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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코로나에 신음하는 세계…`상상의 역병`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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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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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일상을 인류가 흐느끼며 관통하는 가운데, 인류의 적의와 공포를 투사한 '역병의 상상력'에 근거한 문학작품이 다시 불려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역병의 상상력'을 다룬 소설 특집기사를 최근 게재했다. 고전부터 SF소설까지의 가디언 추천작 가운데 한국어로도 출간된 작품을 새로 추렸다.

SF 작가 팁트리의 '체체파리의 비법'(아작 펴냄)은 한국에 2016년 출간됐다. 줄거리는 이렇다. 적도 상층 대기에 존재하던 병원체가 계절성 변화로 지상에 내려와 대륙을 휩쓴다.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균을 악용한다. 이때 성차(性差)에 따른 계급 문제가 등장하는데 이유는 대표 증상이 '수컷이 암컷을 해친다'는 점이어서다. 진실을 무력하게 만드는 이단 탓에 여성살해(femicide)가 속출한다.

코로나19 시대를 환기하는 팁트리의 문장은 이런 것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 하지만 드러난 사실은 하나도 없어." 실체를 모르며 공포에 떠는 무지(無知)의 자화상처럼 읽힌다. 생식기능을 저하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작중 인물의 해충 박멸 연구는 저 전염병을 환유한다. 소설가 팁트리는 여성으로 화가, 공군 조종사, CIA 정보원으로도 활동했고 세계 최고 권위 네뷸러상을 받았다.

인간의 불분명한 악의가 작동하는 또 다른 소설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오릭스와 크레이크'(민음사 펴냄)다. 환경오염으로 자연이 파괴되고 동식물이 멸종으로 치닫는다. 오늘의 거울 같은 공간에서 인간은 신의 전능(全能)에 도전하며 유전자 조작에 박차를 가하고 이윽고 젊음을 넘어 영생을 허락한다는 절대적 신약을 개발해낸다. 그러나 알약의 부작용은 불멸 대신 사멸을 초래한다.

전염병은 세계에 죽음을 배송하고 인간은 낙엽이 쓸려나가듯 죽어나간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폐허가 된 흔적과 맞닥뜨린 자손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누가 이것을 만들었는가?"란 소설의 문장은 'BC(Before Corona)시대'를 건너 이미 당도한, 우리 눈앞에 펼쳐진 'AC(After Corona)시대'에 가닿는 질문이다. 노벨문학상 후보 애트우드의 대표작으로 작년 10월 출간됐다.

'공포소설 아버지' 러브크래프트의 1927년작 '우주에서 온 색채'(현대문학·황금가지·위즈덤하우스 펴냄)는 원인균의 진앙을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시켜 이해하는 대작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지구에 떨어진 운석에서 비치는 어떤 '색깔'이 치명적 병원균이다. 우리나라에선 개봉 전이지만 배우 니컬러스 케이지가 주연을 맡아 2019년 영화 '컬러 아웃 오브 스페이스'로 스크린에 육화됐다.

운석에서 뿜어져나오는 '괴상한 색채'는 가축, 식물, 인간을 감염시킨다. 저 색채는 '지구에 없던' 색깔이다. 질병의 이유를 미상으로 처리하되 공포에 반응하는 인간 표정만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감정은 공포다. 그리고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다'는 러브크래프트 문장은 미지의 바이러스에 식민화돼버린 우리 인류를 미로에 가둔다.

몰락 서사를 다룬 소설 사이에서, 가디언에 기사를 실은 애덤 로버츠의 진단은 음미할 가치가 있다. 현실과 소설이 완벽히 같지는 않더라도 전염병 소설을 탐독하려는 2020년의 독자 현상을 두고 로버츠는 다음과 같이 썼다. "고통에 관한 한, 인간은 소설의 임의성(arbitrariness) 이상의 것을 원한다. 우리는 그 소설들이 무언가를 의미하기를 바란다(we want 'it' to mean something)."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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