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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코로나에 놀라 돈 쏟는 정부···'샤워실의 바보' 경고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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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 평소 붐비던 골목에도 사람을 보기 힘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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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은 정부의 '널뛰기'식 경기 대응을 '샤워실의 바보'라 빗댔다. 샤워기를 틀면 차가운 물이 확 나온다. 수도꼭지를 온수 쪽으로 돌리면 이번엔 뜨거운 물이 쏟아진다. 다시 찬물 쪽으로 돌린다. 샤워실의 바보는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 단기 예측에 기초한 경제정책이 경기 변동을 더 키운다는 경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가 얼어붙고 있다. 각국 정부는 이번엔 '샤워실의 바보'란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경제학자들과 글로벌 분석기관 예측을 '그래픽 뉴스'로 정리했다.



방역 열심히 하면 경기 침체?



코로나 확산 이후 학계·정책당국의 주목을 받은 그래프는 방역과 경기 침체의 관계를 그린 것이다. 이 그래프는 폴 크루그먼, 리처드 볼드윈 등 세계적인 경제학자가 모여 집필한 인터넷북(Mitigating the COVID Economic Crisis)에 등장한다. 그래프 속에는 '정부가 적극적인 방역 정책을 펴면 환자는 줄일 수 있지만, 경기 침체는 깊고 오래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아래 빨간색 선처럼 방역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나라에선 확진자·사망자가 급속히 는다. 확진자가 느는 만큼 면역자도 빨리 늘어 감염병 유행 기간은 짧아진다. 이럴 경우 경제적 타격은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 정부가 방역에 나서면 파란색 선처럼 환자는 줄지만, 질병 유행 기간이 길어져 경기 침체도 길어진다. 코로나 확산 초기 각국 정부는 입국 금지, 자가격리 등에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이는 방역과 경제 양쪽으로 난 샤워기 방향을 경제 쪽에 가깝게 틀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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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정책이 코로나19 확진자수와 경기 침체에 미치는 영향. 그래픽=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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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종 감염병인 코로나19에도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위 그래프 대로면 강력한 방역 정책을 펴는 한국·중국·대만 등은 경제적으로는 더 힘든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게 된다. 공공의료 부실로 확진자가 급증 중인 미국·이탈리아 등은 더 빨리 경기 침체를 탈출할 것이란 논리도 가능하다.



방역 모범국 韓·中은 '+ 성장' 예측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 전망은 이와 다르다. 무디스는 한국·중국은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내려가진 않고 내년부터 'V'자형 반등을 예측한다. 미국·유럽 등은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을 찍을 것으로 관측했다. 브라질·멕시코 등 의료 시스템이 열악한 중남미 국가 역시 올해 역성장이 점쳐진다. 경제에는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지만, 성장률 전망만 놓고 볼 때 방역이 경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등 전문가 일각에선 방역 정책을 펴지 않을 경우 감염병 종식은 더 늦어져 더 큰 경기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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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의 주요국 경제성장률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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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실패 조짐 美, 실업자도 급증



경기 침체는 실업난으로 나타난다. 최근 미국과 한국의 실업급여 신청자 수를 보면 방역 정책의 결과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달 넷째 주 미국의 신규 실업급여 신청자는 음식점·백화점업 등을 중심으로 665만명에 달했다. 그 전주 334만건에서 2배가량 늘었다. 한국은 코로나 확산이 빨라진 2월, 구직급여(실업급여) 신청자가 한 해 전보다 33.6% 증가했다. 그러나 미국만큼 가파르게 늘진 않았다. 물론 이런 추세는 확진 상황과 정책 대응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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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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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구직급여(실업급여) 신청자. 그래픽=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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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정부, '폭격기 머니' 대응



확진자 급증에 놀란 각국 정부는 '헬리콥터 머니'를 넘어 '폭격기 머니'로 불리는 재정·금융 지원에 나섰다. 미국은 지난달 2조2000억 달러(2684조원) 규모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독일도 1조 유로(1344조원)에 달하는 경기 부양책이 연방의회 상원을 통과했다. 한국도 132조 규모 재정·금융지원 정책을 발표한 상태다. 집행 속도에 차이는 있지만 '가장 뜨거운 물을 세차게' 튼 셈이다.



"급한 불 끄되, 과잉 대응 경계"



전문가들은 일단 급한 불을 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번 경기 부양책이 '샤워실의 바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책당국은 아래 그래프처럼 확진자가 천천히 늘 때는 파란색 접선 기울기처럼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그러다 확진자가 급증할 땐 가팔라진 빨간색 접선 기울기만큼 과잉 대응하기 쉽다는 것이다. 감염병은 임계점을 지나면 수그러들게 마련이지만, 확진자가 급증하면 국민 불안, 인기영합주의적 정치가의 등장 등으로 과잉 정책을 남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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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미래 예측 불확실성에 따른 경기정책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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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불을 끌 때는 물을 아끼지 말아야겠지만, 끄고 나 뒤에는 물을 퍼내는 작업으로 또다시 고생할 수 있다"며 "경기 부양책의 수위를 잘 조절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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