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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대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링크스 코스, 반부글 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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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호주 남단의 태즈메이니아(Tasmania) 섬에 위치한 반부글 듄스. 호주 땅에서 스코틀랜드 링크스 코스의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하고 있는 반부글 듄스는 정답은 없지만 모범 답안이 많은, 그래서 내가 친 샷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곳으로부터 더 나은 샷을 계획해 목표에 도달하는, 지극히 인생길과 같은 코스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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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코로나19와 전쟁을 하고 있는 2020년의 봄. 한 달 전 애리조나의 사막 이야기를 쓰고 있을 때만 하더라도 우리의 일상이 이렇게 한순간에 어둠 속에 갇혀 버리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상황이 조금씩 진정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말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므로’ 앞으로 수개월은 더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답답한 공간에서 벗어나고픈 욕구가 최고조에 달한다.

심신이 지쳤을 때 인간이 회복을 구할 수 있는 두 가지 원천이 있다. 첫째는 날 이해하고 걱정해 주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류이고, 둘째는 내 가슴을 신선한 공기로 정화시켜주고 내 두 눈을 하늘과 땅이 맞닿은 눈부신 경관으로 채워주는 자연이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는 요즘, 순간이동이라도 할 수 있다면 눈부신 경관의 자연 속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이왕 떠날 바에야 최대한 멀리, 호주 남단의 태즈메이 니아 섬까지 가보도록 하자. 멜버른에서 남쪽으로 1시간을 날아 가면 태즈메이니아 섬 북단의 작은 도시 론서스턴(Launceston)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80km를 달리면 반부글 (Barnbougle) 해변이다. 이곳에 호주 최고의 데스티네이션 골프 리조트인 반부글이 자리잡고 있다.

태즈메이니아에 대해 내가 알고 있었던 유일한 지식은 TV에서 본 ‘태즈메이니아 데블(Tasmania Devil)’이라 불리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 전부였다. 작은 반달곰같이 생긴 태즈메이니아 데블은 귀여운 외모와 달리 포악한 성격과 날카로운 울음소리 때문에 ‘악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태즈메이니아는 때묻지 않은 자연으로 유명하다. 온화한 기후와 뜨거운 태양 볕 덕에 과일이 달콤하고 와인의 품질 또한 좋다. 이곳을 함께 방문한 일행 중 한 명이 도로변 농장에 들러 체리를 사자고 제안했다. 감귤 상자 두 개 분량의 체리를 사 들고 일행이 있는 미니 버스에 오르는 그를 보고 속으로 ‘저 많은 체리를 다 어쩌려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울토마토만 한 체리는 한 명 두 명 새우깡 먹듯 손이 가기 시작하더니 버스를 내릴 때쯤 이미 빈 상자가 돼 있었다. ‘설마’ 하는 사람들은 태즈메이니아에 가게 되면 꼭 시골 농장에 들러 달콤한 체리를 맛보길 권한다.

반부글의 클럽하우스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골프에 필요한 만큼으로 최소화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골프 리조트는 코스로 승부한다는 자신감마저 느껴지는 이곳은, 5성급 호텔을 원한다면 다른 곳을 찾아보라는 듯 모든 시설이 단순하면서도 깔끔하다. 끝없는 수평선이 눈앞에 걸려 있는 클럽하우스에서 드디어 반부글 듄스를 만날 준비를 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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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전통적인 링크스 코스를 재현한 반부글 듄스

스코틀랜드에서나 볼 수 있는 전통적인 링크스 코스를 재현한 것 같은 코스는 해안선을 따라 해변으로 쓸려온 모래가 퇴적된 와일드한 언덕 사이로 인간의 문명보다 더 오래된 대지의 자잘 한 근육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마람그래스(Marram Grass)가 가득한 언덕 사이에 길이 나 있는 페어웨이는 잔디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짧게 깎여 마치 털이 수북한 양의 등 언저리를 밀어 놓은 듯하다. 첫눈에도 전략적으로 창의적인 샷을 할 수 있는 골퍼만이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코스임이 분명했다. 페스큐 잔디의 페어웨이와 벤트그래스 그린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자연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해 그림자가 점차 짧아지는 이른 오전에는 마치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가 페어웨이인지 모를 너른 벌판 위에 심겨 있는 벙커들은 그린에 도달하는 정답을 강요하기보다 나만의 루트를 개척하게 하는 묘미를 선물해 준다.

