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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비례’ 노린 소수정당 난립… 졸속 심사로 부적격 후보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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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개 정당 비례후보 310명 등록 /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첫 허용 / 대부분 총선 앞두고 급조 창당 / 거대정당들, 위성정당 줄세워 / 투표지 10번째 칸까지 원내 정당 / 소수정당으로 갈 몫 줄어들어 / 여성의당·남북통일당·자영업당… / 정체성·이념 뚜렷한 정당 다수 / 소수자·소수 이슈 공론화 이점 / 당의 심사로 후보 절대적 평가 / 기준 명시 정당은 9곳에 그쳐

세계일보

30일 오후 대전시 대덕구 한 인쇄소에서 직원들이 선관위 입회아래 4ㆍ15 총선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인쇄하고 있다. 비례대표 선거 참여 정당이 35곳으로 정당투표용지는 48.1cm나 된다. 투표지분류기에 넣을 수 없어 수개표가 불가피 하다. 연합뉴스


오는 4·15 총선에서는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이 35개에 달한다. 헌정 사상 최다 수준이다. 이들 정당이 내는 후보자만 310명(3월30일 기준)이다. 정당을 창당하려면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켜 중앙당을 세워야 하고 전국 17개 특·광역시·도 가운데 최소 5곳에 시도당을 둬야 한다. 시도당은 해당 지역에 주소를 둔 1000명 이상을 입당시켜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당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이유는 이번 총선에서 처음으로 적용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대 정당들이 비례 위성정당을 세우면서 소수 정당으로 돌아갈 몫이 당초 예상보다 현저히 줄었다. 기성 정당이 대표하지 못한 소수자나 소수 이슈를 공론화한다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이름도 생소한 소수 정당이 난립되면서 유권자들의 혼선을 야기하고 검증되지 않은 부적격 후보들이 난립하는 등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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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인 명부 확인 30일 서울 시내 한 주민센터에서 직원들이 4·15 총선 선거인 명부를 확인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10번째 칸 안… 현역 의원 정당들

비례 투표용지 10번째 칸 안에는 현역 의원이 있는 원내 정당이 오른다. 정치권에서 자주 언급돼 인지도가 있는 정당이 앞 순번을 차지했다. 민생당, 미래한국당, 더불어시민당, 정의당, 우리공화당, 민중당, 한국경제당, 국민의당, 친박신당, 열린민주당 등의 순이다.

이 가운데 한국경제당은 2016년 3월 설립된 곳으로 강령에서 동북아 평화공존과 정의로운 시장경제 추구를 목표로 내걸었다. 미래통합당에서 ‘컷오프’(공천 배제)된 뒤 기독자유통일당에 몸담았다가 한국경제당에 옮겨온 이은재 의원이 비례 1번을 받았다.

11번째 칸부터는 이름조차 생소한 원외 정당들이 배치됐다. 허경영씨가 대표로 있는 국가혁명배당금당은 이 중 가장 많은 후보자(22명)를 냈다. 이 당은 강령에서 대한민국 주도의 세계통일을 제1의 목표로 하고 당원 요건으로 투철한 국가관과 민족사적 소명의식을 내세웠다. 허 대표는 비례 2번에 올랐다. 살인 전과 이력의 김성기(64) 후보와 청소년 성폭행 전과가 있는 조만진(58) 후보 등 논란의 인물은 최종 명단에서 빠졌다.

