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1 (일)

[아무튼, 주말] 코로나 시대의 고백… “집아 미안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코로나가 부른 ‘집콕 시대’

기자 6인이 고백하는 ‘나와 집’

너와 함께 머무는 시간이 이토록 길어지다니. 얼마 전만 해도 아침저녁 잠시 등대고 있던 게 전부 아니었던가. 나를 품기엔 너의 품이 턱없이 작다고 수시로 원망했다. 허름한 너의 몰골이 싫어 너로부터 도망칠 생각부터 했다. 집이여 미안했다, 이제야 네가 보이는구나. 홀로 고독했을 너의 낮, 내 무심함이 구석구석 남긴 너의 먼지….

코로나 시대, 집이 우리 삶의 무게중심이 됐다. 재택근무하는 사무실, 온라인 수업이 펼쳐지는 교실, 극장을 갈 수 없는 관객의 영화관, 문 닫은 피트니스를 대신할 체육관, 그리고 무엇보다 바이러스 외침(外侵)을 막아낼 보루. 돈의 논리, 정량적 관점에서 바라봤던 집의 가치를 새롭게 볼 기회다.

사람 만나는 게 주 업무인 기자들도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해 재택근무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바깥세상 관찰자에서 집안 관찰자가 된 이들의 눈엔 어떤 것이 포착됐을까. '아무튼, 주말'을 만드는 기자 6명이 '직주(職住)일체형' 재택근무에 동참하며 느낀 집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맞벌이 남편, 집으로 들어간 워킹맘, 밀레니얼 원룸족, 부모에게 얹혀사는 캥거루족 등 각자 처한 위치에서 새롭게 발견한 '나와 집' 이야기다.

'아무튼, 주말'팀

조선일보

일러스트= 안병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집구석 수퍼히어로, 비누의 재발견

귀가하면 욕실로 직행한다. 비누부터 만진다. 촉감은 둥글고 미끌미끌하다. 물에 적셔 문지르면 곧 거품이 일어난다. 질병관리본부 지침대로 손 구석구석을 30초쯤 씻는다. 비누가 불안과 공포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이 세정제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무엇보다 손을 훨씬 더 자주 씻는다. 직장에서는 화장실, 집에서는 욕실에 더 빈번히 들락거린다. 하루에 손을 10번 씻으면 5분, 20번이면 10분이 걸린다. 샤워까지 합치면 날마다 15분쯤 비누가 내 손에 붙어 있다시피 한다. 코로나 사태가 만든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다.

며칠 전에는 상점에 갔다가 위생용품 코너에서 비누를 재발견했다. 종이 갑에 담긴 이 물건을 자세히 관찰하다 올 초까지는 보지 못한 글자에 눈길이 사로잡혔다. '항균 기능 강화.' 매운 고추로 이름난 충남 청양에서 만든 상품이었다. 무게가 100g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욕실용은 아니지만 딱풀처럼 생긴 '휴대용 비누'도 날렵하면서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이 산양 기름과 나무의 재를 끓여서 비누를 처음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비누는 19세기 이후 대중화돼 인류의 수명을 20년 늘린 발명품이다. 한동안 존재감을 잃었던 이 물건은 전염병이 창궐하자 다시 영웅으로 등장했다. 비누는 손 소독제와 달리 향기롭고 바이러스를 더 확실하게 없애준다. 욕실은 구석진 자리에 있고 그곳에 늘 비누가 있다. 집구석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뽀득뽀득 손을 씻으며 정신위생까지 덤으로 얻는다. 촛불이 어둠을 밀어내듯이 비누는 불안을 몰아낸다. 영웅은 아무 말이 없다. 미끌미끌한 침묵, 그 듬직함이 고맙다. 박돈규 기자

삼시 세 끼 전쟁이 시작됐다, 싱크대

그곳은 전쟁터. 물 마를 새, 잠잠할 틈 없다. 중학교 입학이 미뤄져 졸지에 초졸 무직자가 된 아이, 탄력적 재택근무에 들어간 부모가 삼시 세 끼 쏟아내는 잔해는 생각보다 많다. 학교 급식과 외식이 베풀어준 자비가 이제야 보인다. 그곳은 또한 풀가동 밥 공장. 비대면 배송으로 현관문 앞에 쌓인 식료품 택배는 상자 옷을 벗고 개수대에서 환승 대기한다. 잠시 숨을 고르고 냉장고, 가스레인지, 에어 프라이어, 각자의 행선지로 이동한다.

집에서 코로나 직격탄이 떨어진 공간은 싱크대다. 비우기 무섭게 설거지 거리가 쌓이고, 처리하기 무섭게 회사 일이 밀려온다. 반복되는 분노의 수세미질과 헹굼질. 이것은 전쟁이다.

