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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기업들 `코로나 버티기`…월급 깎고 단기CP서 긴급자금 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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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들 현금 확보 비상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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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확산으로 수요 절벽과 생산 중단 등 영업에 막대한 차질을 빚고 있는 기업들이 기업어음(CP) 발행에서 급여 삭감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전례 없는 글로벌 비즈니스 올스톱 상황이 지속되면서 주요 대기업들까지 유사시를 대비한 유동성 확보에 총력전을 펴는 양상이다. 하지만 우량기업들까지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에 애를 먹고 있는 분위기다.

현대자동차그룹은 3월 중순께 전 계열사에 현금 유동성 확보 지침이 떨어지면서 계열사들이 각각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추가 현금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31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3월 들어 회사채 시장에서 2000억원어치 기업어음(CP)을 발행했다. 현대로템은 최근 창사 이래 처음으로 24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채권 인수자가 훗날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CB는 기업들이 CP보다 꺼리는 자금 조달카드다. 하지만 최근 회사채 시장이 경색 조짐을 보이며 불가피하게 발행했다. 현대차그룹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노션 같은 다른 계열사도 대출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안다"며 "현대차 계열사의 경영 기조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급격히 유동성 확보에 초점이 맞춰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현대차를 비롯한 완성차 기업은 코로나로 인한 전방위 실적 충격에 대비해 현금 보유액을 불리고 있다. 세계적 컨설팅기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3월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 완성차 기업은 3월 19일 기준 코로나 사태로 총 600억유로(약 80조4246억원)의 순차입금·상각전영업이익(EBITDA) 손실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BCG는 올해 전년 대비 10% 이상 매출 손실을 입는 완성차 기업이 전체의 60%를 넘길 것으로 내다봤다. 한 현대차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는 "그룹 차원의 지침이 전달되기 전부터 현금 확보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왔다"고 말했다.

채권 발행 시장에선 신용등급이 높은 대기업조차 투자자를 확보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다. 단기자금 수급이 꼬이면서 기관투자가들이 회사채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4월 만기를 앞둔 SK, LG 등 다수 대기업 계열사들이 차환용 회사채 조달 시기를 미뤘다. 발행 여부를 확정하지 못한 기업 중에선 만기 1년 미만의 CP로 조달처를 돌린 곳도 있다.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 SK종합화학은 최근 일주일 동안 각각 2750억원, 2000억원, 1300억원어치를 CP 시장에서 확보해 갔다.

다만 이들 CP 발행 기업 중 상당수는 CP 발행이 자금난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정유사들은 원유 수입대금 지불을 위해 CP를 수시로 발행해왔다"고 설명했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주유소 매각대금이 들어오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다 보니 3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자금의 차환을 위해 CP를 발행한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한 자금 경색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통상 전년도 회계결산을 마친 직후인 4월은 한 해 중 회사채가 가장 왕성하게 발행될 때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그렇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회사채 시장의 '4월 위기설'을 조심스럽게 내놓기도 한다. 자금 순환이 막힌 '돈맥경화' 현상이 업종을 불문하고 계속되면 유동성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4월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총 6조5495억원이다. 이는 금융투자협회가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1년 이래 가장 큰 규모로, 올 한 해 만기 예정 규모(50조8713억원)의 약 13%에 달한다.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두산중공업은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최근 1조원 규모의 대출약정을 체결했다. 지난해 말 (주)두산으로부터 두산메카텍을 현물 출자받아 자본을 확충하고, 고정비 절감을 위해 만 45세 이상 직원 600여 명에 대해 명예퇴직을 실시하는 등 자구노력을 이행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자금 시장 경색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대출약정 체결 당시 두산중공업은 회사채는 물론 CP 발행도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산은 관계자는 "3월 16일까지는 할증이 붙기는 했지만 그래도 회사채 발행이 이뤄졌지만 17일부터는 CP나 전자단기사채 발행까지 막혔다"며 "비슷한 신용등급의 다른 대기업들도 상황은 비슷하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들은 임원진의 임금 반납과 전 직원 무급휴직 등으로 버티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전 임원이 4월부터 급여의 최대 50%를 반납하기로 했고, 아시아나항공 임원들도 4월 급여를 60% 반납하고 모든 직원이 최소 15일 이상의 무급휴직에 들어간다. 저비용항공사(LCC)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이스타항공의 경우 유동성 부족으로 임직원의 2월 급여를 40%만 지급한 데 이어 3월에는 아예 급여 지급을 하지 못했다.

이미 재무구조가 악화될 대로 악화된 항공사들은 정부 지원만 바라보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자체 신용으로는 금융사로부터 차입은 물론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한항공이 지난 30일 6228억원 규모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에 성공했지만, 올해 상환 또는 차환해야 하는 차입금 규모가 4조3542억원에 달해 추가 자금 조달이 불가피하다.

[전경운 기자 / 이종혁 기자 / 강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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