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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돌밥돌밥돌밥'에 내가 돌게 생겼는데… 아이는 "엄마 회사 안가니 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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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코로나 시대 재택 육아기

조선일보

일러스트=안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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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돌밥돌밥돌밥'으로 끝난다. 이 말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아이가 있는 부모일 가능성이 크다.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이라는 코로나 시대의 신조어. 네 살인 아이의 어린이집이 2월 21일부터 40여 일째 장기 휴원 중이다. 맞벌이하는 딸과 사위를 대신해, 한 달 넘게 부산에 데려가 손자를 보던 친정엄마의 허리가 고장 났다. 회사에 5일간 돌봄 목적의 연차 유급휴가를 냈다. 물론 어린이집에서 제공하는 긴급 보육을 이용할 수도 있다.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은 "언제든 주저 말고 보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긴급보육 이용률은 지난 2월 27일 10.0%에서 지난달 16일 23.2%, 30일 31.5%로 한 달여 사이에 약 3배로 높아졌다.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생활한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염려가 끝까지 발목을 잡았다. 어린이집은 통제가 어려운 만 5세 미만 영유아가 한 장소에 모인 시설. 지난 2일 0시 기준 10세 미만 누적 확진자 수는 119명으로 1.2%를 차지한다. 지난달 20일부터 일주일간의 돌밥 생활을 '아무튼, 주말'에 보고한다.

1.5일에 한 번꼴로 비대면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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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오전 간식, 점심, 오후 간식을 먹고 왔다. 부모 몫은 고작해야 저녁 한 끼. 가끔은 이마저도 외식으로 해결하던 날이 많았다. 재택 육아는 매 끼니를 차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아침을 준비해 먹이고 뒷정리를 하면 점심이 온다. 점심 뒤에는 저녁이 있다. 하루 세끼 밥만 하다 보면, 성장기 어린이의 영양에 대한 죄책감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얼마나 자주 간편식으로 대체할 것이냐'는 고민이 찾아오는 것이다. 기자의 돌파구는 소고기구이. 다른 반찬 없이 소고기만 구운 채 '소고기니 다른 반찬 없어도 한 끼 영양이 충분하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데우거나, 굽기만 하면 되는 밀키트 주문도 많아졌다. 장을 보러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매일 아침 문앞에 택배 상자가 탑처럼 쌓였다. 비대면 배송으로 주문한 음식 재료들이다. 3월 20일 3만1720원, 3월 21일 4만8571원…. 영수증을 보니 1.5일에 한 번꼴로 주문했다. 아침에 팬케이크와 계란 프라이로 계란 2알, 점심에 계란찜으로 3알을 쓴다. 계란 한 판이 일주일이면 사라진다. 딸기 500g, 우유 500mL도 하루면 없어진다. 일주일간 사용한 음식 재료비는 총 17만8337원. 물론 외동에 아직 나이가 어려, 더 큰 형들(?)을 키우는 집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일 것. 이는 통계로도 증명된다. 앱·리테일 분석 업체 와이즈리테일에 따르면 새벽 배송으로 유명한 마켓컬리는 2월 결제 금액이 전월(432억원) 대비 40% 늘어난 604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아시스마켓도 전월 대비 2월 결제액이 46% 증가했다. 간편 조리 식품 매출도 급증했다. 소셜커머스 위메프에서 1월 28일부터 2월 27일까지 컵밥은 195%, 즉석조리 식품은 178%, 삼계탕은 321% 더 많이 팔렸다.

어린이집 퇴소, 할까 말까

'어린이집 퇴소할까요. 남편이 자영업자인데 월세도 못 내게 생겼어요. 10만원의 양육수당이라도 간절합니다.'

최근 들어 맘카페에 자주 올라오는 고민이다. 현재 어린이집은 무상 보육. 정부가 어린이집 보육료를 지원해, 부모는 별도로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고 가정에서 양육하는 경우, 만 86개월 미만 미취학 아동에 한해 10만~20만원씩의 양육수당을 준다.