그러고 보니 싱크대는 진짜 전쟁의 산물 아니던가. 붙박이 싱크대, 수납장, 개수대가 붙은 오늘날 일체형 부엌의 효시는 1926년 오스트리아 여성 건축가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가 설계한 '프랑크푸르트 부엌'이다. 1차 대전 후 주택난 해소용으로 독일에서 등장한 대규모 공공주택의 부엌 시스템이었다. 이 싱크대 후손이 전 세계 주방으로 뻗어나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전후(戰後) 복구 유산은 94년이 흐른 2020년 각 가정에서 코로나와 전쟁을 치르는 격전지가 됐다. 언제쯤이면 이 전쟁을 끝내고 삼시 세 끼 집밥 도돌이표를 멈출 수 있을까, 급식과 외식의 단비를 맛볼 수 있을까. 싱크(sink)대 앞에서 싱크(think)해 본다. 김미리 기자

문을 열었다, 부모님의 ‘낮’이 보였다

“과일 갖다 줄까? 아님 주스 마실래?”

방문을 열어 고개만 들이민 어머니가 물어본다. “됐어요, 나중에 제가 알아서 챙겨 먹을게요”라고 답을 하면 어머니가 고개를 더 길게 빼서 방을 둘러보고 방문을 닫고 나간다.

나에겐 어릴 때부터 방문이 열려 있는 꼴을 못 보고 언제나 닫아놔야 하는 버릇이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 내 방문은 열린 적이 별로 없다. 아침에 출근하고 밤늦게 집에 들어갔다. 주말에 외출하지 않을 때는 방 안에서 밥을 먹고, 컴퓨터로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화장실도 방 안에 있어서 방문을 열고 나갈 일이 없었다. 부모님이 방문을 열고 들어올 일이 없긴 매한가지였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내 방문은 자주 열렸다. 오랜만에 집에 오래 머무는 자식이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는지, 부모님은 가끔 방문을 열고 들어와 간식을 주거나 동네, 친구 이야기를 하고 나갔다. 이런 근무 환경에 익숙하지 않아서 몇 번 짜증을 냈고, 사춘기를 맞은 소녀처럼 방문을 걸어 잠근 적도 있다.

재택근무를 한 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오후, 방문을 벌컥 열어보았다. 어머니는 소파를 뒹굴며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고, 아버지는 물구나무서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대체 그동안 방문 밖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거지? 나는 부모님이 신기하고 그들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이제 방문을 열면 다 알게 될 것이다. 변희원 기자

조선일보

①부모님과 함께 사는 ‘캥거루족’ 변희원 기자에겐 문이 새롭게 다가왔다. ②원룸족 곽창렬 기자는 평일 낮 원룸에 쏟아진 빛을 마주했다. ③맞벌이 워킹맘 남정미 기자 가족에겐 식탁이 집의 척추가 됐다. ④옆방, 윗방 소음으로 둘러싸인 조유진 기자의 원룸. 구세주는 스피커였다. ⑤박돈규 기자의 눈엔 집의 구석, 욕실에 있는 비누가 들어왔다. 코로나 시대의 수퍼히어로다. ⑥전쟁터가 된 김미리 기자의 싱크대. 분노의 설거지와 헹굼질이 반복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내가 없을 때 너는 나를 찾았다, 원룸의 빛

내가 부재중일 때 네가 오는지 몰랐다. 네가 부재중일 때 나만 너를 찾는 줄 알았다. 일방통행 아닌, 엇박자 사랑이었을 뿐. 재택근무하며 평일 대낮에 찾아온 너를 드디어 만났다. 나의 작은 원룸에 쏟아진 빛이었다.

빛 잘 드는 원룸에 둥지 튼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1년 전 근처에 들어선 고층 원룸 빌딩이 어둠을 몰고 왔다. 이른 아침부터 들어오는 눈부신 빛이 싫어 설치했던 암막 커튼은 무용지물이 됐다. 밖이 가려지면서 집에 들어오는 빛의 3분의 2 정도가 사라져 버렸다.

재택근무 때문에 종일 집에 있다 보니 빛의 묘한 흐름을 추적할 수 있었다. 오전 11시쯤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비로소 집에 활기가 돌았다. 오후 2시가 절정이었다. 늘 밖에 있는 시간, 태양은 몰래 왔다가 자취를 감췄던 것이다.

아이러니는 절정에 이른 순간 하루를 슬슬 마감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해가 고층 건물 뒤로 숨으며 빛의 양이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활기찬 세상 모습이 컴컴한 원룸에선 잘 체감되지 않는다. 하루가 훨씬 일찍 끝나는 느낌이다. 코로나는 빛을 가득 안고 사는 일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게 한다.

