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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사설] 한전공대 강행, 前 정부 '미르재단 출연 강요'와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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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대학설립심사위원회가 3일 한전공대 학교법인 설립을 허가했다. 한전공대 설립 추진 명분은 에너지 분야에 특화된 세계 최고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에너지 분야가 바로 원자력이다. 그런데 정부는 탈원전으로 이미 최고 수준에 올라 있는 원자력의 산업 생태계와 후속 세대 양성 시스템을 망가뜨렸으면서, 무슨 새로운 최고 에너지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엉뚱한 일을 벌이나.

더구나 대학 입학 학령인구 감소로 수년 내 기존 대학 정원의 4분의 1을 줄여야 한다. 어떻게 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대학 구조조정을 연착륙시키느냐 하는 것이 국가 차원의 과제다. 교육부는 말로는 그렇게 얘기하면서 대학을 하나 더 만들겠다는 절차를 밟고 있다.

한전은 2014~16년 연 5조~12조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이 정부 들어와 탈원전 폭탄을 맞고는 작년 1조3500억원에 이르는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15년 부채가 107조원이었는데 작년 128조원으로 늘어났다. 정부는 그런 한전 팔을 비틀어 1조6000억원이 든다는 대학교 설립을 밀어붙이고 있다. 한전은 정부가 지분 51%를 갖고 있지만 나머지 49%는 민간이 보유하고 있다. 민간 지분의 57%는 외국인 소유이고 국내 개인 투자가가 42만명이나 된다. 대통령과 장관을 '강요죄'로, 현 경영진은 '배임죄'로 고소한 한전소액주주행동 대표는 "한전공대에 돈을 강제 출연시키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기업들에 미르재단 출연을 강요한 것과 뭐가 다르냐"고 했다.

한전 사장은 작년 10월 국감에서 관련 질문에 "(재무 상황이) 어려운데 한전공대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정부 시키는 대로 질질 끌려가는 이유는 자리보전 외엔 생각할 수 없다. 당연히 민간 주주들에 대한 배임(背任) 행위다. 누가 봐도 불합리한 결정인데 굴러가는 것은 대선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지역표를 얻겠다는 정치적 계산으로 수십만 명 투자가들 이해관계를 짓뭉개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전대미문의 코로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부가 무엇보다 기업과 가계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 방향을 잡아야 한다. 대통령도 지난달 24일 비상경제회의에서 "4대 보험료와 전기료 등 공과금 유예 또는 면제에 대해서도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탈원전 충격에 휘청대는 한전에 1조6000억짜리 대학 설립 부담까지 얹어 놓고는 전기료를 인하하라고 주문하는 것이 앞뒤가 맞는 말인가. 결국은 전기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전공대 개교 예정일은 정부 임기 만료 직전인 2022년 3월로 잡혔다. 제대로 절차를 밟는다면 2026년이라야 문을 열 수 있는 걸 여러 편법으로 일정을 당겼다고 한다. 다음번 대선에서 한 번 더 활용하자는 속셈일 것이다. 수십만 민간 주주에 손해를 입히면서 자기 진영의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민간 주주들 입장에선 '재산권 강탈'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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