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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한은법 79조 고집하던 한은 80조 꺼내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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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한고은 기자] [비상상황 위기감에 특단 대책 검토…통화·재정 한몸으로 CP·회사채 시장 지원하는 美, 한국은?]

머니투데이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으로 출근하면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0.3.20/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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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직접대출 검토라는 특단의 대책을 꺼낸 배경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금융시장 충격의 끝이 어디일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일 간부회의를 열고 "비상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둬야 한다"면서 "상황이 악화할 경우 회사채 시장 안정을 위해 한은법 제80조에 의거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해 대출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법 80조는 민간과 거래를 제한하는 제79조에도 불구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행하거나 발행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금통위원 4명 이상의 찬성으로 영리기업에 대해 여신(대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은의 비은행 금융기관 대출 검토는 단기자금시장 불안요인이 되고 있는 증권사 지원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증권사들은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증거금 추가 납부 요구) 대응을 위해 CP를 시장에 쏟아냈고, 이에 따라 CP금리가 급등(가격은 급락)하는 불안이 발생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관련 부담도 큰 상황이다.

하지만 이 총재가 직접 '비상상황'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한은의 고민은 한발 더 나아가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가동중인 20조원 규모 채권시장안정펀드나 RP(환매조건부채권) 무제한 매입으로 금융기관들의 자금수요를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은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한은법 제79조 등을 근거로 CP와 회사채를 직접 '매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매입과 대출이라는 형식의 차이는 있지만, CP와 회사채 시장 지원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한은이 전과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기관들이 신용리스크를 지는 형태로 채권시장안정펀드가 마련돼있는데 금융기관들이 계속 부담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고, 향후 기업들 자금조달 증가규모가 생각 이상으로 커질 수 있기 때문에 더 넓은 차원에서 비상상황에 대비한 (유동성 공급 방법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차원의 논의"라고 설명했다. 결국 발권력 활용에 관한 이야기다.


한은법 80조 발동, 정부 의견 들어야…한몸 된 미 재무부·연준 길 갈까

한은법 80조는 발동 여부는 한국은행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 한은법 80조 4항은 영리기업에 대한 여신을 할 때 금융기관에 대한 긴급여신을 규정한 제65조 3·4항을 준용하도록 한다. 65조 3항은 필요시 금융기관에 대한 자산상황을 조사·확인하는 것이고, 4항은 정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정부의 의견이란 사실상 정부가 한은과 함께 손실 위험 부담을 나눠 갖는 '신용보증'을 의미한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한은은 손실 최소화 원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한은법 80조를 가동한다고 하더라도 손실 최소화 원칙 안에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가 2일 "법에서 정한 한국은행의 권한 범위를 벗어나거나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성 지원은 안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은은 한은법 80조 발동 여부를 검토하는 초기 단계인 만큼 아직 정부와 협의를 시작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한은법 80조 발동 형태는 증권사 등에 CP나 회사채 등을 담보로 대출해주는 형식도 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같이 SPV(특수목적법인)을 통한 지원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 연준은 미 재무부가 100억달러씩 출자(신용보증)한 SPV에 대출을 하고, SPV가 CP와 회사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단기금융시장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기관이 보증하지 않은 채권매입을 금지하는 연준법에 따라 우회로를 뚫은 것이다.

한은은 현재 영리기업 소유, 운영을 금지하고 있는 한은법에 따라 SPV를 직접 설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만약 SPV를 통한 대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경우 정부 등 외부기관에서 설립한 SPV에 대출을 해주는 방식이나, 그 외 방법으로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금융시장 관계자는 "한은이 한은법 80조를 발동해 직접 대출을 하든, 정부 지급보증을 받아 SPV 형태로 돕든 이제는 정부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한고은 기자 doremi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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