전광훈 목사의 기독자유통일당은 21명의 후보자를 등록했다. 이 당은 기독교의 사회적·정치적 책임을 목표로 내걸었다. 노무현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과 국정원장을 역임한 김승규 후보가 비례 2번에 올랐다. 낙태제 폐지반대 국민연합 대표인 송혜정 후보(5번)와 태아사랑운동연합 경북지부 대표인 오현민 후보(9번), 한국교회 동성애대책협의회 인권위원인 지영준 후보(12번) 등 종교적 입장과 성향을 대변하는 인물이 대거 포진했다. 20대 총선에 참여했던 노동당, 녹색당, 코리아 등 군소정당도 이번 선거에 재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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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이념 뚜렷한 신생정당 대거 등장

이번 총선에선 정체성이 뚜렷한 신생 정당이 대거 등장했다. 지난 16일 선관위에 등록된 여성의당은 성평등을 제1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이 당은 성착취물을 불법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관련한 지난 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의 졸속 심사를 가장 먼저 규탄했다.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소속인 이지원(27) 후보가 비례 1번이다.

탈북민들이 설립한 남북통일당은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정신과 박정희 대통령의 부국 정신을 계승하며 친북 주사파 세력과의 싸움을 최우선 과제로 정한다’고 밝혔다. 자영업당과 충청의미래당은 각각 ‘자영업자, 중소상공인, 체육·봉사·장애인 등의 권익보호’와 ‘충청 중심의 대통합 시대’를 목표로 내걸었다.

반면 명칭만 봐서는 정체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정당들도 많다. 국민새정당, 국민참여신당, 대한당, 대한민국당, 미래민주당, 우리당, 자유당 등 유명 정당과 유사한 이름의 정당들이다. 이 중 우리당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혁신해 국부를 창출함으로써 국민의 행복 지수를 높이겠다”며 설립 목적을 모호하게 밝혔다.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과거 새누리당과 이름이 같은 새누리당도 이번 총선에 참여한다. 2017년 4월 창당한 이 새누리당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건국이념, 조국근대화 정신을 이어받고 한반도 흡수통일을 통한 인류 공영 이바지를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구국총연합부대표인 성영애(60) 후보가 비례 1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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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부실 심사… 기준도 제시 안 해

개정 선거법은 비례대표 ‘밀실 공천’ 관행을 종식하기 위해 민주적 심사절차를 거치도록 자세히 규정했다. 이에 따라 각 정당은 비례대표 선출 관련 당헌·당규·내규 등을 선관위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참여 정당 대부분이 선거를 앞두고 급조되다 보니 졸속, 부실 심사가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35개 정당 중 당헌 등에 부적격 후보자 기준을 명시한 정당은 9곳에 불과했다. 선출직인 지역구 선거와 달리 비례대표 후보는 당의 심사가 후보 자격의 절대적 평가가 된다. 개정 선거법은 선거인단이 투표를 통해 후보자 순번 결정 또는 명단 승인을 하도록 규정했지만 대부분 정당에서 이러한 절차는 형식적 단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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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음주운전과 공직선거법 위반, 뇌물죄 등 범죄 기록을 부적격 기준으로 명시해 심사한 정당은 민생당과 미래한국당, 정의당, 가자환경당 4곳에 그쳤다. 정의당은 음주운전으로 인명 피해를 낸 운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인 ‘윤창호법’ 시행 이후 음주운전을 공천 부적격 사항으로 명시했다.

반면 열린민주당은 후보자 부적격 기준을 ‘파렴치한 범죄전력자 등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와 ‘명백히 부적합한 사유가 있는 때’라고 모호하게 규정했다. 이로 인해 비례 6번에 오른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음주운전 이력이 밝혀졌음에도 후보 자격을 유지했다.

각 당이 선관위에 후보자 등록을 하려면 병역사항·5년간 세급납부 내역·전과기록 등 15가지 항목을 기재해야 한다. 하지만 규정에 후보자가 내야 할 서류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정당도 40.0%(14곳)에 달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교양학부)는 “지역구 후보는 선출 행위를 통해 판가름이 나지만 비례대표 후보는 당의 심사로 결정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며 “현재 비례후보를 보면 이 제도가 과연 지역구 선거를 통해 원내 진입이 어려운 전문가와 사회적 소수자, 약자가 등용되는 역할을 하는 건지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현미·이창훈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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