첫 세 홀을 지나며 반부글의 대지에 적응해 갈 무렵, 남반구에서 가장 높은 턱을 자랑하는 벙커로 유명한 4번홀에 도착하게 된다. 254m의 짧은 파4홀은 바람의 힘을 빌릴 경우 3번 우드로도 그린 공략이 가능하다. 그러나 페어웨 이 오른쪽 언덕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유명한 벙커에 빠질 경우 어마어마하게 높은 벙커 턱으로 인해 그린을 공략 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바람을 뚫고 숨가쁘게 마무리한 전반 9홀을 뒤로 하고 후 반전을 치를 준비를 했다. 12번홀(파4)은 238m로, 바람의 방해가 없다면 그린을 공략할 수 있는 홀이다. 편평하고 지루한 그린에 익숙한 골퍼들은 마치 손등 위에 노출된 관절과 혈관 같은 그린 표면의 굴곡에 당황할 것이다. 안전한 옵션은 페어웨이 왼쪽으로 티 샷을 보낸 후 그린까지 짧은 어프로치 샷을 남겨두는 것이다.

15번홀은 293m 파4홀로, 커다란 해안사구를 병풍 삼아 위치한 그린이 매우 자연스럽다. 반부글과 로스트 팜 사이에 흐르는 강과 평행하는 이 홀은 페어웨이 한가운데 있는 벙커의 위치가 티 샷의 방향에 영향을 준다. 넉넉한 오른쪽 페어웨이로 공을 보냈을 때는 벙커가 묻혀 있는 언덕이 시야를 가로막아 세컨드 샷 때 그린이 보이지 않게 된다. 반면 페어웨이 벙커 오른쪽으로 열려 있는 좁은 공간으로 티 샷 을 보낼 경우 그린으로의 시야가 트이게 된다. 반부글은 정답은 없지만 모범 답안이 많은, 그래서 내가 친 샷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곳으로부터 더 나은 샷을 계획해 목표에 도달하는, 지극히 인생길과 같은 코스다. 아마도 호주 땅에서 스코틀랜드 링크스 코스의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하고 있는 곳이 바로 반부글 듄스인 것 같다.

클럽하우스 겸 레스토랑에서 즐긴 저녁 만찬은 인근 바다에서 낚은 해산물로 가득했다. 식사 중 대화의 주제는 스 코틀랜드에서의 경험으로 흘러갔다. 나는 일행에게 로열 트룬 근처 바닷가에서 캘리포니아 출신 친구가 나와 대학원 친구들에게 했던 질문을 똑같이 해 보았다. “바다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들어가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당황한 일행에게, 관심이 있으면 큰 수건 하나와 손전 등을 들고 한 시간 후에 만나자고 제안했다. 숙소에서 나와 이미 불이 꺼진 클럽하우스 앞으로 가니 일행 11명 중 5명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모래사장에 도착한 후 주저하는 일행을 뒤로 하고 결국 내가 먼저 바다로 뛰어들었다. 끝까지 점잔을 빼며 담배 한 개비를 물고 해변을 산책한 1인을 제외하곤 모두 태평양의 시원한 바닷속으로 돌진했다. 남십자성과 은하수가 가득한 여름 밤하늘 아래, 낄낄대며 숙소로 돌아오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들 같았다. 그때 머리 위로 별똥별이 한 개도 아니고 두 개씩이나, 별 반 하늘 반의 공간을 가로지른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별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올해 11월 태즈메이니아를 다시 찾아갈 예정이다. 그때도 밤 하늘을 가르는 별똥별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필자 오상준은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에서 골프코스 설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건축 설계, 골프코스 설계, 골프코스 시공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그는 2015년 프레지던츠컵 TF팀의 디렉터로서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다. 현재 CJ에 재직 중이며, 2019년 가을 미국의 매거진 세계 100대 코스 선정위원에 위촉돼 활발히 활동 중이다.

매일경제 골프포위민 유희경 기자(yhk@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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