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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도넛은 달콤한 유혹?…꿈 잃지 말라는 채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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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선천적인 적녹색약 때문에 오히려 더 색다른 색채 조합을 보여주는 `도넛 매드니스`. [사진 제공 = 학고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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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 도넛이 식욕을 자극하지만 먹을 수는 없다. 밀가루로 튀긴 빵이 아니라 도자 작품이다. 조각가 김재용 서울과학기술대 도예학과 조교수(47)가 2008년 금융위기 때부터 공들여 빚어왔다.

고칼로리 도넛은 다이어트 중인 사람뿐만 아니라 그에게도 달콤한 유혹이었다. 서울 학고재갤러리 개인전에서 만난 작가는 "뉴욕에서 살 때 금융위기로 너무 힘들어 도넛 가게를 차릴까 고민했었다. 도넛은 욕심이자 돈이다. 내 꿈을 저버리고 돈을 좇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도넛 조각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도넛은 예술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게 만드는 채찍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달팽이 천사가 도넛 한입을 먹은 후 날개를 잃고 추락하는 조각은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경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달팽이는 욕망을 좇는 현대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도넛을 쏘는 대포 조각은 작가를 주저하게 만드는 현실의 반영이다. 세상은 녹록지 않아 감당하기 힘든 시련으로 예술가의 심신을 '폭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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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도넛 조각을 만들어 인기 작가가 된 그는 코로나19로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고 싶어 이번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 주제 '도넛 피어 DONUT FEAR'에 '두려워하지 말라(Do Not Fear)'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미술은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코로나19로 전시를 미룰까 고민도 많이 했는데,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어 진행하게 됐다. 도넛을 통해 미소를 배달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공공미술 조각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졸업을 앞두고 기가 죽어 있는 제자들에게도 자신 있게 용기를 내서 앞길을 개척하라고 응원하고 싶다."

그의 머릿속은 '어떤 도넛을 만들까'라는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아무리 예뻐도 똑같은 도넛은 안 만든다. 작가는 "사람들 모습이 모두 다르듯 내 도넛도 마찬가지다. 컬렉터가 똑같은 도넛을 주문해도 안 만든다. 얼굴에 메이크업(화장)을 하듯이 정성스럽게 도넛에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선천적인 적녹색약 때문에 흰색 도넛만 제작하다가 2012년부터 화려한 색깔을 입힌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남들과 색을 다르게 봐서 자신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게 차별화가 됐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채들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다채로운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까지 촘촘히 박아서 특별한 빛을 냈다. 그는 "표현에 제한을 없애니 작업이 즐거워졌다. 도넛이 수백, 수천 개 쌓이자 자연스럽게 색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됐다"고 했다.

도넛에는 그의 용기뿐만 아니라 정체성도 담겨 있다. '동양과 서양에서 자랐거든'(2018) 연작에는 유년 시절 살았던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페르시안 카펫 문양, 한국 전통 청화 도자 형식이 어우러져 있다. 청화 안료를 썼지만 중동풍 아라베스크 문양이 눈에 띈다. 한국 전통 십장생 무늬는 도넛 작품이 언제까지 장수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담았다.

작가는 "한국에서 태어난 후 세 살부터 여덟 살까지는 건설업을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서 중동에서 살았다. 미국 유학까지 했으니까 내 안에 세 가지 문화가 혼재돼 있다"고 말했다.

1998년 미국 하트퍼드 아트 스쿨 도자&조각과를 졸업한 그는 2001년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 도자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14년부터 1년간 몬클레어 주립대 조교수로 근무한 후 2015년 서울과학기술대 도예학과 조교수로 돌아왔다. 전시는 4월 26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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