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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책의 향기]AI, 인간의 일을 어디까지 빼앗을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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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기술 빅뱅이 뒤바꿀 일의 표준과 기회/대니얼 서스킨드 지음·김정아 옮김/388쪽·1만8000원·와이즈베리

동아일보

“우리는 이상주의를 현실주의로 누그러뜨려야 한다.”

5년 전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전문직의 미래’라는 저서에서 기술 혁신이 20세기 내내 굳건했던 전문직의 종말을 부를 것이라 예측했던 저자. 그가 이번 책에서는 기술 발전이 경제적 파이를 키워 인간 노동의 새로운 수요, 즉 새 일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생각은 이상주의에 불과하다고 역설한다. 무도가(武道家)가 ‘도장(道場) 깨기’ 하듯 기술 발전과 노동 수요 발생의 연관성을 낙관한 경제학설을 하나씩 논파하면서.

미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10년까지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네 배 넘게 늘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은행 창구 직원은 20% 증가했다. 계좌에 돈을 넣고 빼는 단순 업무에서 벗어나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자 고객이 늘었고, 기술 혁신이 경제를 끌어올려 소득이 늘어나자 은행을 찾는 수요가 증가했으며, 더 다양한 금융상품을 팔게 된 결과다.

책은 이런 과정을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해로운 힘과 인간을 보완하는 유익한 힘의 싸움에서 언제나 후자가 이겼다. 인간의 노동을 찾는 수요가 충분히 컸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래 기술이 인간을 보완하던 힘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책은 말한다. 당초 ‘틀에 박힌 업무’만 대신하리라던 기술 발전은 인간만의 것으로 여겼던 공감 판단 창의성의 영역까지 넘어왔다. 그것도 인간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저자는 기술이 인간의 업무를 끊임없이 잠식해 절대적으로 일이 줄어드는 세상이 수십 년 내에 오리라 장담한다. 그 세상은 지독한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영향력까지 키운 ‘기술 대기업’, 찾기 힘든 삶의 의미로 구성된다. 저자는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조건적 기본소득과 삶의 의미를 만드는 ‘큰 정부’를 제시한다.

결론에 이르기까지 탄탄하고 무엇보다 현실적이던 논지가 정부에 대한 ‘무한 신뢰’로 귀결되는 것은 아쉽다.

저자는 정부가 살아야 하는 의미까지 제공하는 유토피아와 정부가 인간의 삶을 통제하는 디스토피아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것일까.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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