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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100만원 기준 묻자 "일상적 소득"···장관들 횡설수설 말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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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하위라는 건 일상적인 소득의 개념입니다.”

중앙일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회의 결과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주요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br〉왼쪽부터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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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소득 하위의 정확한 기준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정부 합동 브리핑에서다. 정부는 이날 “소득 하위 70% 가구에 4인 가족 기준 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제력에 따라 줄을 세우는 기준은 한둘이 아니다. 자연히 구체적인 기준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브리핑을 주재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박 장관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돌아온 답은 ‘일상적인 소득’이라는 애매모호한 말이다. 일반 시민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소득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알기 어렵다.

"월(소득이) 얼마 이하면 받는 건가"라는 직접적인 질문이 이어졌지만, 이날 브리핑에 나선 경제사령탑을 비롯한 5명의 장관 중 아무도 속시원한 답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부처 간 말이 엇갈려 혼란을 부추긴다. 박 장관은 이날 "재산과 소득을 합쳤을 때 받을 사람이 받고 안 받을 사람은 안 받도록 사회적 형평에 맞게 기준을 설정하겠다"고 말했다. 소득뿐 아니라 재산도 고려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기재부는 이말을 하루 만에 뒤집었다. 구윤철 기재부 2차관은 31일 라디오 방송에서 "시간이 많고 넉넉하면 재산, 금융소득, 자동차세를 넣을 수 있지만, 이것(지원금)은 긴급성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재산을 소득 기준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엇박자가 이어지자 기준 결정을 떠안은 복지부는 더 모호한 표현을 써서 상황을 무마했다. “합리성과 신속성 두 가지 원칙을 기준으로 의견을 모으는 중”이라는 것이다. 장관이 모호하니, 그 아래는 더 모호할 수밖에 없다.

9조1000억원에 이르는 지원금을 주겠다고 정부가 던졌는데 구체적인 기준은 없고, 정부 말은 오락가락해 누가 받을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수혜 여부가 궁금한 이들은 답답한 마음에 개인의 소득인정액(소득평가액과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금액을 합한 금액)을 확인할 수 있는 '복지로' 사이트로 몰려갈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먹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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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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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관계자는 “당·정·청 회의 결과 정부 원안에서 급히 바뀌는 바람에 큰 원칙을 발표하는 게 우선이었다”고 해명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국민 70%에 지급하겠다는 것 자체가 변하지는 않았다”며 “혼선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큰 원칙이라고 하기에 ‘소득 하위 70%’라는 기준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월급·집·자동차 등 재산을 구성하는 요소 중 어디까지 포함하느냐에 따라 내 소득의 위치는 크게 달라질 수 있어서다. 또 재산의 가치는 가변적인데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지도 현재로선 명확하지 않다.

예견된 혼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정부는 여당과 논쟁을 벌였지만, 수혜 범위와 기준도 지켜내지 못했다. 이번뿐이 아니다. 세율 조정 여부,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등 최근 불거진 굵직굵직한 정책 논쟁에서 항상 물러선 건 정부였다.

그래서 "정치권이 정책 결정의 키를 쥐며 끌려다니고, 떠안은 숙제를 제대로 해결할 능력도 없는 행정부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관전평이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거를 앞둔 청와대와 여당이 ‘소득 하위 70% 기준’을 급히 던졌고, 행정부는 이를 제대로 포장해 국민에게 설명할 능력이 없다”고 평가했다.

경제정책팀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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