코로나로 인해 어린이집이 장기 휴원에 들어가면서 이 체계에 문제가 생겼다. 어린이집 등록은 했지만, 코로나로 부모가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가정에서 양육하는데 왜 양육수당을 못 받느냐'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맘카페 등에 어린이집을 퇴소하고 양육수당으로 전환했다는 글이 점점 많아지는 이유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이후 3884명(지난달 26일 기준)이 어린이집에서 퇴소하거나 등록 취소했다. 이를 의식한 듯 정부는 지난 1일부터 만 7세 미만의 아동수당 대상자에게 돌봄 쿠폰 40만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일부 어린이집은 밑반찬을 만들어 아이 집 문 앞에 걸어놓거나, 간식이나 마스크 등을 택배로 보내는 경우도 생겼다. 코로나로 새로 등록하겠다는 아이가 없는 상황에서, 기존의 아이가 퇴소하면 어린이집도 경영에 큰 타격을 입는다.

40개월인 우리 아이도 어린이집을 퇴소한다면, 양육수당으로 10만원을 받을 수 있다. 평소 아이의 주 양육자인 친정엄마, 남편에게 아이의 퇴소에 대해 물었다. 친정엄마가 되물었다. "그렇게 애들이 다 퇴소하고 어린이집이 문 닫으면, 다음에 코로나 끝나고 ○○이는 무슨 어린이집 가니?"

서울시민간어린이집연합회는 지난달 18일 "가정 양육으로의 전환, 입학 취소 및 보류로 인한 이용 아동 감소, 교직원 정상 배치로 인한 인건비 지급의 어려움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별도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당장 정상적인 급여 지급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오후 4시, 수요일이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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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엔 아이가 낮잠을 자고 일어난 오후 4시, 일주일을 놓고 봤을 땐 수요일이 고비였다. 아이는 힘이 넘쳐나는데, 나는 세수도 못 하고 머리도 못 감은 채 육아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월요일이 시작된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아직 수요일. 아이는 묻는다. "코로나 바위러스 있어서 엄마 회사 안 가는 거지?" "응." "나, 코로나 바위러스로 엄마 회사 안 가니까 조아!"

아이가 태어나고서 세운 '미디어 노출 금지'라는 원칙을 깼다. 그동안 "우리 집 TV는 고장 나서 볼 수 없다"고 말해왔는데, 낮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에게 "엄마가 TV를 고쳤다"고 했다.

주 초반에는 아예 아이의 외출을 금지했지만, 에너지 넘치는 40개월 아들을 집 안에서만 놀게 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장갑 끼고, 마스크 쓰게 한 다음 밖으로 데리고 나가며 주의 사항을 말했다. "절대 사람 많은 데는 가면 안 돼. 엘리베이터에서 아무것도 만지지 마. 사람들이랑도 얘기하면 안 돼."

아이가 자신의 자전거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아파트 주민이 아이 자전거를 보고 "멋있다"며 칭찬했다. 나도 모르게 아이를 엘리베이터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혹 침방울이 아이에게 튈까 걱정한 것이다. 마스크를 낀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왜 밀어? 나 말하면 앙대?"

이제 남은 연차 휴가는 5일

지난달 28일 아이는 다시 부산 외가로 내려갔다. 고용노동부가 1일 발표한 조사 결과, 13세 미만 자녀를 둔 직장인 42.6%가 조부모나 친척에게 자녀 돌봄을 부탁했다. 36.4%는 직장인 부모가 직접 돌봤고, 14.6%는 긴급 돌봄을 택했다. 자신이 직접 돌본다고 답한 경우 연차 유급휴가(25.8%), 재택근무 등 유연 근무제(25.3%), 가족 돌봄 휴가(23.6%)를 썼다.

3일 뒤, 전국 어린이집의 무기한 휴원이 결정됐다. 정부는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계속해야 아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고 했다. 연차 휴가가 얼마 남았는지 가만히 따져봤다. 여름방학 등을 고려해 남긴 5일.

어린이집 휴원과 돌봄 공백을 걱정하는 기사에는 항상 이런 댓글이 달린다. '자기 애는 자기가 키워야지. 키울 자신이 없으면 낳지를 말든가.' 이는 결국 우리만의 고민인 걸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끝나고 우리 사회에는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게 될지 생각해 본다. 혹 어린이집, 일하는 엄마, 아이를 낳겠다는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닐는지.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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