무뎌진 시간 감각은 밤의 휴식 시간에도 이어진다. 스포츠채널엔 코로나로 올스톱된 스포츠 중계 대신 옛 프로야구가 무한 반복된다. 라이브의 세상이, 라이브의 빛이 그립다. 곽창렬 기자

식구(食口)를 찾은 식탁

남편이 식탁을 없애고 작은 테이블을 들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부엌과 거실의 경계에 있는 식탁을 치우고, 거실 공간을 더 넓게 쓰는 게 효율적이지 않겠느냐고 했다. 내심 동조했다. 같은 일을 하는 남편도 나도, 식탁에 앉아 밥 먹을 일이 잘 없다. 네 살 된 아이는 친정엄마와 오후 6시 반쯤 유아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는다. 친정엄마는 그 옆에서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모양새로 저녁을 때운다. 저녁 드셨느냐는 물음엔 언제나 같은 답이 돌아온다. “○○이 먹을 때 같이 먹었으니 신경 쓰지 마.”

코로나 바이러스로 아이 어린이집 휴원이 장기화하면서, 남편과 나 각각 5일씩 휴가를 냈다. 40여일간의 독박육아로 지친 친정엄마를 쉬게 해 드리기 위함이었다. 어린이집 휴원자와 재택근무자, 돌봄 휴가자가 모인 곳은 식탁 앞. 우리는 버리려던 식탁에 마주 앉아 아침, 점심, 저녁을 같이 먹었다. 아이는 자신이 모르는 주제라도 열심히 떠들고, 밥도 더 많이 먹었다. 식탁에 앉으니 ‘식구(食口)’란 말을 절감했다. 한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들. 코로나로 집의 변방인 줄 알았던 식탁이 갑자기 집의 중심, 새로운 척추가 됐다.

식탁 위 반찬은 친정엄마 표. 엄마는 떠나기 직전까지 감자를 볶고, 돈가스를 한 덩이씩 소분해 냉동실에 넣어두고, 미역국을 한 솥 끓여 놓으셨다. 때로 식탁은, 먼 곳의 식구와 나까지 연결한다. 남정미 기자

과부하 걸린 원룸의 구원자, 스피커

오늘 해야 할 일은 끝났다. 침대에 엎어진다. “삐걱.” “팅, 탱.” 침대의 스프링 소리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휴대폰에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했다. “누가 뭐라 해도 난 나야. 난 그냥 내가 되고 싶어. I wanna be me, me, me.” 쿵쿵거리는 걸 그룹 노래가 흐른다. 잔잔한 인디음악만 흘러나오던 기계지만 요즘은 2000년 이후 태어난 아이돌 가수의 노래만 잔뜩이다. 수명을 다해 지지직거리는 전등, 옆방에서 물을 쓰면 꿀렁거리는 싱크대도 거슬린다. 스피커 음량을 더 올렸다.

“가운데 방이라 난방 안 해도 따뜻해. 대학가인데도 조용하고.” 여섯 평 남짓한 원룸에 만족하며 산 지 1년이 넘었다. 그 애정에 배신당한 건 최근. 코로나로 사람들이 집에 갇힌 뒤다. 한 층에 네 집씩 다닥다닥 붙어 있는 4층 건물에 사람이 꽉 차 있다. 원룸의 ‘고요’는 이웃의 침묵으로 유지되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사는 202호는 201호와 203호에 끼인 방. 그들의 사생활이 소리에 실려 벽을 뚫고 왔다. 201호 세입자는 코로나를 피해 ‘집콕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이었다. 까르르 웃다가 금세 투닥거렸다. 203호 남자는 코인 노래방을 사랑했던 게 틀림없다. 복식호흡으로 노래를 연습했다. ‘멜론 탑 100’에 있는 이별 발라드를 잘 불렀다. 문을 두드릴까 하다가 ‘그들도 내 방 소음에 시달리고 있겠지’ 싶어 말았다.

한번 신경이 곤두서자 내 방에서 나는 소리까지 듣기 싫어졌다. 이중창부터 화장실의 작은 창까지 내 방의 모든 구멍을 막았다. 얇은 벽과 문은 무력했다. 마지막으로 내 귓구멍을 아이돌 가수 목소리로 막았다. 본디 원룸은 침실 겸 거실 겸 부엌으로 태어났다. 코로나 시대엔 사무실, 데이트 장소, 노래방, 피시방 역할까지 한다. 과부하 걸린 원룸의 소음 차단막, 나의 스피커. 조유진 기자

[박돈규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