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논설실의 뉴스 읽기] 1년 연기 했지만… 도쿄올림픽 여전한 3大 딜레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코로나로 고장난 올림픽 시계]

①코로나 종식 시기 가늠 어려워… "내년도 불안하다"는 목소리도

②개최 연기로 8조원 추가 부담… 日 "IOC도 분담하라" 요구

③도쿄 7~8월 살인적 무더위… 마라톤은 삿포로서 열어야

조선일보

민학수 논설위원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는 4년 주기로 열리던 올림픽 시계마저 고장 냈다. 올해 7월 24일 개막 예정이었던 2020 도쿄올림픽이 1년 뒤에서 꼭 하루 못 미치는 내년 7월 23일 개막으로 연기됐다. 패럴림픽은 내년 8월 24일부터 열린다. 올림픽 연기 결정을 너무 오래 끈다는 지적을 받았던 일본과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연기를 결정한 지 불과 엿새 만인 지난 30일 새 일정을 확정했다.

◇'코로나 극복 올림픽'은 가능한가?

그런데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연기 결정 직후 도쿄를 중심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현지에선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감염 경로가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아 연일 '도쿄 봉쇄' '비상사태 선언' 같은 시나리오가 쏟아진다. 당초 조직위원회에선 예선 일정 등을 감안하면 내년 개최도 빠듯하다며 2년 연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이와 관련, 아사히신문은 1일 아베 신조 총리가 자신의 임기 내 개최를 위해 1년 연기를 밀어붙였다는 모리 요시로 대회조직위원장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지난 24일 아베 총리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연기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모리 위원장을 관저로 불렀다고 한다. 모리 위원장은 "코로나 사태 종식 시기를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2년 연기가 좋을 것"이란 견해를 내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일본의 기술력으로 백신을 충분히 만들 수 있고, 정치 일정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은 총재의 3연임까지 허용하는데 아베 총리는 내년 9월 말 세 번째 총재 임기가 만료된다. 자민당 당규 개정 없이는 아베 총리의 재임은 내년 9월까지만 가능한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인류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낸 증표로 삼겠다"며 '코로나 극복 올림픽' 기치를 내걸었지만 스스로 위태롭게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일정 조정보다 어려운 비용 분담

바흐 IOC 위원장은 앞으로 예선 등 일정 재조정이 "거대하고 난해한 퍼즐 맞추기"라고 했다. 하지만 더 어려운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최대 7000억엔(약 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추가 비용 분담을 일본 조직위원회가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장과 선수촌, 관계자의 숙박시설을 재계약하는 비용과 인건비 등을 합산한 금액이다. 모리 조직위원장은 "일본이 모두 부담할 수 없다"며 "IOC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IOC는 비용 분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IOC와 개최 도시 간 계약은 불평등조약이라고 할 정도로 IOC에 유리하게 돼 있다'는 일본 조직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쉽지 않은 협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조선일보

이미 일본이 이번 올림픽을 위해 지출한 돈은 3조700억엔(약 35조원)에 이른다고 일본 회계감사원은 밝혔다. 정부 1조600억엔, 도쿄도 1조4100억엔, 대회조직위 6000억엔 등이다. 대부분 올림픽 교통망과 숙박시설 건설 등 인프라에 투입된 돈이다. 5600가구 규모의 선수촌 유지 문제도 난제다. 올림픽을 치른 뒤 선수촌 아파트를 보수해 민간에 분양할 예정이었다. 이미 1차 893가구의 분양도 끝났다. 지난달 시작하려던 2차 분양은 6월 이후로 미뤄놓은 상황이다. 티켓 환불도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도쿄올림픽은 508만장, 패럴림픽은 165만장의 티켓을 이미 판매해 약 900억엔(약 1조원)의 수익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4년 전 리우올림픽이 IOC에서 15억3000만달러의 개최 지원금을 받았던 것에 비해 2억3000만달러가 적은 13억달러의 지원금을 받는다. 일본 조직위원회는 지원금을 늘려주거나 비용을 분담해 달라는 주장이다. 올해 일본이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긴축 재정 올림픽'을 치르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대공황 직후 1932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그리고 2차 대전 직후인 1948년 런던올림픽처럼 최소 비용으로 치르자는 것이다. 1948년 런던올림픽은 새 시설을 짓지 않고 군 시설이나 대학 기숙사를 선수 숙소로 이용하기도 했다.

