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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n번방의 악마들' 어떻게 탄생했나···그들에겐 '믿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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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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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25)을 포함한 n번방 운영자들의 범죄 수법과 성 착취 동영상을 돈 내고 시청한 회원들의 실태가 알려지면서 여론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체포된 가해자 중 '태평양'은 16살 남성이란 게 알려지면서 ‘n번방의 악마’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악마는 어떻게 탄생한걸까.



"여성을 상품으로 여겨"



전문가들은 n번방 사건이 신종 범죄처럼 여겨지지만, 수법이 달라졌을 뿐 여성을 성적 도구화하는 문화가 다른 형태로 표현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여전히 n번방 이용자들 사이에선 ‘피해자 본인이 찍어서 보낸 건데 뭐가 문제냐'거나 '야한 동영상 못 보게 하는 것은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다”며 “여성의 성을 도구화해서 거래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 왔기 때문에, 내가 돈을 지불하면 그걸 살 수 있고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도 “그 동안은 안마방·오피방(오피스텔 성매매방)·룸살롱 등 오프라인 공간에서 여성이 남성의 거래 대상이 됐는데 이런 문화가 정보통신기술을 만나 n번방 등 온라인을 무대로 한 성 착취로 이어졌다”며 “온라인 가상 방을 만들어 여성을 상품·재화·거래 대상으로서 삼은 것은 갑자기 터져 나온 게 아니라 과거부터 있었던 여성 착취 문화가 변형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잡혀도 약한 벌 확신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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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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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 등 n번방 운영진과 회원들은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설령 잡힌다 해도 처벌 수위가 낮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범죄를 저질렀다는 분석도 있다.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는 “온라인 성범죄는 서버를 해외에 두는 사례가 많아 검거하기가 어렵고, 잡는다고 해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주로 10~20대인 피의자들의 사정을 참작해 관대하게 처벌한다”며 “현행법도 적극적으로 적용하기만 하면 이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징역형이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고 거의 대다수가 벌금이나 집행유예 선고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김범한 변호사(YK 법률사무소)도 “현재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법정형이 낮아서가 아니라 법원의 판결, 즉 양형 기준이 낮아서 문제”라며 “디지털 성범죄도 지금 제정돼 있는 법정형으로도 충분히 엄하게 처벌할 수 있는데 ‘징역 3년 이상을 선고할 수 있다’고 한다면 징역 3년만 선고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사기관은 ‘피해자의 이익’에 큰 관심이 없고, 법원은 ‘피고인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자신의 영상이 유통될지 모른다는 피해자들의 공포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인데, 수사기관은 영상 삭제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고 가장 쉬운 피해자 조사를 통해 사건 단서를 찾으려고 해 2차 상처를 줄 때도 많다”며 “그 후 가해자를 검거해 법정에 세워놓으면 피고인의 반성이나 성정 등을 기준으로 판결하고, 피해자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는 크게 고려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처벌 강화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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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법률 제정 및 2차 가해 처벌 법률 제정 등을 촉구하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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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제3의 n번방 사건이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 중 하나로 처벌 강화가 꼽힌다. 김재련 변호사는 “피고인의 인권을 챙기고, 연령을 고려해 감경해주기보다 단기로라도 실형을 선고해야 '성 착취물을 보면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전달되고 경각심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지영 교수도 “가장 실효성 있는 방법은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양형을 강화하고, 지금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적용하는 것”이라며 “지금 검거된 '와치맨'이나 '켈리'에 대한 과거 처벌도 보면 솜방망이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선도적인 법 마련 필요"



n번방 사건처럼 빠르게 바뀌는 디지털 환경을 악용하는 성범죄를 막기 위해 ‘빠른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승희 대표는 “법 제정은 느린데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빠른 속도로 다양해지고 이어서 입법 공백을 적극적으로 매워야 한다”며 “한국이 인터넷이 가장 빠르고 성 착취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가장 선도적인 법을 상상해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지영 교수도 “디지털 성착취물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입법안이 나와야 하고, 온라인에서 성 착취물로 번 수익은 전액 몰수하고 환수하는 조치도 성폭력 특례법에 추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 대책 마련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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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n번방’에서 ‘박사방’까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에 더해 전문가들은 인터넷 환경을 바꾸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범한 변호사는 “법을 보완한다고 해도 디지털 성범죄는 계속 법에 안 걸리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기 때문에 업벌 외에도 인터넷·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사용자 실명제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n번방 사건은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착취적인 문화가 실제로 표현된 것”이라며 “극단적인 사이트에서 통용되고 있는 비난과 차별 표현 등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로 보장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보고, 그 범위를 넘어서는 온라인 사이트는 폐쇄 조치하는 게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교육의 중요성은 최우선 순위로 꼽힌다. 김재련 변호사는 “여성이나 미성년자의 몸을 소비재로 여기는 생각을 학생이나 20대가 했다는 게 심각한 문제”라며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을 기르는 교육이 부족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인 만큼 그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지영 교수도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을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며 “여성을 전리품처럼 수집하고 과시하는 방식을 통해 남성 사회에서 인정받는 매커니즘이 깨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연·남수현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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