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유럽도, 미국도 읽는다...지구촌은 지금 '페스트 열풍'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흑사병 다룬 알베르 카뮈 소설 '페스트'

코로나 창궐에 伊-佛 등 전세계서 재조명

국내선 두 달간 1만8000부 팔려나가

알랭 드 보통, NYT에 칼럼 기고

"사람은 제각기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뒤 지구촌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열독 중이다.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카뮈가 1947년 발표한 소설 ‘페스트’가 바이러스 사태 여파로 다시 읽힐 뿐아니라 국제적으로 유력한 언론에서 재조명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지금껏 ‘페스트’를 독점 출간해 온 갈리마르 출판사는 3월 이후 5000부를 더 찍었다고 한다. 바이러스 피해가 극심한 이탈리아에선 카뮈의 ‘페스트’가 베스트셀러 3위까지 뛰어 올랐다. 영어권 언론에서도 소설 ‘페스트’가 지닌 시대적 의미를 다룬 칼럼이 잇달아 실렸다.

국내에서도 ‘페스트’ 판매가 급증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한국어판 ‘페스트’는 약 30종이고, 전부 합쳐서 지난 두 달간 약 1만8000부가 팔렸다고 한다. 민음사에서 낸 ‘페스트’(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 옮김)가 약 7000부 가량 나가면서 선두를 차지했다.
조선일보

왼쪽부터 한국어판(민음사), 영어판, 독일어판, 프랑스어판 '페스트' 표지들. /민음사, 아마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프랑스 언론에선 ‘감염병 소설의 상상력’ 전문가로 꼽히는 오렐리 팔뤼 교수(렌느 대학)가 주목을 받아 여러 매체에 등장했다. ‘페스트’는 1940년대의 가상 상황에 처한 도시 ‘오랑’이 감염병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된 가운데, 그 주민 공동체가 질병에 맞서 보여주는 다양한 반응을 그려낸 소설이다. 팔뤼 교수는 “감염병은 정치적, 도덕적 성찰의 호재가 된다”라고 풀이했다. “내가 연구한 동시대 작가들의 경우, 유난히 되풀이되는 것은 공동체에 관한 질문이다. 하나의 공동체가 오늘날 여전히 가능한가? 개인은 자족적으로 사는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들 틈에서 사는가? 이런 질문들이 감염병을 통해 묵직하게 제기된다. 왜냐하면 진짜 감염병은 각 개인으로 하여금 그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을 경계하도록 만든다. 느닷없이 감염병이 창궐한 가운데 사람들은 공동체에 등록되어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사람들은 타자(他者)를 종종 무시하거나 반대로 너무 자주 접했다. 내가 볼 때, 감염병을 다룬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타자와의 관계를 다루는 방식이다.”

팔뤼 교수는 감염병 시대에 개인과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카뮈의 묘사를 즐겨 인용했다. 김화영 교수의 번역본에서 발췌하면 이렇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시가지 풍경을 창문 밖으로 내다보면서 의사는 흔히들 불안이라고 이름 붙이는 미래에 당면하여 가슴속에 가벼운 구토증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듯 말 듯했다. 그는 역사상 알려진 약 서른 차례에 걸친 대규모 페스트가 일억에 가까운 인명을 빼앗아 갔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1억의 사망자가 과연 무엇인지 알 듯 말 듯해져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사람이란 그 죽은 모습을 눈으로 보았을 때에만 실감이 나는 것이어서, 오랜 역사에 걸쳐서 여기저기 산재하는 일억의 시신들은 상상 속의 한 줄기 연기에 불과한 것이다. (중략) 사망자 일만 명이라면 커다란 영화관을 가득 채운 관중의 다섯 곱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똑똑히 이해를 해 보자면 극장 다섯 군데에서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서, 그들을 시내의 큰 광장으로 데리고 간 다음 모두 죽여서 무더기로 쌓아놓는다는 식으로 상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름 모를 시체들의 더미 위에 낯익은 사람들의 얼굴을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실현 불가능한 일이고 또 누가 만 명씩이나 남의 얼굴을 알고 있단 말인가?’
조선일보

왼쪽부터 이탈리아어판, 한국어판(열린책들), 일본어판 '페스트' 표지. /아마존, 열린책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팔뤼 교수는 소설 ‘페스트’ 중 감염병과 전쟁을 비교한 대목도 손꼽았다. ‘이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많은 페스트가 있어 왔다. 그러면서도 페스트나 전쟁이나 마찬가지로 그것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언제나 속수무책이었다. (중략)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말한다. “오래가지는 않겠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야”. 전쟁이라는 것은 필경 너무나 어리석은 짓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언제나 악착같음이다.’

팔뤼 교수는 감염병 사태를 맞을 때마다 되풀이되는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종 차별을 꼽았다. 코로나 사태의 발원지가 중국이기 때문에 유럽에서 일어나는 아시아인 박해를 우려하면서 “흑사병이 중세에 유대인을 속죄양으로 삼았듯이, 오늘날의 감염병이 잘못된 타자의 표상(프랑스에서 아시아인 낙인 찍기가 이런 현상에 속한다)을 새로 만들거나 되풀이하면서 케케묵은 공포를 솟구치게 한다”라고 했다. 그녀는 카뮈가 페스트 퇴치 상황으로 소설을 마무리하면서 제시한 교훈을 강조했다. “하지만 카뮈는 그러한 환희 때문에 과거와 경험을 잊어선 안 된다고 요구한다. 구습에 다시 빠지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그런 관습은 악의 프로파갠더에 유리하다.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하고, 새로운 연대감과 우선권(優先權)에 기초한 사회를 건설하려고 해야 한다.”
조선일보

전염병 창궐을 다룬 소설 '페스트'로 재조명받고 있는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에도 고정 독자가 많은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지난 3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카뮈는 감염병의 고통이 사람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 고통에 대해 언급할 때 가장 고마워할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라고 풀이했다. 소설 ‘페스트’의 의미를 냉소적으로 해석하면서 인류에게 날린 카뮈의 경고를 되살린 것이다. 그는 “카뮈의 소설은 특정한 감염병을 다룬 것도 아니고, 나치의 프랑스 점령에 관한 은유적 이야기로 좁혀지지 않는다”라면서 “인간은 언제라도 바이러스 혹은 어떤 사건이나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의 행동에 의해 무작위로 몰살 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풀이했다.

그는 “카뮈가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그가 최고의 감염병학자 뺨치게 겁을 먹일 줄 아는 마술적 선지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본성을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이다”라며 소설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만 인용했다. 김화영 교수 번역본에서 그 뒤를 이어 더 읽어보면 이렇다.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