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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여론조사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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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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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청주대 신문방송·한국문화전공 교수

동전던지기를 해서 친구와 점심값 내기 결정을 한다면 이는 공정할까? 단언컨대 이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공정한 게임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 또다시 앞면이 나와 연속해서 밥값을 내게 되더라도 너무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서 열번, 백번...,무한대로 횟수를 늘려가면 최소한 손해볼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내가 선택한 앞면이 나올 가능성은 정확히 50%에 수렴되기 마련이다.

이게 바로 통계학에서 말하는 확률의 법칙이다.

정확성과 공정성이 생명인 여론조사를 수행할 때에는 이 확률의 법칙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표본을 무작위로 추출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이 과정은 일상생활에서의 동전던지기처럼 그리 간단치가 않다.

여론조사를 위해서는 모집단을 선정하게 되는데, 지방선거 때에는 특정 지자체, 국회의원선거 때에는 지역구, 대통령선거 때에는 전국의 유권자가 이에 해당한다.

거대한 모집단에서 대개 1천~2천명 정도의 대상자를 선정하는데 이를 표본(Smaple)이라고 한다.

표본을 무작위로 추출하는 일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모집단의 명부를 확보한 후 이들에게 일일이 번호를 부여해야 한다.

이후 모집단 수만큼의 번호표를 만들어 골고루 섞은 다음 목표로 하는 크기의 표본을 뽑아야 한다.

이 과정은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빅브라더나 대단한 권력을 가진 독재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대안으로 RDD나 비례할당 방식이 채택되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의 무작위 표집과는 거리가 있다.

RDD(Random Digit Dialing) 방식은 컴퓨터가 무작위로 생성한 숫자들로 구성된 난수표(Random number table)를 이용해서 목표로 하는 표본의 크기만큼 국번별 전화번호를 만들어서 전화걸기를 시도하는 방식이다.

언뜻보아 무작위 표본을 바탕으로 한 여론조사처럼 보이지만 예상치 못한 고비용과 조사원의 힘겨운 노력은 무작위 표집이라는 당초의 목표에서 빗나가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비례할당 역시 무작위 표집과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성, 연령, 지역 항목을 기준으로 인구 비례할당해서 표집할 경우 소득이나 교육수준 등 다른 변인을 간과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추출된 표본은 모집단의 특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

모집단 내 수많은 인구통계학적 항목들 중에서 두세개 항목을 기준으로 추출된 표본은 절대 무작위 표집이라고 볼 수 없다.

무작위 표본에 근거하지 않은 여론조사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거의 맹신에 가깝다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개인이든 언론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부정확하고 불공정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여론조사의 결과를 보도하는 언론은 유권자들을 더욱 혼란에 빠뜨리곤 한다.

예를 들어, 신뢰수준 95% 오차범위 ±3%에서 A와 B후보가 각각 52%와 48%의 지지를 얻었다고 치자.

이를 보도할 때 언론은 "A와 B는 각각 49~55%, 45~51% 범위 어느 지점에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A가 앞선다고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49%를 얻어서 51%를 얻은 B에 뒤질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신뢰수준이 95%이니 이마저도 백번 중 다섯번은 틀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언론은 "오차범위 내에서 A가 앞서고 있다"고 보도한다.

이런 식으로 보도하면 A는 다음 여론조사에서 더욱 유리해지는 반면 B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속성상 단순화하고 서열화하기를 좋아하는 언론은 절대 복잡하게 보도하려 하지 않는다.

이효성 교수 표본으로부터 나온 결과를 모집단에 일반화할 때는 지극히 겸손하고 완곡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제대로 된 무작위 표본에 기반하지 않은 여론조사 결과라면 신뢰수준이나 표본오차를 언급하는 자체가 넌센스이므로 모집단과 절대 연관지어 말하면 안된다.

여론조사 업체나 의뢰하는 기관, 그 결과를 보도하는 언론은 유권자의 호기심을 부추기기 보다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개인이나 유권자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맹신하기 보다는 참고자료 정도로 간주하면 충분할 것이다.

민주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여론조사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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