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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아무튼, 주말] 잉꼬 부부라면서 그들은 왜 각방을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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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산업 3조원 시대

조선일보

‘부부는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는 불문율이 숙면에 대한 갈망으로 깨지고 있다. ‘각방 예찬’을 쓴 장 클로드 카우프만은 “더 잘 사랑하려면 떨어져서 자야 한다. 같이 자는 한 침대는 사랑을 죽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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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이모(65)씨는 남편과 각방을 쓴 지 10년이 넘었다. 부부가 싸웠거나 불화가 있어서가 아니다. 남편은 술을 마시면 잘 때 코를 골았기 때문에 음주 후에는 거실 소파에서 잤다. 10여년 전 이사를 하면서 아예 두 사람의 침실을 따로 만들었다. 3년 전부터 남편이 술을 끊어서 코를 거의 골지 않지만, 이씨는 남편과 방을 다시 합칠 생각이 없다. “예전부터 조그만 기척에도 깰 정도로 예민했는데 각방을 쓴 다음에는 매일 숙면을 하는 기분이다. 남편도 혼자 자는 게 더 익숙해졌다고 했다”고 했다.

2~3년 전부터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가 뜨기 시작하면서 '꿀잠'을 소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수면 보조 상품과 서비스 시장이 커지고 있다. 슬리포노믹스는 '수면'(sleep)과 '경제학'(economics)의 합성어로, '수면경제'를 뜻한다. 국내 수면 산업 규모는 지난 2012년 5000억원에서 지난해 3조원을 넘어서면서 7년 만에 6배나 성장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수면 관련 환자 수는 2013년 65만5695명에서 2018년 91만4049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고, 의료비 또한 2013년 529억원에서 2018년 1102억원으로 2배 넘게 늘었다. 더 많이, 더 깊이 자기 위해서라면, 한국인은 이제 부부간 각방도 불사한다.

수면업계에선 1인당 GDP(국내총생산) 1만달러가 넘으면 물이, 2만달러가 넘으면 공기가 팔리고, 3만달러가 넘어야 잠이 팔린다는 속설이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레 다른 기본 욕구인 수면욕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는 국내 슬리포노믹스의 시작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보건복지부가 수면 장애를 알아낼 수 있는 수면다원검사를 건강보험에 적용하기로 한 2018년을 슬리포노믹스 원년이랄 수 있는데, 1인당 GDP가 3만달러를 처음 넘긴 해였다.

한국인의 수면은 양과 질, 두 가지 면에서 모두 기대에 못 미치는 것도 문제다. 2016년 OECD에 따르면 한국인의 수면 시간은 7시간 41분. OECD 국가 평균 수면 시간인 8시간 22분보다 41분 정도 짧다. 직장인의 경우는 이보다 2시간 16분이 더 짧은 6시간 6분이다. 지난달 13일 세계 수면의 날을 맞아 필립스가 한국인 1000명에게 설문 조사를 한 결과, 현재의 수면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한국인은 40%에 불과했다. 세계 평균은 49%였다. 특히 코로나 사태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숙면에 대한 절실함이 더 강해질 전망이다. 수면산업협회의 장준기 부회장은 "그동안 국내에서 수면 산업과 IT가 결합한 스타트업이 많이 생겨났는데 그 성과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나올 것이다. 최신 추세는 잠자는 사람의 움직임과 수면 습관, 침실 안 온도, 습도, 빛을 분석해 최적의 수면 환경을 제공해주는 서비스다"라고 말했다.

이씨 부부처럼 각방을 쓰면 꿀잠을 잘 수 있을까? 서울스페셜수면의원의 한진규 원장에 따르면 지난 2~3년간 수면 습관 때문에 따로 자기 시작한 중장년 부부가 늘어나는 추세다. 그는 "할아버지가 자다가 팔을 심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할머니가 얼굴을 다친 경우도 있었고, 코를 고는 소리의 크기가 지하철이 플랫폼에 들어올 때 나는 소리 크기와 비슷한 사람도 있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침실에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한 원장은 부부 각방을 추천하지 않았다.

“수면장애가 있는 사람은 대부분 나이가 들면서 심혈관계나 신경계에 문제가 생깁니다. 자다가 숨이 멈출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급사(急死)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방에 누군가 있는 게 좋죠. 그래서 저는 방에 싱글 침대 두 개를 따로 두고 자길 권유합니다. 코 고는 건 어떡하느냐고요? 배우자의 수면에 방해될 정도라면 부부가 따로 잔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시급한 질병이라고 봐야 합니다.”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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