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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 (수)

‘지연된 정의’ 4·3특별법, 정치권의 직무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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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주년 ‘제주4·3 추념식’

경향신문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2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분향을 한 뒤 묵념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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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이 발생한 지 3일로 72년이 지났지만 피해자에 대한 배상·보상과 법적인 명예회복은 미완의 과제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4·3특별법 개정안)은 3년째 국회 상임위 문턱을 못 넘고 있다. 국회의 직무유기 속에 ‘지연된 정의’조차 기약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개정안은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상·보상,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수형인에 대한 불법 군사재판 무효화,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치 등 내용을 담고 있다. 진상규명과 희생자·유족의 역사적 명예회복에 초점을 맞춘 현행 특별법에 법적인 명예회복과 피해자 권리구제를 위한 근거조항을 추가해 보완한 것이다.

3년째 상임위 문턱 못 넘어

“특별법 처리 더뎌 무거운 마음”

문 대통령, 국회에 관심 당부


미래한국당 7번 정경희 후보

4·3은 좌익 세력의 폭동 규정

배상·보상 현실적 한계 예고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제주을)이 2017년 12월 대표 발의했다. 이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개정안을 두 차례 심의했지만 법 개정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여당과 ‘수십년 지난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인해 배상·보상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미래통합당이 맞서면서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 상태다.

4·3사건에 대한 통합당의 인식 자체가 근본적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정경희 영산대 교수를 4·15 총선 비례대표 후보 7번에 공천했다. 정 교수는 저서 <대한민국 건국 이야기 1948>에 “5·10 총선거를 저지하기 위해 좌익은 폭동·방화·살인 등을 서슴지 않았다. 제주 4·3사건은 그 대표적 사례였다”고 썼다. 4·3사건을 ‘좌익에 의한 폭동·방화·살인’으로 규정한 셈이다.

반면 4·3특별법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정 교수를 두고 “심각하게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제주 4·3을 왜곡했다”(2일 제주지역 시민단체 공동성명)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가의 표준적 인식에도 한참 미달하는, 극우냉전적 시각을 가진 인사를 비례대표 당선권에 배치한 것 자체가 4·3사건에 대한 통합당 주류의 ‘기본 정서’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더디게 흐르는 국회의 시간과 달리 생존해 있는 4·3사건 피해자들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4·3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며 지난해 10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8명 중 7명이 구순을 넘긴 고령자다. 그중 한 명은 지난 2월 생을 마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2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추념사에서 “진실의 바탕 위에서 4·3 피해자와 유족의 아픔을 보듬고 삶과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국가의 책무”라며 “부당하게 희생당한 국민에 대한 구제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본질적 문제”라고 말했다. 또 “4·3의 완전한 해결의 기반이 되는 배상과 보상 문제를 포함한 4·3특별법 개정이 여전히 국회에 머물러 있다”며 “더딘 발걸음에 대통령으로서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추념식에서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20대 국회가 완료되기 전에 4·3특별법이 개정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우리 당의 제주지역 1번 공약이 4·3특별법 개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20대 국회 중 처리 여부에 대해선 “선거가 끝나봐야 한다. 선거 이후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했다.

정제혁 기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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