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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文 대통령님, 좁은 세상에도 중요한 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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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왜 정권이…' 펴낸 신재민 전 사무관

조선일보

지난달 말 서울 을지로에서 만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2018년 말 유튜브 방송을 만든 그는 “나는 폭로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행정부 문제에 대해 발제를 하고 싶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책을 내려 했지만 만들겠다는 곳이 없어 출판사 10여 군데를 접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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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이 빠졌다고 했다. 80㎏ 가까웠던 폭로 당시의 두툼했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신재민(34) 전(前) 기획재정부 사무관. 2018년 말, 그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세상을 흔들었다. 문재인 정부가 민간 기업인 KT&G 사장 인사에 개입했고, 청와대가 불필요한 적자 국채(국가의 세입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발행하는 국채) 발행을 강요했다는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그때는 화가 난 듯 보였다.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화면을 쏘아봤고, 말은 빠르고 공격적이었다. 방송을 마친 후,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몇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고 정신병원에 머물면서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관심권에서 차츰 멀어졌다.

당사자인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을 지난달 말 만났다. 그는 인터뷰 장소에 파마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나타났다. 갸름한 얼굴이었고, 키는 160㎝ 중반 정도에 날렵한 모습이었다.

"세상에 폭로가 아니라, 발제하기 위해 나왔다"

조선일보

작년 1월 2일 신재민 전 사무관이 서울 강남구의 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당시 그는 “순수하게 이 나라 행정조직이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행동”이라고 했다.


신 전 사무관은 사건 발생 1년 3개월이 지나고서야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달 모교인 고려대 대학원에 진학해, 행정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대학원 입학 직전 '왜 정권이 바뀌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이 유튜브 방송에서 하지 못한 얘기를 절제해서 담았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살이 상당히 빠졌다.

"원래 지금 내 모습이 정상이다. 유튜브 방송 당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78㎏까지 쪘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정신을 가다듬자 정상으로 돌아왔다."

―책 제목이 '왜 정권이 바뀌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가'다.

"청와대가 내각을 하인처럼 부리고, 국회를 우회하며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 지금 공무원들은 청와대와 부처 장관, 두 군데서 지시를 받는다. 어떻게 명령이 두 곳에서 내려오는데 효율적일 수가 있겠나. 이 정부 들어와서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근무하는 중령이 국방장관을 건너뛰고 청와대에 직보한 것을 보지 않았나. 실제로 공무원이 돼 일을 해보니까 나도 그렇고 다른 친구들도 똑같이 이건 아니라고 느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광화문 대통령'을 제대로 하면 어느 정도 해결될 문제다. 대통령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일하면, 총리와 부총리의 보좌를 받게 되고, 내각에 힘이 실린다. 그런데 공약은 폐기됐다. 청와대 정부를 또 하겠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해 안타까웠다."

―박근혜 정부 때는 가만히 있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폭로했다는 비판이 있다.

"국정 농단으로 내 직장이 압수 수색을 받았다. 내 연수원 동기가 법정에 불려갔고, 아는 선배가 국회에 섰다. 그러지 않기로 하고 당선된 정권이다. 그런데도 청와대 각종 인사 개입 등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실제 내 문제 제기 이후에도 환경부 블랙리스트가 밝혀지기도 했다. 문제를 봤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직자로서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이제 와서 책을 냈나.

"유튜브 방송을 하기 직전인 2018년 11월에 책을 내고 싶었다. 열 남짓 출판사에 출판 계획서를 보냈는데, 모두 안 된다고 했다. '훌륭한 원고지만, 출판사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는다' '다른 출판 일정으로 안타깝게 내지 못하겠다'는 획일적인 답만 돌아왔다."

―책 내용이 생각보다 수위가 낮다는 말도 나온다.

"유튜브 방송은 내가 폭로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다. 누군가에게 칼을 찌르려고 했던 게 아니다. 내가 알면 얼마나 더 알겠나. 원래 내 계획은 방송을 통해 초반에 국민적 관심이 갈 내용을 제시한 뒤, 청와대 정부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 시스템 문제 등을 알리는 것이었다. 사회에 '발제'하려고 했던 거다. 그런데 내가 중간에 못 견뎌서 실패한 것이다."

―결국 어떤 말을 하고 싶었나.

"행정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국민이 알아야 한다. 행정부가 무엇을 하는지 국민이 알지 못하면, 행정부는 사유화되고 파편화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행정부는 국민을 위해 일을 하는 게 아니다."

폭로 이후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재민 사무관의 문제 제기는 자기가 보는 좁은 세계 속의 일을 가지고 문제가 있다 판단한 것이다. 정책 결정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신 사무관이 알 수 없는 과정을 통해서 결정하는 것이고, 그 결정 권한은 장관에게 있다."

―그때 기분은.

"처음 들은 것은 병원에 있을 때였다. 의사 선생님이 '대통령이 좋은 취지로 말씀해주셨다'고 했다. 당시에는 그냥 '그러셨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정신 차리고 작년 5월쯤 제대로 보고 곰곰이 생각했다. 대통령 말씀 가운데 '정책 결정은 복잡하고, 내가 볼 수 없다'는 것은 공감한다. 다만 조직 생활에는 각자 맡은 역할이 있지 않은가. 내가 비록 좁은 세상만 봤고, 다른 세상은 못 봤지만 좁은 세상에서도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한다."

