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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불단에 가려진 백제 최대 석불, 30년만에 온전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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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따로 머리 따로' 익산 연동리 불상

대좌 가렸던 불단 걷어내고 강화유리로 교체

"머리는 1900년대 새로 만들어 붙인 것으로 추정"

정유재란 때 왜군 장수가 불상 목을 쳤다는 설도

조선일보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현재 모습. 목재 불단에 몸체 아래 대좌 부분이 완전히 가려져 있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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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 연동리에는 ‘몸 따로, 얼굴 따로’인 백제 불상이 있다. 보물 제45호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앉은 높이가 1.5m에 달하는 거대한 불신(佛身)에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진 광배와 대좌(臺座·불상을 놓는 대)까지 갖췄지만, 위풍당당한 몸체 위에 덩그마니 올려진 얼굴은 어딘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발견 당시부터 사라지고 없던 머리를 누군가 새로 만들어 시멘트로 붙였기 때문이다.

◇백제 최대 석불 가린 불단, 30년만에 치운다
현존하는 백제 불상 중 가장 크고 오래된 입체 석불로 꼽히는 이 미스터리 불상이 몸체 아래 대좌 부분을 가렸던 불단을 걷고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문화재청과 익산시는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대좌를 가렸던 목재 불단을 강화유리로 바꾸는 정비 작업을 다음 달까지 벌인다고 30일 밝혔다.

이 불상은 옷자락이 흘러내려 대좌를 덮은 상현좌(裳縣座) 형식이지만, 1990년 석불사 대웅전을 지으면서 만든 불단이 대좌를 가리고 있어서 유려한 옷주름을 볼 수 없었다. 김승대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 연구관은 “불단을 치우고 대좌 앞면과 옆면에 유리를 놓되 앞면에는 공양구를 올려 예불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시민들이 불상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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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1989년 모습. 몸체 아래 대좌를 덮은 옷자락이 선명하게 보인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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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왜군 장수가 불상 머리를 베었다?
불상은 당당한 어깨와 균형 잡힌 몸체, 광배와 대좌의 정교한 아름다움이 온전히 남아있어 백제 불교 조각의 백미로 꼽힌다. 제작 시기는 600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특히 불상 뒤에 놓인 거대한 광배가 압도적이다. 중앙엔 둥근 머리광배가 볼록 나와있고 그 안에 16개의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배경으로 작은 부처 7구가 새겨져 있다. 광배 높이는 3.34m, 최대 폭 2.66m로 현존하는 광배 중에 가장 크다. 불교미술 연구자인 김정희 원광대 교수는 “광배에 표현된 불꽃무늬는 서산마애삼존불에서도 볼 수 있는 백제 양식이며, 일본 호류지(法隆寺) 금동석가삼존불상(623년) 광배에서도 볼 수 있어 백제 양식이 일본 아스카시대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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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리 석조여래좌상 뒤에 놓인 광배 오른쪽 측면. 현존하는 광배 중 가장 크고, 정교하게 새긴 무늬가 돋보인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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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격에 맞지 않는 불두(佛頭). 백제 장인이 만든 머리는 언제, 왜 사라졌을까. 마을에선 이 석불이 정유재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끌던 왜군을 막아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파죽지세로 올라오던 왜군이 금마에서 가로막혔는데 이유인 즉슨 지독한 안개 때문이었고, 가토는 안개의 조화가 불상의 위력 때문이라고 믿어서 칼을 휘둘러 불상의 목을 쳤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일 뿐 학술적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조선시대 억불 정책으로 훼손됐을 가능성도 있고, 지진 같은 자연재해 때 불상이 굴러 떨어졌다가 가장 약한 부분인 목이 부러졌을 가능성도 있다”며 “현재의 얼굴은 1900년대에 누군가가 만들어 올려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지난 1월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은 상설전시실에 연동리 석불의 몸체를 실물 크기로 재현하고, 그 위에 원래 머리로 추정되는 3가지 모양을 빛으로 투사하는 전시 기법을 선보였다. 익산 지역사회에선 백제 최고·최대의 석불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불두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화재청은 8월까지 불상 실측조사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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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리 석조여래좌상 얼굴 부분. 1900년대에 누군가 만들어 올려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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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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