◇내년에도 무더위와의 싸움이 기다린다

올해 도쿄올림픽은 대회 기간 살인적인 무더위 때문에 마라톤과 경보 종목까지 삿포로에서 분산 개최할 예정이었다.

선수의 건강을 우선해야 한다는 IOC의 강한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이번에 연기를 하면서 개최 시기를 봄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왔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도 "마라톤과 경보를 다시 도쿄에서 열 수 있도록 재조정해보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이런 의견은 이번에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프란체스코 리키 비티 하계올림픽국제연맹연합(ASOIF)은 "국제트라이애슬론(철인 3종)연맹과 승마연맹은 도쿄의 무더위를 우려해 좀 더 이른 시기에 개최하기를 원했지만 인기 프로스포츠 종목과 일정이 겹쳐 성사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올림픽 중계사인 미국의 NBC도 프로농구와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비시즌인 여름을 선호한다. 일본에선 "엄청난 돈을 들여 올림픽을 치르면서도 전혀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다" "내년에도 무더위와 싸우게 됐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IOC 선수위원 유승민 "4년주기로 땀 쏟던 선수들 허탈, 다시 페이스 올리려면 멘털트레이닝 필요"

조선일보

유승민 IOC 선수 위원은 "올림픽을 위해 땀 흘려 온 선수들의 노력이 내년엔 꼭 보답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리우 올림픽 이후 4년째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으로 활동하는 유승민(38) 대한탁구협회장은 코로나 사태로 빚어진 혼돈의 스포츠계 최전선에 있다.

연일 IOC 화상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그는 "경험 많은 분들도 참고할 경험이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며 "어제 전 세계 대표자 200여 명이 참가해 화상회의를 했는데 내년 일정을 빨리 결정한 건 다행이라는 의견들이었다"고 전했다. 예선 일정 조정 등 할 일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내년 8월 16일부터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열릴 예정이던 세계육상선수권은 2022년으로 연기하고, 내년 7월 16일부터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기로 한 세계 수영선수권은 내년 다른 기간으로 옮겨 치르기로 했다.

그는 "IOC는 이미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선수들의 본선 진출은 원칙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라고 전했다. 현재 33종목의 예선 통과 선수는 출전 예상 선수 1만1000명의 57%에 이른다. 특히 '23세 이하 연령제한' 규정 때문에 축구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인 1997년생들이 내년 본선무대를 밟을 수 있을지 관심이다. IOC는 내년 올림픽이 2021년 대회가 아닌 2020년 대회이므로 이에 준해 올해 만 23세 선수의 올림픽 출전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선수 연령 제한에 관한 최종 결정은 FIFA(국제축구연맹)가 내리게 된다. 그는 2021년에 열리는 올림픽의 명칭을 '2020 도쿄올림픽'으로 고수하는 배경에는 "개최지의 희망과 환경 보호 측면에서 자원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IOC의 의지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전했다.

유 위원은 열여덟이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시작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4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았던 올림피언이다. 특히 2004년 아테네에서 중국의 왕하오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것은 한국 스포츠의 명장면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그는 "선수촌에서 두 달 가까이 외출·외박도 하지 못하고 훈련해온 선수들은 허탈한 심정일 것"이라며 "4년 주기로 땀을 쏟던 선수들이 다시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데는 멘털 트레이닝 등 과학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공동 조직위원장이기도 하다. "두 차례나 일정이 연기돼 대회장과 숙박 시설 유지 등 난제가 많지만 올해 꼭 열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학수 논설위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