야학 활동, 빈부 격차 목격하면서 사회문제 관심

조선일보

2018년 말, 유튜브 방송에 등장한 신재민 전 사무관. 그의 평소 몸무게는 60㎏ 초반이지만 당시 그의 몸무게는 80㎏에 육박했다.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신 전 사무관은 유년 시절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공부는 제법 했기 때문에 대일외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야학(夜學) 동아리에 가입하고 교사로 활동했다. 그가 고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도 이 무렵이다.

―야학 활동을 한 계기는.

"어릴 적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방직 공장에서 일하다가 나중에 자영업을 하셨다. 나는 어릴 적 달동네에서 살던 친구들과 함께 놀았다. 그런 내 삶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데 영향을 끼친 거 같다. 2004년 대학 입학 후 야학 동아리에 가입해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을 가르쳤다. 동아리 동기들과 사회적 활동가들도 만났고, 사비를 들여 가르치는 분들도 만났다.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고시를 했다.

"야학을 위해 종로구 창신동 언덕을 올라가다 보니 공동 화장실을 쓰는 달동네가 보였다. 그런데 반대쪽에는 최고급 아파트가 있었다. 아이러니한 장면이었다. 내가 가르쳤던 애들이 공동 화장실을 2006년에도 이용한다는 게 너무 슬펐다. 공동 화장실을 쓰는 아이들이 고급 아파트 사는 아이들과 같은 기회를 갖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시 공부를 해서 관료가 되면 좋은 정책 공유하고,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안정된 5급 사무관직을 던질 때 아깝지는 않았나.

"아깝다는 생각은 당연히 들었다. 하지만 죄책감이 있었다. 나를 좋아해 준 선배들을 뒤에서 칼로 찌르는 배신을 했다. 물론 그게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회사를 다니는 것은 뻔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올 때 학원 강사로 먹고살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그런데 내가 강사를 하면서 이런 얘기(폭로)를 한다면 얼마나 웃기겠나."

―지금 밥벌이는 어떻게 하나.

"공무원 그만두고 나서 지금까지는 공무원 시절 벌었던 돈을 썼다. 이제는 거의 다 까먹었다. 이번에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조교 하면서 한 달에 100만원가량 나온다. 결혼도 안 했으니 큰 어려움은 없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제안을 받았다는 얘기도 나왔는데.

"일부 보수 정당에서 부모님께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정말 정치할 생각이 없다. 책을 이 시점에 낸 것도 총선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이때쯤이면 공천이 마무리되니까. 예전에는 '나도 정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멘털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생각을 안 하게 됐다."

"사회에 발제 계속할 것"

작년 1월 초 신 전 사무관은 기자회견을 한 후 친구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예약 문자를 보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모텔에서 시도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후 두 달여 동안 분당 서울대병원 정신병동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외부와 차단된 공간이었다.

―유튜브를 지금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지나고 보니 자극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자막을 쓰고, 관심이 갈 만한 것을 뜯어서 배치했다. 당시에는 자극적이라고 생각 안 했다. 흥미를 끌도록 방송을 만들어놓고, 부족한 것은 책에 넣으면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방송이 먼저 나갔다. 상황이 의도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누가 잘못했는지로 관심이 쏠렸다. 그게 내가 힘들었던 이유다."

―왜 극단적 선택을.

"기자회견 하고 나서 저녁에 혼자 있었다. 내가 모셨던 분들 이름까지 얘기했던 게 너무 마음에 걸렸다. 그분들은 나 때문에 공직 생활 마지막을 망쳤다. 또 '직장을 그만두고 말을 하면 내 뜻을 믿어주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대부분 내 말을 믿지 않더라. 계속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원래는 유서를 쓰고 목을 매고 나서 아침이면 죽어 있을 줄 알았는데, 잘 안 되더라."

―부모님 생각은 안 났나.

"부모님께 연락을 안 하고 행동했다. 당시 나는 내 폭로가 어느 정도 이슈가 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내가 생각을 잘못했다. 이번에 책 낼 때 부모님은 '또다시 일을 만들려고 하느냐'고 물어보셨다. 그래도 사회에 알려야 한다는 취지를 말씀드리니 부모님이 믿어주셨다."

―이후 어떻게 살았나.

"곧바로 분당 서울대 병원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나처럼 극단적 선택을 한 친구들이 입원해 있었다. 특히 공부 때문에 그런 시도를 한 어린아이를 많이 봤다. 아이들에게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말해줬다. 그러다 보니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성숙해진 거 같다."

―친구들 반응은 어땠나.

"2018년 말, 내가 기자회견 한다고 하니까 야학 동아리 친구 10여 명이 현장에 왔다. 당시 이른바 '문빠'들이 동아리 최고 선배들에게까지 전화해서 비난했다고 하더라."

―검찰 조사를 받을 때는 오히려 검사에게 기소해달라고 했다.

"죄목 가운데 하나가 '공무상 비밀 누설죄'였다. 행정부 문제점을 바꾸기 위해 KT&G 사장 선임 개입 등을 알렸는데, 그게 비밀을 누설했다는 얘기였다. 대법원 판례를 찾아보니 정부 등의 판단에 따라 어떤 것도 다 비밀이 될 수 있더라. 판례를 바꿔보고 싶었다. 차라리 내가 기소를 당해서 법원에 가서 잘못됐다는 주장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검사님이 '기소를 통해 판단받는 게 사회에 기여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해주셨다."

―앞으로 목표는.

“내 성격상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은 공부다. 연구하고 공부하며 세상에 대해 발제를 할 거다. 그 후 행정부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학자가 되고 싶다.”

[곽창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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