한 촛불은 불평등공간, 세습공간은 밝혀주지 않았다.

부모 소득과 자녀 소득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소득 상위 20%와 나머지 80% 사이에 계층의 장벽이 공고하게 둘러쳐져 있는데 이는 소득만이 아니다. 부모의 직업, 학력,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자녀들의 지능은 물론, 노력의 정도, 성실성과 성취동기, 자존감 같은 비인지적 능력도 달라진다(<세습 중산층 사회>). 김 소장 역시 현재 불평등 문제는 월가 반대 오큐파이 시위에서 제기한 초엘리트 1%와 나머지 99%의 대립이 아니라, 상위 20%대 80%의 자원 배분에서 풀어야 한다고 본다. 그가 보기에, 상위 20% 586세대가 불평등과 세습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는 “태어난 시점 자체가 행운이기 때문”이다. 586세대가 청년으로 성장한 시기엔 유례없이 높은 경제성장률, 고교평준화와 사교육금지 같은 교육격차 해소 조처가 있었다. “586이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것도 우호적인 사회적 기회 공간이 주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대학 재학 시절 취업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586세대는 ‘행운’ 덕분에 능력주의의 수혜를 입었다는 것, 능력주의는 이제 고장났고 세습주의가 완승을 거뒀다는 것, 더 나아가 능력주의 자체가 불평등의 뿌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자녀의 인생이 부모로부터 출발점을 물려받는 릴레이 경주가 되어버린 현실을 바꾸려면, 청년들에게 기초자산(정의당 총선 공약은 1인당 3천만원)을 지급해 출발선 최저점을 맞추거나 최고임금을 최저임금과 연동시키고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한 ‘패키지 정책’ 그린뉴딜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사실, 이런 정책적 대안보다도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한국 정치가 빈곤함을 넘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조귀동의 표현대로, 보수정당은 60대 중반 이상의 건물주 정당, 여당은 대기업 50대 부장의 정당으로 한국 사회의 80%를 대변하지 못한다. 미래통합당을 모태로 만든 미래한국당과 낯부끄러운 공천 파동, ‘친문’을 경쟁하고 있는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의 난립, 젠더 같은 진보적 의제의 방치 등은 포퓰리즘의 위태로운 양상을 드러낸다. “기존 엘리트 집단이 주로 기성세대 시민들을 팬덤 정치로 분할시키고 서로 적대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80% 청년세대 방관자로 외부화되고 있는 한국 정치의 국면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사회에는 포퓰리즘 폭발의 잠재성이 굉장히 많다. 특히 보수적 포퓰리즘의 잠재성이 크다.”

김 소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희미하나마 희망의 가능성을 전망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포퓰리즘의 비극이지만, 한편으론 노장 버니 샌더스가 20대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과 손잡고 2030청년 세대를 대표하며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나. 한국에서도 그런 80% 청년세대의 정치적 욕구를 일깨울 수 있다면 한국 정치도 변하지 않겠는가.”

불평등의 정치’를 더 알고 싶은 당신에게

공정, 정의, 계층과 세대의 불평등을 날카롭게 파헤친 외국 저작들도 많다. <능력주의는 허구다>(스티븐 J. 맥나미 외, 사이)는 ‘공정한 경쟁’을 맹신하는 이들에게 따끔한 진실을 알려준다. 사람들은 성공의 토대가 능력주의라고 믿지만, 실제로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비능력주의’라고 지적한다. <20 VS 80의 사회>(리처드 리브스, 민음사)는 상위 20%와 80%의 격차가 점점 커지기 때문에 상위 1%를 해체한다고 해서 불평등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각종 데이터 분석으로 전개한다. ‘불평등에 공모한 나를 고발한다’라는 도발적인 부제를 달고 있는 <부당세습>(매튜 스튜어트, 이음)은 상위 9.9%인 ‘능력자 계층’이 어떻게 미국 경제와 민주주의를 망치는지 고발한다. <불평등의 역사>(발터 샤이델, 에코리브르)는 역사학자의 길고 넓은 시선으로 불평등의 추이를 분석한다. 전쟁, 변혁적 혁명, 치명적 전염병 유행이 발생했을 때에만 불평등이 해소됐다는 주장은 섬뜩한 역설이다. <위험한 민주주의>(야스차 뭉크, 와이즈베리)는 권위주의적 대안과 포퓰리즘 정치가 득세하는 원인을 밝히며 정치 엘리트들이 자행하는 ‘비민주주의적 자유주의’의 행태를 고발한다. 하층계급이 어떻게 포퓰리즘의 포로로 전락했는지 궁금하다면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데이비드 굿하트, 원더박스)을 참고하자. 물론 불평등 담론의 세계적 스타인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글항아리)도 빼놓을 수 없겠다. 다음달엔 그의 역작인 <자본과 이데올로기>(문학동네)도 한국어로 독자를 만난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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